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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신인상(시부문)/허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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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청미
댓글 0건 조회 3,831회 작성일 02-06-23 15:02

본문

신인상(시부문)
허청미
경기 화성 출생.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 졸업


폭 포



1
'심근경색' 낙차가 큰 물기둥에 박혀
떨어졌다

수직으로 투신하는 물길이 부서지며
옷을 벗고
천길 피안 끝에
영혼을 내려놓는다

2
오랜 연습이 있었던 무대가 아니다
부고 한 장 속의
즉흥 단막극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가 그어지고
이렇게 이별은 단도직입이다

망자의 자리에 괸
이승의 것들
모래성이 무너진 척박한 자리에
돋아나는 기억의 돌기들

산자가 밥을 먹는다
버텨야할 무게만큼 꾹꾹
밀어 넣는다
누가 내일 그 벼랑 끝 물길이 되는지
너는 아는가

천길 깊은 구멍 끝에
영원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젖 니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구나 며칠새
요람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예사롭지 않은 예감이
꽂히더니
껍질을 뚫고 푯대처럼 솟았구나
젖물이 묻은 저 생존의 시그널!

밥알 몇 알은 부수어 낼 수 있겠다
돌도 깨물 수 있겠다
바위 같은 세상도 둥글게 갉아낼 수 있겠다

복사꽃우물 같은 그 입 속에
젖니 하나 동동 띄우고
아이가 웃는다

콤콤한 젖내가
환하게 불 켜고
내 속에 옹이를 꼭꼭 쪼아낸다





바람소리


바람과 바람 사이로
달이 기운다

바람은 결을 만들고
날을 세워
산 숲을 베어낸다

능선마다 계곡마다 넘나드는 바람의 결
나는 알지 못한다
도솔암 청정도량에 노승의 법구경 소리가
빈 계곡을 구비구비 돌다가
멧부리에 쌓인다

산은 말하지 않는다
나무들은 알고 있을까 결국

빙점에서 얼음 조각으로 떠돌아야 할
그 긴 터널의 적요함
바람이 내 옷섶 한 끝을 물고 가다
또 한 잎을 떨구고 우수수
달아난다





묘 비


그 냉장고 안에는 작은 바다가 있다
춥다
바람이 지느러미를 접고
파도가 목젖이 잘려 울지 못하는
바다가 있다
투명한 비닐 팩 속에
해금을 게워 내며 몸을 뒤척이는 바다
토해 놓은 갯물을 다시 물고
숨을 몰아 쉬는 바다가 있다
누가 그의 세상을 통조림 했는가

냉장고 문이 열린다
나는 그 작은 바다를 송두리째
움켜쥐고
렌지 위 열탕 속에 쏟아 붓는다
오!
가슴에 마지막 성호를 긋듯
방패를 내려놓은 생의 끄트머리들이
보글보글 뚝배기에 떠 오른다

고장난 아코디언처럼
한 생의 음계가,
生과 卒이 음각으로 패인
묘비 하나가 그 허공에 꽂힌다






朴 五代


추석날 할아버지가
자신의 할아버지 차례상 앞에서 절을 올리자
보행기를 탄 손자가 손뼉을 친다

내가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는데
내 손자가 손뼉을 친다
내 할아버지로부터 오대째인 박 오대야

합문(闔門)을 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먼 길을 되짚어 가신다

내 신위 앞에서 술을 따르는 박오대야
네 손자는 나로부터 또 오대!
네 손자 박 오대도 보행기를 타고
내 젯상에서 짝짝짝 손뼉을 치겠구나

할아버지가 보행기 속 손자를 끌어당기며
음복을 권한다




<당선 소감>
어릴 적 길을 가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봤을 때 아무도 없어 느꼈던 두려움. 나는 그럴 때면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그것이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아직 음표도 보지 못하고 발성연습 중인데, 귀기울여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늦었지만 용기를 갖고 저의 두려움을 쫓는 노래를 열심히 부르겠습니다. 더불어 지금까지 따스하게 이끌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묵묵하게 용기와 격려를 해준 남편과 우리 아이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함께 시를 사랑해온 동작문화원의 <시울림회> 문우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리토피아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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