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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기획/在日한국인 문학의 현주소/유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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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한국인 문학의 현주소
兪淑子
1.
지난 10월 중순 경 서울에서 개최된 모(某) 학회에서 필자는 [재일한국인 문학의 다양성]이라는 테마로 발표를 했다. 예년과 달리 올해의 대회는 외국 학자들도 참석, 발표하는 국제학술대회인 만큼 모든 발표자는 영어 발표문을 준비해야 한다는 요청이 있었던 터라, 서툰 영어 실력이나마 대강 요지를 썼다. 그런데 '재일한국인 문학'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옳을까. Korean Japanese Literature? 그동안 머리 속에 쉽게 자리잡고 있던 이 표현을 떠올리고 나는 스스로 놀랐다. Korean Japanese, 한국계 일본인? 일본에서 그들은 '재일조선인'(가장 일반적인 호칭이라 할 수 있다) '재일한국인' 또는 '재일 조선·한국인'으로 불리며, 이들에 의해 쓰여진 문학은 흔히 '재일조선인 문학'으로 통칭된다. 그러나 하야시 고지(林浩治) 같은 연구자는 '재일조선인 일본어문학'이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Korean Residents in Japan's Literature. 다소 길어지고 말았지만, 대신 영어 표기에는 조선인, 한국인이라는 두 단어가 쉽게 해결되는 편리함이 있다. 그리고 Korean Japanese Literature가 아니라 Korean Residents in Japan's Literature 라는 표현 속에 '재일한국인 문학'의 독자성이 자리잡고 있다.
2.
여기서 간단히 1945년 이후 전개된 재일문학의 흐름을 짚어보면, 재일 1세대 대표 작가로서 김달수(金達壽), 김석범(金石範), 2세대 작가로는 김학영(金鶴泳), 이회성(李恢成),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이양지(李良枝), 유미리(柳美里) 등이 있다. 이들 각 작가의 문학적 특징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재일 세대의 교체와 더불어 기존의 민족, 조국지향적인 사고에서 점차 개인, 실존에 관한 테마로 문학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특히 주목할 사항은 1990년대 이후 놀라울 만큼 다양한 개성을 지닌 재일작가의 출현이며, 이들의 문학이 일본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는 가운데 일본문단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심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가 바로 유미리다. 1992년 이양지의 갑작스런 타계 소식은 재일문학에 드문 여류작가의 존재임을 고려할 때, 안타까움이 더했다. 유미리는 극작가로 출발해 남다른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으며 소설가로서도 수년 만에 일약 인기 작가의 반열에 뛰어올라 문학적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단지 재일이라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운 소설은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재일을 써야 한다"는 말을 흔히 듣는데, 그걸 씀으로써 [재일]이라는 일반론으로 회수되는 것이 싫습니다. 아
무래도 개별적인 문제로서 읽혀질 수 없게 되지요. 그래서 저는 거듭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장소에서 쓰고 싶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미리의 이러한 입장은 선행 재일작가들이 추구해 온 테마, 이를테면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문제로부터 그녀가 멀찍이 물러나 있음을 시사한다. 아울러 이는 일본에서 출생, 성장한 재일 2, 3세대가 거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 지금, 새로운 '재일'의 개념이 마련되고 있음을 뒷받침해 주는 사실이기도 하다.
유미리의 글쓰기는 우선 자신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실세계와의 부조화, 부자연스런 관계에서 출발한다. 여기엔 유년시절의 그녀를 둘러싼 환경적 조건으로서 가장 기초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가족, 그리고 이지메를 당한 학교에서의 우울한 체험과 내면의 불안이 깊이 개입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글쓰기는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타자와의 관계를 맺기 위한 절박한 행위로서 시작된 것이다.
이미 소설가로서의 활약이 너무 두드러진 탓일까, 유미리의 희곡에 대한 평가는 그리 활발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희곡은 소설가 유미리를 탄생시키는 데에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녀의 소설 또한 희곡적 요소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미리의 희곡은 적절한 소도구의 사용과 장면설정, 그리고 탁월한 언어감각이 돋보이는 대사와 설명으로, '읽는 희곡'의 재미와 문학적 완성도를 지닌다. {정물화}에서 화사한 사과 꽃잎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교실풍경은 이미 삶보다 죽음에 더 근접해 있는 주인공의 의식을 몽환적으로 암시한다. 또 {해바라기의 죽음}에서 구관조와 영귀의 애절한 대화 장면이 어머니의 부재가 초래한 결핍을 감동적으로 전달하는가 하면, {그린 벤치}의 강렬한 태양은 벤치 하나로 성립된 단순한 무대장치와 어울려 어머니의 정신적 혼란과 불안한 심리를 부각시키는 데 일조를 한다. {물고기의 축제}에서 가족사진 촬영장면을 극의 맨앞뒤에 맞물리도록 배치한 것도 과거와 현재를 순간적으로 소통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다음은 {해바라기의 죽음}에서 '영귀와 구관조' 장면의 일부분이다.
