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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신작시/전윤호/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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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전윤호
1964년 강원 정선 출생, 동국대 사학과 졸업. 199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순수의 시대>
전화
점심 먹고 책상에서 조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창에 떠오르는 번호 042-21***** 누가 대전에서 전화를 걸었지? 여보세요? 전윤호씨? 누구십니까? 전화 한 번 퉁명스럽게 받는군 그러니 맨 날 이 모양이지. 나 당신 은행계좌야. 아 예. 당신 말이야. 돈 관리 좀 잘해. 걸핏하면 잔고가 바닥나니 번거로워 죽겠어. 죄송합니다. 당신 그러다 신용불량자 돼. 그러면 끝이야 끝. 조심하겠습니다. 이번 연체는 또 언제 갚을 거야? 봉급날이 말일이니까 그때.... 그 직장 때려치워 말일 날 봉급 주는 회사 치고 제대로 된 데 못 봤다.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조심하구. 잘 살어. 예. 나두 당신이 미워서 이러는 게 아니야. 어쨌거나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할 건 하고 살아야지.
파 리
출근하려고 새벽같이 일어나 비실거리다 변기에 앉아 졸았다. 윙윙 날개짓 소리에 놀라 깨니 파리 한 마리가 머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졸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분노로 바지도 내린 채 파리를 잡으려고 설쳤다. 이 추운 날씨에 파리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것일까. 아직 보지도 않은 신문을 말아서 파리를 잡았다. 세면대 위의 유리에 파리의 삶이 때 자국으로 남았다. 버스를 타고 졸다가 윙윙 소리에 몇 번을 깼다. 파리가 또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회사에서 먼 곳을 보다가 또 윙윙 소리를 들었다. 파리가 내 머리 주변을 종일 맴돌고 있다고 하소연하자 동료가 말했다. 당신이 파리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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