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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초점/여성대표시 10인선 작품 해설/이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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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대표시 10인선 작품 해설
이경림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토씨 찾기', '그 곳에도 사거리는 있다',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시 산문집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신화 속에서 살아가기
1, 우주, 허공속에서 生育하는 그녀들의 몸
달과 해의 메타포가 여성과 남성이라는 것은 진부한 이야기다. 진부하다는 것은 누군가 아주 오래 전에 발견한 사실을 그 이후에 사람들이 기정 사실처럼 받아들여 왔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그 것은 그만한 긍정적인 논리가 뒷받침되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진부한 사실도 오히려 진부하게 들여다보면 전혀 진부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해와 달이 어울려 만들어 온 시간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캄캄한 우주 공간에서 그 것들이 끊임없이 반짝이며 흘러온 시간을 생각하면 신비롭다. 그 긴 날들을 해는 한 번도 걸르는 일없이 출근을 하고 빛의 씨를 뿌리고 그의 세계를 번창시켰다. 달은 또 어땠는가? 그 것들을 쓸어안고 잠재우고 축축한 이슬로 키우면서 그들이 번창하고 생성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을 것이다. 그들은 금슬 좋은 부부이다. 그들의 아이들이 우주를 가득 채을 만큼 그들의 가계는 번성해 왔고 지금도 번성하다. 가만히 보면 해와 달은 만나는 적이 없는 것같은데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을 만들까? 그러나 우주는 공이니까 해가 그 둥그런 길을 넘어가 아주 잠깐 달을 만나 아이를 만들고 다시 출근할 차비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달은 캄캄한 허공에서 저 혼자 배가 불러오고 달이차면 둥그런 어둠 하나 낳고 제 몸을 어둠에게 다 주고 다시 여윈 그믐달로 깜깜한 허공에 엎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그들이 늘 반대 쪽에 있는 것을 본다. 바로 그 것이 남과 여의 거리이리라. 그들 사이에는 누가 뭐래도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반나절 쯤의 어둠이 있다. 그래서 아무리 누가 누구를 힘으로 욱박지르고 누구는 누구에게 제 몸을 다 퍼 주고 깜깜한 허공에 그믐달로 엎어져 있다고 쯧쯧 혀를 차도 이 상투적이고 지리멸렬한 신화는 좀채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근년에 들어서 이상하게 보름 달은 엄청나게 커지고 이따금 대낮에도 해 뒤에서 히죽히죽 웃는 달이 보인다. 왜 그럴까?
1. 다 수용하는 우주, 그러나 찢기우는 우주
인간의 몸은 우주다. 여성의 몸은 생산하는 우주다. 그러므로 인류의 역사는 긴긴 어머니의 역사다. 여인은 몸 안에 어머니를 배고 어머니를 키운다. 키워진 어머니는 본 어머니를 찢고야 세상에 나온다. 그들은 어머니 속의 양수까지 모두 끌고 나와 다시 어머니를 배고 키우고 낳는다. 소용이 없어진 어머니의 어머니.....들은 질긴 돌이 되어 이 이상한 풀밭을 이어간다 그 것이 역사다
나는 어머니를 찢고 들어왔지요
어머니의 피로 첫 옷을 입고
어머니의 비명으로 첫귀를 열었고
어머니의 손가락으로 첫 눈을 떴고
어머니의 숫가락으로 첫밥을 먹었지요
내 피가 내 아이의 첫 옷이 될 때 까지
그 안에서 무럭무럭 자랐지요
누군가 찢지 않고는 미궁을 벗어날 수 없나니
나는 내 아이가 때맞춰 나를 찢게
긴 끈으로 풀밭 입구까지 이어 두었지요
내가 찢고 미궁 벗어날 때 어머니 물
모두 나를 따라와 내 딸에게로 갔지요
어머닌 나로 인해 질긴 돌이 되었으니
-이향지, 돌 속의 넓은 풀밭
