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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신작시/김혜수/여행은 달린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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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혜수
1959년 서울 생. 1988년 《세계의 문학》,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404호』.
여행은 달린다 외 1편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가방은 홀쭉하다 지퍼가 열린 허기 속으로 기차를 밀어 넣는다 가방은 철도 위를 달리고 있다 가죽 가방 속으로 남자가 들어온다 초록 펜으로 젖가슴에 낙서를 한다 젖가슴에 싹이 트고 잎새가 돋아난다 삐죽 잎새가 가방을 뚫고 나온다 초록 상처가 철도 위를 달리고 있다 가방은 목이 메인다 기차는 길다 28006열차 특실 36번 벨벳 의자가 들썩거린다 빠끔 열린 지퍼 틈새로 수평선을 밀어 넣는다 수평선이 철도 위를 달리고있다 수평선은 길다
얼룩
투명한 물도 얼룩이 된다
유리를 지나 아주 느리게
거울 속으로 스며드는 물
거울 밖의 나를 거울 속으로 당기는
저것은 얼룩이 아니라
서서히 축을 옮기며 번창해 가는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표적
어디선가 한 생을 살고 있던
또 다른 내가, 나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의 아릿함
닦을수록 선명해지는 거울 속의
千手觀音
오래도록 나를 당기는 내 속의
천 개 헐거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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