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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신작시/정상하/탱자나무가 있는 풍경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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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정상하 경남 사천 출생.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비가 오면 입구가 생긴다』가 있음.
탱자나무가 있는 풍경 외 1편
애벌레 알 슬어있는
저 으슥하고 적막한 잎의 뒷면 같던 시절
애벌레 알같던 시절
햇빛이 잎의 앞 면에서 동글동글한 체온을 내려보내던 시절
뚜덕뚜덕 빗물이 알껍질을 두드리며
내 안에 귀를 대던 시절
껍질을 깨지 못해 아무데서나 이마를 찧던
희고 둥근 너의 고뇌를 만났던 시절
이제 조금 속이 깊어지는 아픔의 날끝이
알껍질을 쪼기 시작하고
부풀던 꿈이 그 날로부터 알껍질을 늘려
바깥이 내다 보이는 틈새가 눈부시던 시절
빗물의 적막에 움튼 날개
파르라니 윤기 얻은 날개
햇빛의 둥근 무늬 몇 개 씩 찍혀
알 밖으로 날아 오르던 시절
탱자나무 포르륵 포르륵 울타리째 날아오르던 시절
초봄
낯선 마을 어귀에 앉아 지줄대는 새소리를 듣는다 새는 보이지 않고 두엄 더미 뒤로 날개가 돋느라 야산 자락이 포릇포릇 쭉지를 털고 있다 산과 들의 경계가 새소리와 사람들 사이가 한나절 따스하게 아른대는 이유를 알겠다 연줄 잡듯 새소리들을 붙잡고 밭둑 위로 날아 다니던 바람이 안으로 팔을 감는 모양을 하고 다가와서 일어서봐 일어서봐 머리카락을 온통 들어올리느라 발을 뻗대다가 아무것도 가볍지 않은 나를 슬그머니 몇 차례 놓아버리고 오늘 하루 온 종일 여기서 삐대기로 했는지 어디 민박 정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네를 삐그덕 열고 들어간다
가문비 묘목을 캐러 간 사람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저 쪽 물오른 나뭇가지 사이에서 긴 가지따라 길쭉길쭉 자라오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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