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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신인상(시부문)/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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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시부문)
유정임
보이지 않는 길
산 하나
호수 속에 거꾸로 들어앉아 있다
고즈넉하다
물결 일렁일 때마다
산에 바람이 인다
여인 하나
산밑으로 다가간다
저 혼자 거꾸로 간다
자꾸 산밑으로 거꾸로 가고 있다
거꾸로 서서도 바로 가는 길을 찾는지
그녀는 몇 번인가 오락가락 하다 끝내 물 밖으로 사라진다
여전히 길은 호수 속에 잠겨있다
지렁이
어둠 속에서
어느 날 그는
탈출한다
햇볕 속에 나온 그가
온몸으로 딩굴고 있다
∼∝∫∽⊂∪∩∂¿
소나기
비가 쏟아진다
차안에서 비를 보니
내가 그의 속에 들어 앉아있다
제 속에 나를 품은 그가
머리 위에서 악다구니를 친다
줄줄 앞이 안보이게 흘러내린다
이리저리 비껴 틈새로 스며든다
흐느끼듯 잦아든다
그러다
끝도 없는 적막 속으로 나를 끌고 간다
문득
그가 내 안으로 지나갔는지
내가 어느새 그의 몸쪽으로 반 넘어 젖어있다
안 개
내가 날 보기 싫은 날은 안개가 낀다
사거리 맞은 편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 불빛만 뻥 뚫린다
신호등 바뀌자
나는 푸른 불빛을 따라 걸어간다
아랫도리가 다 묻힌 나무 밑에 서있는 내가 보였다
해변 쪽은 안개가 더 짙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곳을 향해 가는 것들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가방을 메고 가는 사람
무거운 짐을 끌고 가는 사람
모두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그곳을 향해 걷는다
안개 속으로 수많은 내가 걸어가고
안개가 짙어질수록
길이 지워져 앞이 막막하다
누군가 등뒤에서 나를 지우며 따라 오고 있다
어느 화장실
그 화장실은 좀 특별했다
입구가 눈에 띄지 않았다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한쪽 벽면을 따라가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가리켜 준 쪽의 벽을 따라가 봐도 문이 없다 자세히 보니 똑같은 색의 벽에 두 개의 둥근 쇠 손잡이가 달려있다 어느 쪽이 여자 화장실인가 두리번거리니 시선 끝에 woman ; man 이라는 명패가 있다 woman을 밖으로 잡아 다녀 본다 woman이 열리지가 않는다 안으로 밀어 본다 비로소 woman이 열리면서 손잡이 밑에 push라고 쓴 글자가 들어온다 push..... 밀라는 뜻이었지, 엉거주춤 woman을 밀고 들어서니 나 보다 더 어눌하고 당혹스러워 하는 여자와 문득 마주 친다 깜짝 놀라 얼른 시선을 돌리고 급히 변기가 있는 쪽 문을 밀고 들어서니 그곳에 또 당혹스러운 한 여인이 엉거주춤 서있다 나는 얼른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는다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칠까봐 앞만 바라보다 옷을 추키고 나온다 내 엉덩이까지 다 본 그녀를 두고 문을 닫으니 거기 또 내 무식을 알고 있는 여자가 있다 그녀들을 피해 나는 급히 woman을 안으로 push하고 문을 쾅 닫는다
<당선소감>
꿈
길고 긴 끈 하나를 잡고 있다
놓아 버렸다고 생각하고 들여다보니 아직도 잡고 있다
세상 모두가 그 끈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 끈을 끊어 보려고 애를 쓴다
차라리 끊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끊어지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내가 그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내 허리를 감고 있다
점점 조여오는 그것
詩__________ 시 _______________ 시시시시시
보잘것없는 작품들을 뽑아주신 심사 위원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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