영귀 (달을 올려다보며) 새빨간 달. 달빛을 쐬면 미치광이가 된다는데……정말일까?
구관조 오카에리나사이
영귀 (구관조에게 말을 가르친다) 안녕하세요! 안, 녕, 하, 세, 요!
구관조 오카에리나사이
영귀 어째서 '오카에리나사이' 밖에 할 줄 모르니? 네게 말을 가르친 이는 틀림없이 외톨이였을 거야. 집으로 돌아와 누군가 '오카에리나사이' 라고 말해 주었으면 해서 네게 말을 가르친 거야……아니면……떠나버린 누군가가 어서 돌아왔으면 해서……그래서……그때……그 사람을 기쁘게 해 주고 싶었던 걸까? 너의 주인은 어째서 널 버렸을까? 새장 안에 갇힌 채 버려지면, 바로 죽고 말텐데……나쁜 사람이야…….
구관조 오카에리나사이
영귀 넌 기다리고 있니? 널 버린 주인이 데려가 주기를……?
구관조 오카에리나사이
영귀 아빠와 오빤 말야……기다리고 있어. 나? 난 기다리지 않아! 다신 안 돌아온다는 걸 알아 ……. (중략)
구관조 오카에리나사이
영귀 어서, 말을 배워……. 그러면 네 얘기도 들어줄 수 있으니까…….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
구관조 오카에리나사이
영귀는 새장 속의 구관조에서 새빨간 달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영귀는 새빨간 달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하다.
영귀 (자신도 모르게 엉겁결에 내뱉는다) 오카에리나사이.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황급히 지운다) 안돼! 생각해도……소용없어……생각해선 안돼. (중략)
영귀 (구관조에게) 나, 이런 얘기하는 거, 처음이야……들어줘서 고마워. 고, 마, 워. 잘 자. (구관조에게 말을 가르친다) 고, 마, 워. 잘, 자!
구관조 오카에리나사이
영귀 (살짝 구관조에게 가르친다) 엄, 마……엄, 마……오카에리나사이……오카에리나사이! 엄, 마, 엄, 마!
구관조 오카에리나사이
영귀 (구관조처럼) 오카에리나사이! 오카에리나사이! 엄마……오카에리나사이. (신음하듯) 엄마……엄마…….
희곡의 소재가 되었던 가족은 소설에서도 붕괴된 모습으로 묘사된다. 부모의 불화, 별거로 인해 흩어진 가족의 상실감을 직접 체험한 작가에게 가족은 어떤 형태로 존재한다기보다 가족을 연기하는 가족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유미리는 가족(의 붕괴)을 한 축으로 다루면서 또 다른 축으로는 가족의 붕괴로 인한 고독한 개인의 모습을 함축적이고 비중있게 투영시키고 있다. 첫 소설 [돌에 헤엄치는 물고기]를 비롯 [풀하우스: フルハウス] [콩나물: もやし](1995) [가족시네마] [한여름: 眞夏](1996)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현실 속에서 어떤 관계로든 그 결실을 맺지 못한다. 정신적 공감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가는 상대는 대체로 비현실적인 인물이거나 현실(세계)로부터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들과 행복한 만남을 이루지 못하고 거절당한다. 그녀는 한 쪽을 거부하는 대신 또 다른 한 쪽에서 거부당한다. 이러한 패턴은 유미리 소설에서 거듭 발견되는 결말의 방식이다. 작가는 자신의 가족에게 발생하는 문제와 모습들에서 소재를 발견하고, 가족 속에서 체험하는 고독감을 바탕으로 타인과 현실세계와의 단절된 관계성을 제시하고 문제화하고 있다. "내가 작가로서 관심을 갖는 건 깊은 상처를 지닌 사람과, 그 상처를 성스런 것으로 바꾸고자 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대해서다. (중략) 내겐 오랫동안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는 의식이 줄곧 자리잡았고 바로 이것이 나의 한(恨)으로 다가와, 글쓰기로 안내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가족 시네마] 이후, 유미리는 현대 일본 사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 이를테면 스토커, 청소년 범죄나 폭력, 여학생의 원조교제와 같은 소재를 [타일: タイル](1997) [골드러시: ゴ-ルドラッシュ](1998) [여학생의 친구: 女學生の友](1999) 등에서 각각 다루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가면의 나라: 假面の國}(1998)라는 시사평론을 집필할 정도로 사회 전반에 걸친 그녀의 적극적인
관심과 작가정신의 일단으로 받아들여진다. "소설에서 인간을 묘사하는 이상, 인간 내면의 깊은 구석까지 침투되어 있는 정치나 사회를 무시하고 모른 척할 수 없다, 문학은 공공(公共)적인 것과 무관하게 성립될 수는 없다"라는 작가의 관점을 통해, 금후 보다 확대된 문학세계를 달성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3.
