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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젊은시인조명 해설/솟아나는 분홍빛 새 살-박재열 시인의 세계/안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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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시인조명 해설
솟아나는 분홍빛 새 살
― 박재열 시인의 시세계
안정인
그대의 글씨를 찬찬히 본다,
섬세한 글씨 그대 손의 섬세함이 보인다,
희고 부드러운 귓불에서
반짝 흔들리는 보석이 보인다,
그러나 글씨는 여전히 조용하다,
아니다 그대 글씨 그 굳은 가지 밑으로 분명 혀가 보인다, 그대 언어는 검정 잉크로 말라 있어도 슬픈 혀는 말하고 있다, 눈에 가득한 괴로움 같다, 그대 가슴의 울컥거림이 울부짖고 있다, 글씨는 눈물의 마른 깍지 같아 보인다, 그 속에 뜨거움 갇혀 있는, 아니 강 위 철교 같아 보인다, 아래로 검은 욕망이 출렁이는… 그러나 그대 글씨는 입술을 깨물면서 개미처럼 또박또박 가고 있다, 난간 위로 위험한 경적 떨치며 또박또박 가고 있다,
―「아니다 그대 글씨」의 전문
박재열 시인에게 시는 그 나름의 체질을 지닌 하나의 몸이다. "굳은 글씨 밑으로 말하는 슬픈 혀가 있으며, 그 속에 뜨거움이 갇혀 있는, 욕망이 출렁이는" 육체다. 언어는 시가 입고 있는 육체의 각질이며, 거듭나는 표피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텍스트와 독자와의 만남의 과정이며, 독자는 텍스트의 몸이 이끄는 데로 순응한다. 자신의 의식적인 자아를 몰각하고 대상과의 합일을 이루게 하는 키츠의 '부정적 능력'(negative capability)은 훌륭한 시인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요구된다. 텍스트의 숨결에 귀기울여 그 호흡과 리듬을 체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텍스트는 자신의 구규(九竅, orifice)를 열어 우리를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인다.
시인의 인식은 느껴지는 시선은 사소하고 미세한 대상에 대한 정밀한 관찰에서 출발한다.
발가락 속에서 티눈이 자고 있네 찹쌀 한 알 속에 바다가 깨어 흔들리네 티눈 서쪽에 봄비가 오고 절뚝거리며 언덕을 넘는 내가 보이네 약을 바르면 따뜻하게 치자향 눈뜨는, 남녘에 종일 치자향 봄눈이 쏟아지네 눈은 남녘의 꽃이고 눈물이라네 눈물로 비빈 폭설에 큰물 내려가고 처녀들의 손바닥 속에서 샤프펜슬만한 자궁이 열리네 아득한 자궁 속에도 눈이 오네 누구와 자궁에서 사랑을 나눠도 비밀은 미나리처럼 파랗게 돋네 나는 자는 티눈을 깨워 스스스 하고 여윈 몸을 따뜻하게 비벼 주네 세상의 맑고 높은 잠자리가 알곡처럼 무너지네 우리의 밑은 습하지만 죽음은 혀처럼 짧고 편안하다네
―「발가락 속에서 티눈이 자고 있네」의 전문
어느 순간 시인의 인식의 안테나에 크게 포착된 발가락 속에 있는 "티눈"에서 시인의 연상은 시작된다. "찹쌀 한 알"의 미시적 대상 속에 거시적 세계 "바다"가 전체 창으로 확대되어 투영된다. 자유로운 연상으로 수평으로 이어지는 이미지들의 조합은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인다. 계절과 생사의 순환이 이어지는 그 속에서 겪는 고행이 "절뚝거리며 언덕을 넘는" 시인의 모습으로 객관화되며 이것은 발로 이어져 또다시 티눈으로 회귀된다. 티눈은 곧 발의 굳어진 역사이자 시인의 삶의 여정이며 인간의 역사이다. 인간의 충족될 수 없는 욕망에서 비롯된 환유적 여로는 피어리어드를 찍지 못하는 시인의 시 쓰기처럼 끝없이 이어질 듯하다. 죽음이 그에게 안식을 허락할 때까지.