위의 시에서 이향지는 그렇게 수용하고 찢기우는 자들의 끝없는 순환고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누군가를 찢지 않고는 이 미궁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찢고나온 어머니의 대지에 들어온 모든 것들을 수용하리라 마음먹는다. 그것들이 (비록 팬티를 뒤집어 입고 들어온 남자처럼) 야비한 어떤 횡포라할지라도. 왜냐하면 그는 그들이 독니틈에 끼인 고깃조각을 무슨 이쑤시게로 쑤셨는지까지 알 수 있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며 결국 자신은 그들이 찢고나갈 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성애는 제 손가락을 넣어 그들에게 닥치는 바람을 막고 자신의 피와 살점을 가져다 굶주린 바람에게 먹이라고 말할 정도니까
성난 바람이 닫고 가는 문에
어머니의 손가락이 잘리고 말았다
아니, 손가락을 넣어
어머니는 들이닥치는 바람을 막으신 것이다
얘야, 떨지마라
이 피와 살점을 가져다 저 굶주린 바람에게 먹여라
피에 점화된 불꽃을 보고
문밖에 승냥이들은 달아나기 시작했다
허옇게 굳어가는 손가락을 들고
촛불처럼 걸어가는 어머니
-나희덕, 斷指
그렇게 다 내주고 그녀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허공한줌 뿐이다. 그러나 그 본능적 모성은 그 것을 허공이라고 텅 비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차 있곤 했지.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 밤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놓아 주었어. 허공 한 줌가지도 허공에 돌려주듯 말이야.
-나희덕, 허공 한줌
생각해 보면 그녀들의 모성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녀들의 거주지가 본시 밤 하늘이고 그 곳에서 그녀들이 수억년동안 한 일이란 제 몸을 어둠에게 덜어주고 어둠을 몸 안에 쓸어 안는 일 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그녀들의 역사는 허공 한 줌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그녀들에게 있어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고 움켜쥔 손바닥과 다 놓아버린 손바닥의 차이는 없다. 어차피 그 속은 허공이었고 허공은 몸이 없으니까.
2 力士, 役事, 歷史, 轢死.......
그녀들의 삶이 결코 생육의 절대자로서의 삶이었는가 하면 그렇지 못했다는 것쯤 누구나 알리라. 마치 공기가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듯이 그녀들의 노역은 당연지사로 여겨지고 오히려 이글거리는 해의 힘에 밀려 점점 더 궂은 일과 힘든 노역을 견디어 왔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런 노역이 한낱 보푸라기의 꿈틀거림으로 밖에 취급받지 못했다고 최정례는 중얼거린다.
저 티끌을 지나서 왔구나
저 벌레를 지나서
한없이 지나서 왔구나
업은 아이를 내려놓고
순두부룰 시켜먹는동안
훌적거리며 코를 훔치는동안
아이는 끽끽거리며
바닥을 기어다니고
너의 나이 나의 나이
저 끝에서부터의
나이를 셀 수가 없구나
그 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까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는데
.....하략................
-최정례, 보푸라기들
시간은 돌비까지 깨뜨리고 은금보화 같은 가치있다고 생각했던 것들마저 땅에 묻고 까마귀까지 긴 족보를 이루는데 그녀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벌레같이 티끌같이 살아온 그녀들의 시간? 그런 곳을 이경림은 '이상한 거리'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이 무언가에 취해 이상한 거리에 오게 된 거라고, 그 거리는 '안돼'라는 말만 번쩍거리는 곳이라고.
취중에 길을 잘못들었다
네온이 휘황하게 뛰어다닌다 하늘가득 말들이 불을 켜고 뛰어다닌다 안돼!
아무대나 침뱉으면 안돼 노상방뇨하면 안돼 무단횡단하면 안돼
자정 넘어 술집가면 안돼 남의여자 탐내면 안돼 남의 남자 탐내면 더욱 안돼
여자가 너무 큰소리치면 안돼 늙은 여자 문단 데뷔하면 안돼
시 잘 써도 별볼일이야 학연없으면 안돼 말도 안돼는 소리
하면 안돼 안돼는 것 자꾸 미련가지면 안돼
안돼안돼!!!
...................
