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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신작시/김광렬/낙화 앞에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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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광렬
1988년 《창작과 비평》봄호로 등단. 시집으로 『가을의 詩』, 와 『희미한 등불만 있으면 좋으리』 가 있음. <깨어있음의 시> 동인
낙화 앞에서 외 1편
저 바람 마음
한없이 쓰라렸으면 좋겠다
꽃의 목 싹둑 자르고서는
콧노래 부르며 가면
오히려 내 마음 아파버리겠다
뉘우치는 빛 없이
괴로워하는 기색 없이
떠나가는 바람의 손끝에서
뎅강뎅강 목숨 낮추는
파르르 꽃잎들,
저 바람 마음
그래도 죽어지겠네 죽어지겠네
끙끙 앓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바라보는 내가 더 크게
속이 타버릴 것 같아
땅 바닥 꽃잎 속
얼굴 파묻으며
차마 슬픈 마음 못 이기겠네
큰산
큰산은 작은 산을 함부로 범하지 않는다
큰산이 큰산다워 넉넉할 때
작은 산은 일부러 부르르 주먹 떨지 않는다
큰산은 때로 작은 산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계곡 물도 아래로 흘러 넘치게 하여
작은 산의 마음을 풍족하고 기름지게 한다
나무와 새들도 큰산보다는 작은 산을 좋아하여
작은 산을 흠씬흠씬 아름답게 키워내어도
큰산은 괜히 노여워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큰산은 큰산이므로 역시 큰산답게
앞을 보고 뒤를 돌아다보기도 하면서
가끔은 철부지 작은 산을 근엄하게
꾸짖기도 하고 어루만지기도 한다
허나 우리가 때로 큰산이라고 여겼던 산이
큰산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을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는 경우도 있는데
그 산은 아마 큰산이 아니라 고작
큰산 흉내나 내는 아주 작은 산인지도 모른다
큰산은 외형이 커서 큰산이 아니라
가난해도 가슴에 큰 뜻을 품고
어두운 밤길 힘겹게 걸어가므로 큰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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