외부의 미시적 대상에서 거시적 세계로 확장된 시인의 상상력은 이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든다. 시인의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바다의 유동적 이미지는 의식의 경직된 이성과 논리의 밑을 흐르는 감성과 무의식을 감각적으로 나타내준다.
나는 잘린 가슴 아래 부분으로만 걷습니다
유채꽃물이 출렁출렁, 넘칩니다
―「바닷가로 걸으면」중에서
내가 아내의 방을 들어설 때
가구와 침대와 아내는 깊은 바다였습니다
내가 수초 사이를 건드렸더니
버지니아 울프 위에 꼬부라진 아내는 짝 동그랗게 오그려졌습니다
아내를 펼치렸더니 더 알처럼 단단해졌습니다
나도 알을 깨고 들어가 울프처럼 옹크렸습니다
―「시 16」 중에서
의식의 흐름을 잘 포착하여 보여준 "버지니아 울프의 자아는 언제나 수평선 바로 앞에 있는 비실체적인 것, 포착되지 않으나 지속해나가는 조그만 의지로 나타난다. 개체는 늘 유동하고 매 순간의 형태는 외부의 힘에 반응하면서 변한다고 그녀는 믿는다. 현 순간의 주체는 결코 정태적이거나 고착된 것이 아니고 아주 미미한 환경의 진동에도 반응하면서 유동한다. 반응적 성격이 갖는 변형을 통해 상황과 관계로부터 주체가 창출되는 순간의 포착에 그녀는 집착한다." 울프의 "깊은 바다"의 세계로 들어선 시인은 그녀의 세계를 사랑으로 감싸는 시 세계를 꿈꾼다.
나는 기어이 울프를 자살케 한 우즈강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사랑을 흔들듯 눈물로 그 다리를 쓰다듬어 줬습니다
―「시 16」 중에서
시인은 두 번 째 시집 『은유를 떼기치다』에서 종전의 시 양식에서 보편적인 수사법이었던 은유 대신 환유적 시 쓰기를 시도한다.
꿈 속이 질척거리더니 누가 고함쳤다, 박재열, 피어리드를 아껴라, 나는 그 여운을 아꼈다, 사실이지 나는 피어리드만 찾아다니며 탐하였다, 사실이지 나는 피어리드와 동침하고는 살해하여 팔뚝에 암매장하였다,
······
나는 은유를 떼기쳤다, 은유 불감증? 박재열, 너, 은유를 학대하지 마, 그게 네 아비야, 나는 피붙이들의 은유적 패권주의에 질겁을 했다, 그리고 가장 앙칼지게 달려드는 피어리드 몇 개를 다시 종량제 봉투에 쓸어 담았다, 그리고는 내 문신 속에 깊이 넣고 꿰매버렸다
-「은유를 떼기쳤다」중에서
시인은 "은유가 우리의 영혼을 가르치는 아버지이고 종교인 반면 환유는 어머니의 살과 같은 것으로서 어릴 때 우리 모두가 덮던 때묻은 이불과 같은 것"(「자서」)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은유 중심의 경직된 시 전통에 대한 반성과 도전으로서의 환유적 시 쓰기를 보여주고 있는 90년대의 몇몇 시인들의 특징과 맞물려 있으며, 이것은 은유의 전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온 환유의 재발견이며 시 폭의 확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시인이 추구하는 환유적 시 세계는 곧 은유가 보여주는 아버지의 법이 아닌 모성의 세계로서 일정한 틀, 형식, 서사를 거부하는 여성시의 특성을 보여준다. 시인은 문명과 남성 이데올로기, 은유 등의 표상의 틈새를 뚫고 끊임없이 솟구치려는 억압된 실체, 여성적 세계의 잠재적 에너지에 주목한다.