거리가 후루룩 어둠을 들이켜고 있다 엄청나게 큰 사발이다
춥다
-이상한 거리, 이경림
직설적으로 뱉어낸 위의 상황은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當然事들이다. 그런데 그 당연사 속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들이 있음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늙은 여자 문단 데뷔하면안돼/시잘써도 별 볼 일이야/ 학연 없으면 안돼/. 다소 과장된 면도 있지민 그렇다고 누가 이런 것들을 아주 터무니 없는 생각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겠는가? 한 술 더 떠서 노혜경이 그려내는 그녀들의 세상은 조금 더 첩첩 산중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문이 있고 꼼꼼히 쌓은 돌담아래 또 문, 아홉겹 첩첩 담장
맨 안 쪽에 엄마의 방
....중략.........
방문을 열면 열 두폭치마 다소곳이 입고 새각시처럼 앉은 우리엄마. 배꼽아래 피의 강물이 흐르는데 커다란 배처럼 앉은 우리 엄마
........중략.........
눈물도 마른 그 거칠거칠한 피부 아래
조용히 당신이 숨겨둔 말 한 마디가 들리세요? 저기 우물 속에서 부르는 내 목소리
엄마,엄마, 들리세요?
오랜 전쟁이 끝나고 마침내 돌밭에 씨를 뿌려야겠다고 마을 사람들이
손에 발에 갈퀴를 메고 들로 나간 뒤
엄마는 우물에다 딸들을 쓸어 담았죠
-노혜경, 엄마와의 전쟁
이 시에 나타나는 엄마의 세상은 아홉겹 담장의 맨 안쪽에 갇혀있다. 주목할 점은 우물에다 딸들을 쓸어 담는 엄마의 모습이다. 아홉겹 담 속에서 수 세기 살아 온 엄마의 눈에 비친, 말을 배운 딸들의 모습은 너무 위태로워서 차라리 우물에 쓸어 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물 속에 갇힌 딸들이 엄마를 부르는 소리는 바깥 세계를 향한 그녀들의 외침이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피로 흘러가는 강물 위에 커다란 배처럼 떠서 세상을 쓸어담고 가야하는 그녀들에게 말은 필요없었다. 다만 배를 띄울 정도의 넉넉한 피흘림과 배의 안온한 품만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 벙어리의 세상은 또 이런 시를 낳는다.
산골 소녀 영자는 산새에게 말을 배웠죠
영자의 목소리는 조금 높았죠/듣기에 껄끄러웠죠
사람들은 그게 재미있었죠/저도 그랬죠 영자에게
산새처럼 말하라고/tv 속에 가두고 모이를 주었죠
......중략......
영자 아빠는 영자에게 말했죠/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말라고
입을 다물라고 경고 했죠/ .....중략......
사람들에겐 산새의 말을하는/ 영자만 필요했죠 물론 나도 그랬죠
[-성미정, 사실은 제가 영자 아빠를 죽였죠
사실 성미정이 이 시를 쓸 때 의도는 여성에 국한 된 이야기는 아니었을런지도 모른다. . 그러나 뒤집어 보면 '영자'로 대변되는 '여성'은 아버지에 의해 말이 봉쇄된채 살아온 이 나라 여성의 모습이 아닌가? 말을 못 배운 그녀가 비록 산새의 말이라도 하려고 했을 때 말 못하게 하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살의가 생기고 성미정은 그 살인에 자신도 동참했다고 말하고 있다. 신세대들의 적극적 방어태도가 나타나 재미있는 시이다. 그런 적극적 방어의 형식을 지나 분노에 찬 공격적 태도를 보이는 김정란의 시를 보자
몇 년이나 더 살아야할까
이 말들을 세상으로 데리고 나와
썩은 자들의 썩은 대가리를
후려지는 망치로 삼으려면
저 참을 성 많은 엄마의 말들을 꺼집어내
코앞에 들이대어 보여주려면
"봐, 네가 버린 엄마야"
..중략...........
그 것은 분노의 힘으로 치솟는다.
