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4호/신작시/강은미/일반국도 21번
페이지 정보

본문
신작시
강은미
2000년 <문학과 의식> 신인상으로 등단
일반국도 21번
널 찾아가는 일반국도 21번
선 위의 선
멀고도 한적하지
어디를 스쳐가도 기척을 내지 않지.
다시 2킬로미터를 달려왔다고
표지판은 알려주지
네게 이를수록 흙은 붉지
혼곤한 잠에 빠져있지
네 장화에 묻었던 붉은 흙.
표지판에는
폭풍의 노정도 실려있지
계절마다 폭풍은 오고
길 위로
담 위로
지붕들 위로
네 장화 위로
어떻게든 폭풍은 빠져나가지.
네가 있는 일반국도 21번
나는 물의 둘레를 돌아가지
제 그릇과 서로 견디는 물.
물결이 일면
나는 길 위에 손을 얹지.
네게 가기까지
네게로 향한 길은
모두 일반국도 21번
일반국도 21번은 끝이 없고
겨울 폭풍과 함께
나는 가고 있지.
아카시아 지는 자리
어찌 된 일인지 소나무 숲 아카시아꽃이 하얗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다시 아카시아가 지고 있었습니다. 소풍을 나와 잠깐 잠이 든 것뿐이었는데 깨어보니 돗자리 위로 꽃잎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른 봄 오래된 숲에 뚝 떨어져 피어나는 산벚나무 한 그루처럼 저의 자리가 환하게 빛났습니다. 저는 영문을 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잎사귀들이 끝없이 겹쳐 그늘을 만드는 가지들의 먼 끝에 미처 피지 않은 아카시아 꽃들이 추운 밥알처럼 붙어있었습니다.
입추가 다 지나 도대체 저는 어디를 다녀왔는지요. 돌아앉으려면 손으로 꽃잎을 치워야 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떨어지는 아카시아를 치울 때, 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아쉽고 가슴 아프냐고, 너도 이런 마음을 아느냐고, 아카시아 하얀 꽃이 제 손등을 쓰다듬었습니다.
- 이전글4호/신작시/김승종/태극(太極) 02.06.16
- 다음글4호/단편소설/개와 거울/이지형 02.06.1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