. . . 여자는 순결이 생명인 양 흰 살을 환하게 보이고는 뱀처럼 길게 문명의 밑바닥을 훑습니다, 뱀은 계속 몸을 조였다 늘여 문명을 무너뜨립니다, 무서운 일이죠,
―「나는 소음순과 문명 사이에」중에서
여성적인 것은 정신과 육체, 삶과 죽음, 의식과 무의식 등으로 이분화 되기 이전의 근원적인 생명체이다. 그것은 논리나 이성보다는 직관으로 파악되는 하나의 신비한 근원으로서, 시인은 현 체제에서 소외되고 억압되어 주변화된 여성적 세계에서 새로운 변화를 가능케 하는 잠재력을 발견한다. 그러나 "사물 밑에 차 있는 모성적 살", "사랑, 충동, 성으로 충만한 모성적 틀 속의 넉넉한 살의 천지"(「자서」)를 자신의 시 밭으로 삼고 있는 시인이 추구하는 시 세계는 남성세계와 대립되는 여성성/여성에 국한된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리무중 크리스테바의 글귀에 빠지니 여성들이 나를 죄며 키득거린다 여성은 미끈거리고 페미니즘은 밤낮 끈적거린다
······
. . . 나는 정신분석학의 사막을 접었다 펴면서 기어간다, 크리스테바의 액체, 그녀의 미끈거리는 액체가 숨구멍을 막으면 어떡하나,
―「벌레에 대한 명상/벌레가 되다」
가시처럼 박혀 있는 아버지의 추억, 그리고, 아버지 임종에 관한 메타모포스적 죄의식...
―「가시처럼 박혀 있는 아버지의 추억」
이처럼 제 2시집 도처에서 징후적으로 나타나듯 라깡과 크리스테바로 이어지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시의 무의식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후기 구조주의 언어학적 견지에서 프로이트를 재해석한 라깡의 정신분석모델에 의하면 모자합일의 충족된 상상계에 있던 유아는 아버지의 출현으로 외디푸스의 단계를 벗어나 상징계로 진입하게 되고 사회 속에서 언어에 의해 '말하는 주체'로 구축되어진다. 이 때 주체는 아버지의 법, 체제, 언어와 같은 큰상징계에 '이름'이라는 상징적 기표로 등록되는 대신 그의 실체(being)는 억압되게 되어 무의식층을 갖는 분열된 주체가 된다. 이러한 라깡의 주체 개념을 이어받은 크리스테바는 부성의 기능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된 전외디푸스 단계의 모성적 기능에 주목함으로써 모성적 육체의 깊은 곳까지의 성찰을 보여준다. 또한 주체의 형성과정에서 일어나는 의미화 과정, 즉 무의식적 충동의 언어적 표상에 주목하여, 라깡의 큰상징계 안에 기호계와 상징계를 상정한다. 상징계는 아버지의 법에 의해 통제되는 외디푸스화된 체계로 일관성과 통일성이 있는 텍스트의 근거인 안정성을 특징으로 하며, 유동적이고 혼돈 상태인 기호계를 억압하거나 포섭하여, 질서와 의미가 있는 의미화 요소로서 기능하도록 규제를 가하는 역할도 한다. 결국 시인이 추구하는 모성적 육체를 토대로 한 환유적 시쓰기는 '말하는 주체'인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 즉 사회 속에서의 주체의 정립,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 억압된 무의식과 그것의 언어적 표출 과정에 대한 탐색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언어는 본질적으로 이질적이다. 일상적 담론에서 보여주는 논리성과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소음순과 문명 사이에 방탕하게 누운 나"(「나는 소음순과 문명 사이에」)는 일상적 담론을 뚫고 올라오는 무의식적 충동에 의해 더 이상 담론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내가 수업 시간에 그대에게 실언을 하면 강의실 가득 혀짜래기 꽃이 핀다 나는 가짜 시인이다! 라고 품었던 부끄러운 말을 하면 온몸이 분필처럼 오그라든다 나는 시를 쓴다! 라고 어렵게 말을 하면 백양나무가 삐쭉거리며 은색 어깨를 흔든다 나는 수업 시간에 랑그 속에 빠져 온몸에 난 잎사귀 속을 허우적거린다 내 입은 대롱 같아 무슨 소리든지 들어가면 웅얼웅얼 말이 되지 않는다