한편 재일 2세대 작가로 오사카 출신인 양석일(梁石日, 1936- )은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층과 동물적 본능, 이기적 욕망 등을 왕성한 창작욕으로 장편에 담아내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시인으로서 동인지 [진달래: チンダレ]에 속해 있었고, 그후 10여년간의 택시 운전사 체험을 적은 논픽션에 가까운 작품, {狂躁曲}(1981) {택시드라이버 일지: タクシ-ドライバ-日誌}(1984)를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족보의 끝: 族譜の果て}(1989) {밤의 강을 건너라: 夜の河を渡れ}(1990) {자궁 속의 자장가: 子宮の中の子守唄}(1992) 등의 작품에서 양석일은 "재일의 밑바닥 층에 초점을 맞추어 혼돈과 활기가 담긴 재일의 에네르기를 묘사"함으로써 "정치, 민족, 조국이라는 고도의 초점에서 문학을 성립시켜 온 재일조선인 문학에 강렬한 환기창을 열어보이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1998년 발표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장편소설 {피와 뼈: 血と骨}는 작가의 부친을 모델로 한 자전적 작품이나, 동시에 소위 '아시아적 신체'를 주장해 온 양석일의 문학적 지향과 맞닿아 있다. 그는 "신체만큼 정직한 게 없다"는 지론 하에, "문화란 신체의 반영"이며 "아시아적 신체란 억압된 신체이며 사상(捨象)된 신체이다. <지(知)>의 신체론으로는 아시아적 신체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내비친다.
김준평(金俊平)은 한 되들이 소주병을 나발 불 듯 들이켰다.
"말해 봐! 내가 네 놈의 뭐냐!" (중략)
절대 도망갈 수 없는 감옥 안에서 고문을 받는 죄수나 다름없었다. 혈연이라는 폭력,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심문, 증오는 사랑과 똑같이 강한 유대로 연결되어 있다. 김준평이 원한 것, 그건 무엇보다 강한 피의 유대감이었다. 피는 피로써 갚아진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피를 증명할 수 있나? (중략)
"식칼을 가져 와."
식칼은 숨겨놓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마루방에 정좌를 한 탓에 다리가 저려 일어섰을 때, 성한(成漢)은 두세 걸음 비틀거렸다. 비틀거리며 숨겨둔 식칼을 하나 가져왔다. 이 식칼로 어쩌자는 셈인가. 누나와 나를 갈갈이 도려내기라도 할 작정인가? 극한에까지 이른 공포는 차가운 피로 변해 피부 표면을 덮고 있었다. 베이면 분명 응고된 흰피가 나오겠지.
김준평이 웃옷과 속옷을 벗자, 상반신이 알몸으로 드러났다. 날붙이며 갈고랑이에 찔려 찢어진 무수한 상처가 험상궂은 육체에 생생히 새겨져 있다. 아랫배에서 배꼽께에 걸쳐 치모(恥毛)가 무성하고, 온갖 오욕덩이가 빽빽이 찬 소세지 같은 복부가 출렁거렸다.
김준평은 식칼을 쥔 성한의 팔을 잡고 말했다.
"내가 미우냐. 내가 미우냐!"
충혈된 눈이 이글거렸다. 성한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똑똑히 말해 봐!"
하고 김준평은 고함쳤다.
"아니, 밉지 않습니다."
하고 성한은 더듬거렸다.
"거짓말. 이녀석, 네놈이 뭘 생각하는지 내가 빤히 안다. 날 죽이고 싶을만치 밉겠지. 미우면 이 식칼로 나를 찔러봐. 날 찔러 죽여봐!"
이 작품의 무대가 된 오사카 이카이노(猪飼野)는 원래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하에서 가혹한 토지수탈로 인한 가난을 모면하고자 죽음을 무릅쓰고 밀항해 온 조선인에 의해 형성된 주거지역이다. 그러나 1973년 2월 1일, 오사카후(府)가 주거표시의 변경이라는 명목하에 말소한 이래, 이카이노는 지도에서 사라진 지명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카이노라는 이름은 오사카의 재일한국, 조선인 거주지역의 대명사처럼 불리워지고 있으며, 이곳 출신의 작가들은 이카이노에 대한 애정과 정서를 작품에 그려내고 있다.