-김정란, 힘센고요 속으로
그러나 그런 적극성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어처구니없는 히스토리는 계속되고 해의 권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그들의 낮은 그녀들의 밤보다 아름답고 당당하다. 그녀들은 그렇게 오래 걷고 또 걸어왔지만 아직도 그 속에는 그녀들이 없는 것이다.
나무에 걸린 초승달
아무리 만월을 향해
에스컬레이터를 타도
언제나 그의 낮은 나의 밤보다
아름답고 당당했다
그토록 오랜 길 걷고 또 걸어 왔지만
히스토리 그 안엔 내가 없다
욕망으로 뒤덮힌 엉덩이
그들의 펜으로 쓰여진 가책없는
사랑이 있을 뿐
-김상미, 히스토리
아직도 그녀들의 히스토리는 다른 남자 또 다른 아빠를 피해 끝없이 달아나는 일 뿐이고 그녀들은 그들의 음경주위에서 수세기 멈추어 있거나 녹아내려 소멸하고 있다고 김상미는 진부하기 이를 때 없는 쇠창살만 두들기며 짜 맞추고 있는 그들에게 분노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여전히 삶은 희망이고 어디에건 그 것을 걸어 놓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이 곳에서의 그녀들의 생인 걸
뜨겁게 달아오르는 이 저녁/ 이 저녁도 아주 저물겠지만
지금보다 느린 눈길이래도/그 때도 새잎따라 눈 높았으면
그 땐 성글게 별 뜨겠지만/한 빛이라도 떠올라 준다면
그 때도 나는 살아 있는 것/조금 나아질 수 있는 것
-한영옥, 그 때는 나도
위에도 말했듯 우주가 존제하는 한 해와 달의 운행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진부한 메타포도 계속될 것인가? 아님 그 것들이 전혀 반대의 메타포로 읽힐 날도 있을 것인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부부이고 누가 뭐래도 그녀들의 노역은 아름다웠다는 사실이다 그녀들의 그 고요한 노역의 세계가 얼마나 눈물겹게 아름다운지, 우주 일원상을 돛처럼 올린 그 둥근 貞女들의 마을을 보라.
바닷가 황폐한 마을
배 들어오고 나가는 일 없어져버린 옛 포구 마을에
정녀의 집 영산 서원이 있습니다
포구 사람들이 버리고 간 긴 갯벌을 넓게 앞자락에 펼치고
둘레의 정적 속에서도 환하게 있습니다
우주일원상에 종신서원한 처녀들
늙거나 젊거나한 둥근 처녀들을 기르고 있습니다
그 처녀들 끈적이는 갯벌을 끌어 안고
뒤로 소슬한 영산 자락에 의지해 기도생활합니다
한나절은 모두 뒤 산밭으로 나가 땀 흘리고
돌아오면
우주 일원상 만큼 둥글고 커단 연못가에 겹겹이 꽃을 가꿉니다
둥근 처녀들이 모두 산밭으로 일 나간 사이
빈 영산 서원은 저 홀로 크게 놓인 거울만 같습니다
앞에와 제 보습 비춰볼 이라곤 전혀 없는 외딴 장소에
하늘만한 거울이 걸려잇는 격이랄까요
그 거울의 고요 헤치며 뜻밖의 손님이 찾아듭니다
땀 뻘뻘 흘리며 어린 게 한 마리 찾아 듭니다
하얀 앞마당에 와 먼저 엎드리고
못난 걸음으로 한 바퀴 모래마당을 돌고 놉니다
빈 영상 서원이 이때처럼 차 오르며 거울인 제 얼굴 다 열어
시간의 황금빛 두 팔 펼쳐드는 것 본 적 없습니다
바닷가 황폐한 마을 영산서원에는
뱃길 끊어져 먼 바다 넘어오는 큰 배 그리운
어린 게와
우주 일원상을 돛처럼 올린 둥근 처녀들이
연년이 같은 조수를 타고 오르내립니다
-정녀의 집 영산 서원
그녀들이 詩를 쓴다. 하필이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멀고 먼 그시를! 나무로 쓰고 돌로 쓰고 길로 쓰고 남편으로 쓴다. 그녀들은, 시를 먹고 시를 입고 시를 베고 잔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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