―「요 요 요 나는 누워서 움직인다」중에서
"랑그"의 혼돈 속에 빠진 말하는 주체 '나'는 "화려한 파충류"로 변신하여 기어다닌다. 무의식적 연상을 즐겁게 하는 '나'는 언어 이전의 기호 "S"와 성적 충동을 내뿜는다. 그가 빠진 기호계는 충동, 성,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언어적 표상 없이는 기호적 충동에 접근할 수 없다. 드디어 "빠롤"로 표상된 기호적 충동이 나오며, 언어로 표상된 기호적 충동은 "모순된 담론"으로 튀어나온다. 상징계의 언어인 "경어"를 쓰면 억압된 "S자 바람"이 나오며, 억압이 강렬할수록 더 깊은 모성적 육체의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내가 그대에게 깎듯이 경어를 써가며 설명을 드리면 혀에서 쉬쉬 S자 바람이 나온다 나는 경어에 광포해지면 몸의 구멍에서 젖이 나온다 졸졸졸 내 온몸에 검은 젖이 돌고 밤알 만한 무덤이 돋는다
―「요 요 요 나는 누워서 움직인다」중에서
이처럼 상징계는 어느 특정한 순간에 일관성과 안정성이 무너지기도 하여 억압된 충동이 범람한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정신분석적 관찰에 의하면 억압된 충동은 텍스트의 합리적인 논리나 통제된 담론 형태를 파기하며 '끼어드는 말', '부조음', '리듬'의 형태로 끊임없이 나타나게 된다. 상징계와 기호계를 오가는 '나'는 언어로 인해 억압된 미끌어진 육체, "죽은 내 몸" 속에서 "새싹"을 발견한다. "교단에서 말문을 닫은" 말하는 주체 '나'는 기호계, 성과 사랑과 충동이 유동하는 모성적 공간에서 새로이 일어서는 "거석문화"를 느낀다. 시인은 '모성적 육체'와 '시적 언어'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임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연구실 책장 넷째 칸을 쥐똥나무로 둘러쌉니다 까만 열매가 겨울을 맞습니다 쥐똥나무의 열매가 힘겹게 은색 크리스마스를 넘습니다 내가 머리를 북북 긁으며 말문을 닫으면 쥐똥나무 고전주의가 열매를 맺습니다
대밭 주위는 쥐똥나무 생울타립니다 연구실에 눈이 옵니다 곧고 가는 쥐똥나무 줄기는 활의 재료입니다 눈 속에 파묻힌 곧고 호리호리한 유년시절을 골라 화살을 만듭니다 나는 몸을 곧은 겨릅으로 채웁니다 화살이 까마득히 올라간 하늘에 눈부신 금관악기가 떠 있습니다 언 손이 겨릅처럼 부러지면 금관악기가 드디어 붕붕붕 황금의 소리를 냅니다
죽은 쥐가 붕붕붕 등을 구부리고 발을 오그립니다 금관악기에 들녘은 천사들로 넘칩니다 사람들은 몰래 낳은 태아를 갖다버립니다 천사처럼 태아의 발바닥도 은색입니다 구청 쓰레기 봉투 속의 언 쥐, 쥐의 눈이 빤짝거립니다, 그리고 이층 슬라브 위로 계속 봄눈이 오고 얼음 밑으로 졸졸졸 성냥개비만한 개울이 흐릅니다 나는 성냥개비 불로 손톱 밑을 밝힙니다 쥐들이 분홍빛을 밝힌 후 머리카락 하나가 반쯤 하늘에 날아오릅니다
―「대밭 주위는 쥐똥나무 생울타립니다 연구실에 눈이 옵니다」전문
"쥐똥나무"에서 환기된 유년의 기억은 계속되는 연상으로 언어 이전의 유아의 모자관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속되는 연상으로 이어지는 이질적인 낱말들은 새로운 조합을 이루어내며, 불려온 과거의 이미지들은 현재형으로 진행된다. "쥐똥나무"에서 연상된 "화살"은 유년의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곧장 비약되며, 수직으로 쏘아 올린 화살의 까마득한 끝에서 만나는 음악, "금관악기"의 소리는 바로 태아의 '유성호흡'이다. "붕붕붕 금관악기 소리"와 "쥐똥나무"에서 "구청 쓰레기 봉투 속의 언 쥐"로 연결되며, 이것은 "몰래 낳은 태아" 곧 폐기된 "태아"로 이어진다. 얼어붙은 차가운 기억 밑을 흐르는 "성냥개비 만한 불"로 깨어나는 "분홍빛" 생명이 있다.
