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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신작시/박해람/꽃피지 않는 정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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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해람
댓글 0건 조회 4,375회 작성일 02-06-2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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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박해람
1968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꽃피지 않는 정원 외 1편


지난봄 옆집 여자가 같다준 구절초는
가을이 다 가도록 꽃피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 집 정원에는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들만 있다.
모든 식물이 입을 꼭 다물고
그 어떤 향기도 내뱉지 않는다.
뭉쳐진 향기들이 굴러다닐 저 엽록의 몸통은 한번도 열린 적이 없었을까
입구가 닫혀 있다는 것은
그 어떤 꽃도 피우지 않겠다는 것이지.
몸 안에서 썩어 갈 여자의 정원
아무도 그 정원을 방문하지 않는다.

다시 구절초 얘기를 하자면
지나간 어느 세상에서 배당된 開花의 순간을 다 써 버렸다고 생각했다
모든 색이 다 떨어져 나가고
오로지 한가지 색으로만 환생한 저 구절초에게는
다음 세상으로 가져 갈 아무 색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꽃피는 것이 싫어요
그 말을 내뱉는 옆집 여자의 입속에 바싹 마른 정원이 있다.
제몸의 수액들을 먹고사는
푸른 가지들.
어쩌면 저 여자도 전생에서 모든 아이들을 다 낳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도 그 정원에 초대받지 못한다.






벌통


입구가 부산하다
하루종일 먹고 뱉어 내는 저 벌 통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해하고 있을 때
모든 것들은 너무도 닮아있어
생각이 가지조차 치지 못하고 있을 때
단순히 저 속은 짐을 덜어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꽃피는 따뜻한 시절만 들어갈 수 있는 저 세계
벌을 치던 노인의 입구는
천천히 곡기를 끊어가고 그 속에는
가르릉거리며 꿀이 끓고 있을까

꽃피는 철이 한 철이듯
너무 많은 시절이 들락거려 반들반들해진
이미 철이 지나 버린 벌통의 입구가 꼭꼭 봉해지고
그 철지난 꽃들의 꽃술에서 흘러나오는 오후가
몸에 박힌 벌침으로 퉁퉁 부어 있는데.
산을 오르고 남은 흰 꽃들이
벌통 앞에 떨어져 있다.

저 안으로 들어간 꽃은 무슨 색으로 내년에 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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