일찍이 시인 김시종은 이카이노를 '보이지 않는 동네'라 부르며 다음과 같이 읊었다. "없어도 있는 동네./ 그대로 고스란히/ 사라져버린 동네./ 전차는 애써 먼발치서 달리고/ 화장터만은 잽싸게/ 눌러앉은 동네./ 누구나 다 알지만/ 지도엔 없고/ 지도에 없으니까/ 일본이 아니고/ 일본이 아니니까/ 사라져도 상관없고/ 아무래도 좋으니/ 마음 편하다네. (중략) 한 번 시작했다 하면/ 삼일 낮밤./ 징소리 북소리 요란한 동네/ 지금도 무당이 날뛰는/ 원색의 동네./ 활짝 열려 있고/ 대범한 만큼/ 슬픔 따윈 언제나 날려버리는 동네./ 밤눈에도 또렷이 드러나/ 만나지 못한 이에겐 보일 리 없는/ 머나먼 일본의/ 조선 동네."
이러한 이카이노 특유의 원풍경을 원수일(元秀一, 1950- )은 단편집 {이카이노 이야기: 猪飼野物語}(草風館, 1987)에서 담담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포착해 낸다. [제주도에서 온 여자들]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제주도에서 건너온 재일 1세 어머니들의 억척스럽고 생명력 넘치는 삶이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낙천적 유머감각과 더불어 생동감있게 묘사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현재 오사카 출신 재일작가의 활약이 부쩍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늘의 집: 陰の棲みか]으로 2000년도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현 월(玄月, 1965- )의 등장이 좋은 예다. [젖가슴: おっぱい] [무대 배우의 고독: 舞臺役者の孤獨](1998) 등 그의 소설은 이전의 수상자들인 이회성, 이양지, 유미리의 문학에 내재된 사소설(私小說)적 경향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충분히 개성적이다. 재일 1세대 작가인 김석범, 시인인 김시종, 2세대인 양석일과 원수일, 그리고 신세대 작가에 속하는 현 월에 이르기까지, 오사카 이카이노의 잠재력은 이제서야 기지개를 펴고 서서히 그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중이다.
한편 재일문학이라면 으레 어둡고 고뇌하는 문학의 대명사처럼 간주되던 인식을 바꿔놓으며, 재일작가로서는 최초로 나오키(直木) 문학상을 수상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킨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紀, 1968- )의 등장도 신선하다. {GO}라는 영어 제목부터 파격적일뿐더러, 한국 국적을 가진 그는 자신을 선뜻 '코리언 재패니즈'라 부른다. "나는 '조국'이라는 말이 싫습니다. 저보다 앞선 재일작가 세대는 조국, 국가에 대한 희구심이 있어 갈등을 겪었다고 생각하지만, 저희들 세대는 없다고 봅니다." "나는 원래 국적이 조선이었는데 고등학교 일학년 때 한국으로 바꾸었습니다. 어떤 변화가 생길 거라는 생각에 두근두근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이 사실은 정말이지 충격이었습니다."
'신시대의 문을 박차고 나온 혁명적 <재일> 팝소설의 대걸작'이라는 선전 문구를 달고 간행된 {GO}에는 작가 자신의 '재일' 감각이 고스란히 용해된 가운데, 고뇌마저도 세련되게 치장되어 있다. 오직 하와이 여행을 성사시킬 목적으로 한국 국적을 선택한 아버지를 둔 나 역시, 국적 따윈 언제든지 쉽게 바꿀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국적 선택에 있어 생활의 편리함을 우선으로 고려하는 추세는 현실적, 실존적 조건으로서 '재일'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지도 모른다.
4.
이상에서 대강의 윤곽을 살펴 보았듯이, 광복 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재일한국인 문학은 최근 몇년 사이, 각 세대별은 물론 동세대간의 다양한 개성의 출현과 더불어 그 범주를 심화, 확대시켜 왔다. 재일문학의 다양성은 곧 '재일'의 존재양식이 그만큼 다양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전후 20년간 재일의 의식은 주로 일본과 조선이라는 이항대립적 요소를 담고 있었으나, 이러한 상황이 바뀐 것은 70년대 이후 새로운 재일 세대를 중심으로 한 민족권리 옹호 투쟁에 의해서다. 일본과 조선의 대립, 분열이 아니라 일본에 정주하는 재일외국인으로서 일본인과 동등한 권리를 찾아나가는 새로운 목표 설정에 의해, 재일은 일본과 조선 양쪽을 내부의 타자로서 자리매김하는 걸음을 내디뎠다."
기존의 틀을 부정하거나 또는 지평의 확대를 도모하는 과정에 놓인 재일문학은, 따라서 늘 현재진행형이다. 민족적 정체성과 실존적 자아확립의 문제에서 이제 재일문학은 인간 내면의 심연을 통찰하고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혼돈 및 병리적 현상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민족을 내포하면서 동시에 민족을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재일문학에서 발견된다. '재일'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보편적 문학의 힘으로 승화시켜 나감으로써, 재일문학의 존재의의가 더욱 깊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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