위의 작품이 전외디푸스 단계의 모자합일상태 즉 프로이트의 개인 선사시대(personal archeology) 단계를 사후적으로 언어화한 것이라면, 「미카3 129 증기기관차가 나팔꽃 속 우리 집 앞마당을 지납니다」에서는 시인의 비교적 구체적인 유년의 기억을 찾아볼 수 있다. 레일을 통해 들려오는 기차 소리는 시인의 가장 깊은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기억은 예형화된 언어로, 유사시대에 들어선 것이라 볼 수 있다. 시집 『은유를 떼기치다』에서도 나타났던 미카3 129 증기기관차는 위협적인 힘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곧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겪는 유아에게 나타나는 아버지의 존재와 얽혀 있으며, 전외디푸스의 근친상간적 위험한 욕망 상태에 있는 유아에게 들이닥친 아버지의 법이다. 앞마당의 꽃밭을 유린하고 지나가는 미카는 아버지에게 느꼈던 "유년기의 불안"의 표상이며, 억압된 외디푸스적 충동은 역사를 유린한 외세의 힘으로 전치되어 표출되고 있으며, 불쌍한 시지푸스적인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표현된 '사랑의 아버지'로도 나타나고 있다.
시인의 시에서 우리는 언어 속에 표상된 육체적 충동 외에도 그 역으로 언어의 육체화 과정 또한 찾아볼 수 있다.
이 초생달이 한 떨기 장미이다 이 초생달이 생사람의 한 토막 영혼이다 이 초생달이 떨기떨기 낱말에 터지는 샘물이다 뚝뚝 얼음 어는 슬픔이다 털이 폭신한 고양이다
초생달이 별 밭에 잔뿌리 내린다 창에 박힌 초생달을 당기면 찌지직 실뿌리 뜯긴다 뜯긴 수정덩이를 품안에 품는다 얼얼한, 얼음이 녹으면서 따뜻한 숨을 쉰다
품속 초생달을 만지면 온몸에 폭신한 털이 난다 짐승이 나를 만진다 짐승의 머리를 귀엽게 만진다 낱말의 성기는 이내 뻣뻣해진다 아직 염통이 팔딱거리므로 내 가슴이 같이 펄떡거린다 짐승이 나를 핥는다 어떻게 한 떨기 초생달이 수정덩이, 짐승, 언어, 다시 성기로 변하나 털 안의 눈망울이 치어다본다 털 속에서 꼬리가 여러 개 나오고 다리가 힘없이 눕는다 초생달은 털 많은 하늘에 품긴 외로운 성기이다
―「품속 초생달을 만지면 온몸에 폭신한 털이 난다 」전문
"창에 박힌 초생달"은 표상된 언어이다. 하나의 기표는 인식주체의 자유로운 연상으로 "한 떨기 장미", "생사람의 한 토막 영혼", "떨기 떨기 낱말에 터지는 샘물", "뚝뚝 얼음 어는 슬픔", "털이 폭신한 고양이" 등으로 자유롭게 전치된다. 기호계에 뿌리내린 언어 초생달에서 기호계나 상징계는 그 어느 것도 독자적 존립이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품속 초생달"은 이미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육체성을 가진 언어이다. "낱말의 성기"는 표상 그대로 언어의 육체이며, 기호계와 상징계가 융합된 형태이다.
자신 속의 모성적 틀을 시 세계로 추구하는 시인의 경우 주체와 객체가 융합됨을 알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이 조응되고 일체화되는 그의 시적 세계에서 자연은 주체와의 관계에서 왜곡됨이 없이 본질 그대로 존재하며, 그는 자연과의 합일에서 "이 세상의 모든 잠언이 다가와 순결해지는"(「이 세상의 모든 잠언이 다가와 H자처럼 순결해진다」) 음소거 상태의 순수상태를 경험한다. 더 이상 대상의 내부와 외부도 구분선을 갖지 않는다.
지퍼처럼 배를 열자 배속은 신(神)의 정원이었다
막 라일락이 피고 시내가 흘렀다 저리 가라 쌩쌩 알 카에다의 전사들!
여자들이 대야에 순두부를 퍼담았다 절구공이에서
뒷다리를 분리했다 머리를 분리했다 어디든 물컥 더운 김이 났다
귀에 묻은 시커먼 소음도 분리했다 네 다리 발목을 잘라 함지박에 담으니
피묻은 추상화가 되었다
테러단들은 또 자 편대로 신의 정원에 뛰어들었다 색색의 꽃 아이보리
연한 연두색의 전원, 눈이 녹고 아지랑이가 일었다 아지랑이를 손가락에 감고
색색의 꽃을 대야에 담았다 버드나무에선 움이 텄다
이 수줍은 정원의 나무와 계곡을 사각으로 나누었다
또 이른봄이 어두워 오자 아직
팔딱 팔딱 가슴에 뛰는 빨간 등을 십자가에 걸었다
―「지퍼처럼 배를 열자 배속은 신(神)의 정원이었다 」중에서
추석을 앞두고 소를 잡는 장면을 마치 위성사진으로 내려보고 찍은 듯한 이 시적 장면은 연상의 빠른 템포로 부산함이 드러나며, 소 잡는 일상의 사건에 중첩된 요즈음의 중대한 세계 시사 알 카에다의 미국테러가 상대적으로 축소 패러디 된다. 요정처럼 바삐 움직이며 암소의 몸을 분리하는 사람들, 알 카에다의 전사들처럼 달려드는 쇠파리들, 이 모든 바쁜 움직임이 일어나는 신의 정원, 즉 이 세계는 곧 암소의 몸 속이다. 또한 시를 읽는 우리가 시인의 시적 세계 안에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암소의 내부에 들어앉은 신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암소를 잡는 일, 테러 사건이 포함된)이 중첩되어 어느 것이 주체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모성적 육체는 한 타자를 싸안고 있다. 자의적인 구분이 없이는 주체와 객체의 구분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모성은 여성/여성성과는 구분되며, 남녀 공히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이다. 이러한 모성은 피상적으로 통일된 주체의 내부에 작용하여 문화와 자연, 주체와 객체 등 여타의 이분법의 경계를 무너뜨려 새로이 형성되는 의미화의 과정, 갱신되는 주체를 형성시킨다. 주객도, 핵도 경계도 윤곽도 없는 미주체의 상태, 전도와 중첩으로 펼쳐져 있는 범벅된 상태 이것이 곧 모성적 육체의 세계이며, 시인의 시 세계이다.
이제 그가 보여주는 환유적 시 세계, 표출된 언어 속에 보이는 이질적 요소들은 모성적 사랑으로 구심점을 찾는다. 파편화된 이론과 모험에 그치지 않고 뿌리를 두고 생성해 나가는 과정 중에 있는 시적 주체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아내 속은 제 그리운 카타콤입니다」에서 보여주듯 모성적 육체의 가장 깊은 곳에 시인의 뼈는 묻혀 있다. 그 안에서 시인의 시적 자아는 자라난다. 시인의 억압된 모성적 육체의 무덤이었던 카타콤은 바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법 이전의 법, 먼 공간, 모성적 육체, 여성성을 나타내는 카타콤 속에 갇혔던 시인의 주체는 "신선한 장미 한 떨기를 노래하면서" 오늘 시적 언어로 새로이 태어나고 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텍스트와 독자와의 만남의 과정이며, 이 둘의 관계는 상호영향을 피할 수 없는 전이적 관계이다. 시인이 일차적 텍스트인 실재계를 언어화한 것이 시라면, 독서는 독자에 의한 이차적 텍스트인 시에 대한 나름의 의미화 과정이다. 같은 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듯이 내가 읽은 시, 내가 경험한 시의 몸은 이미 없다. 현상은 과정 중의 한 순간일 뿐이다.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의미화를 형성한다. 새로운 인식주체와의 만남으로 텍스트의 몸은 끊임없이 각질을 벗고 분홍빛 새 살로 생성될 것이다. 오늘은 시인의 생일이다. 시인이 '시적 언어'의 세계에서 새로운 주체로 생성되듯, 독자와 텍스트 또한 독서과정을 통해 새로이 형성되는 과정 중의 주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우리 모두의 생일이다.
* 안정인
1962년 김천 출생
경북대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 대구 성화여자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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