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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특집/일본대중문화의 개방과 아시아시대의 우리문화/서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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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일본대중문화의 개방과 아시아시대의 우리문화
서연호 (고려대 교수)
일본대중문화의 개방
1998년 10월, 한일의 양국정상회담에서는「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쉽 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2000년 여름부터 2001년 8월 15일까지 일년여에 걸쳐서 한일양국은 이른바「일본역사교과서 문제」로 일대 난리를 겪었다. 공동선언의 목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일본정부는 다시 저들의 본색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천황폐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존재이고, 따라서 일본은 과거에 한국·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강제로 침략하거나 그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실이 없다는 것이 문제 교과서의 내용이었다.
김대중정부가 출범한 1998년 초부터 한일관계는 전보다 더욱 긴밀해지고 자유롭게 되었다. 정부는 파트너쉽 공동선언을 준비하면서 한편으로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로 오랜 세월 공식적으로 금지했던 일본대중문화를 개방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문화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일문화교류정책자문위원회(위원장 지명관)와 문화관광부 관계관들의 수개월에 걸친 조사·연구·검토가 정부조치를 마련하는 데 기초가 되었다. 공동선언 발표와 같은 무렵에 제1차 문화개방이 단행되었다. 그리고 2001년 9월 현재, 예정된 제4차 개방이 중단되기 이전까지 매년 2차와 3차 개방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문화개방은 국민적 합의하에 정책수립, 신중한 접근, 상호주의, 건전성, 민간차원의 교류를 중시하는 원칙으로 전개되었다. 동시에 양국간 불행한 역사와의 관계가 적은 분야부터, 문화적 가치가 높은 분야부터, 우리 업계의 경쟁력이 있는 분야부터 개방하는 방법에 따라서, 단계적·점진적으로 개방하되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상당한 속도로 추진되었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 일본문화상품을 만나는 것은 일상사가 되었다. 개방의 구체적인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제1차 개방(1998년 10월)에는 4대(칸느·베니스·베를린·아카데미) 국제영화제의 수상작품, 한일간에 공동제작된 영화, 국내영화에 일본배우가 출연한 영화, 국내에서 상연된 영화의 비디오, 일본어판의 출판만화와 만화잡지 등이 공식적으로 개방되었다.
제2차 개방(1999년 9월)에는 공인된 국제영화제(한국영화진흥위원회 포상대상의 영화제, 국제영화제작자연맹이 인정한 영화제 등 약 70여개, 작품은 1백여편) 수상작,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전체관람가'로 인정한 영화, 2천석 이하 공연장에서 하는 대중가요공연(다만 식품접객업소는 제외) 등이 개방되었다.
제3차 개방(2000년 6월)에는 '12세 관람가' '15세 관람가'영화(다만 '18미만 관람불가' 제외), 국제영화제의 애니메이션 수상작, 국내에서 상연된 영화 및 애니메이션의 비디오, 이상에서 허용한 영화의 케이블TV 및 위성방송 방영, 대중가요공연은 실내외 구분 없이 전면, 일본어 가창 음반을 제외한 모든 음반(연주음반, 제3국어 가창음반, 한국어 번안음반), 게임기용 비디오게임물을 제외한 모든 게임물(PC게임물, 온라인게임물, 업소용게임물 등), 매체 구분없이 스포츠·다큐멘터리·보도 프로그램의 방송허용 등이 개방되었다.
미개방 분야로는 일본어로 된 가창음반, 오락용의 방송프로그램, 성인용영화, 국제영화제에서 미수상된 애니메이션, 국내 미상연된 일반극영화의 비디오,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비디오, 성인용의 비디오, 게임기용 비디오게임물(플레이스테이션, 드림캐스트, 닌텐도 등) 등이 남아 있는 셈이다.
문화개방의 의의
일본대중문화개방은 어떤 의의가 있는가. 온갖 일본제품이 세계의 시장을 휩쓸고 있는 오늘날 새삼스럽게 일본문화개방이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일본에서는 한국대중문화가, 한국에서는 일본대중문화가 전혀 낯설지 않은 현실에서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행위란 말인가. 민간교류를 통해서,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서, 심지어는 밀수를 통해서까지 일본제품이 한국에 수용되고 범람한 지는 이미 상당한 세월이 경과했는데, 뒤늦게 개방이라는 것이 무슨 명분이 있는가. 대부분 양국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하나만 알고 둘은 헤아릴 줄 모르는 처사이다. 한일파트너쉽 공동선언을 해 놓고도, 한편으로 이웃나라를 침략한 사실을 반성하기는커녕, 어린 학생들에게 과거를 은폐하는 역사교과서를 공공연하게 출판하는 것이 일본의 실체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지난 수년간 일본은 한국에서 전개된 일본해적판, 해적물, 무단 복제물 등으로 인한 피해가 막대하다고 불평해왔다. 한국인들은 국제적인 신용거래의 룰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해왔다. 그런 측면이 없지도 않았다. 경제논리로 보면, 일본의 주장이 일단 옳다.
그러나 역사정의나 인륜으로 보면, 일본의 주장은 모순이다. 크게 모순이다. 일본이 우리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끼친 피해를 상기하면, 일부 해적물이나 무단복제물의 피해는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실을 먼저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필자 역시 한국인들의 무단복제를 정당한 처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양국관계는 보편적인 원칙만이 아니라 특수한 관계로도 고려돼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맺은 모든 조약과 협약을 준수한다. 모든 문화상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자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하고, 미풍양속이나 청소년의 정서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일부 상품에 대하여 수입을 자제해왔을 뿐이다. 이러한 수입자제는 비단 우리 한국만의 경우가 아닐 것이다. 세계적인 문화에는 항시 문을 개방하고 있지만, 자국의 문화질서를 어지럽힐 요소가 있는 대상에 대해서는 보존·보호의 차원에서, 어느 국가든, 일부 외래문화의 수입자제현상은 당연시 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동안 한국은 일부 일본대중문화상품의 수입을 자제해왔고, 또한 일부 상품에 대한 공식화를 억제해왔다. 그 까닭은 앞서 지적한 대로, 한일의 특수관계와 미풍양속의 침해 및 자국의 대중문화시장에 대한 무자비한 침식을 고려한 때문이다. 이미 개방이 이루어진 지금에도 이러한 관계와 우려에는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개방이라고 해도 일본의 우수한 대중문화보다는 저질의 대중문화가 보다 재빠르게, 보다 폭넓게 한국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을 단행한 것은 '한일관계의 어두운 과거보다도 밝은 미래를 위한 국민적인 용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문화개방에 늦은 감이 든다. 우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까지나 우리 대중문화가 보호될 수 없고, 어차피 일본을 비롯한 세계 속에서 자생력과 독자성을 키워야 하는 만큼, 과감하게 개방하는 것이 오히려 내구력을 성장시키는 첩경이라고 믿고 있다. 비용은 들일 만큼 들이고, 지불할 만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차 여러움을 잘 알아야 문화도 서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본 바람이 거세다고 해서, 우리가 언제까지나 문화를 애기처럼 포대기에 싸들고, 우유병을 든 채 제자리 걸음을 해야 한단 말인가.
문화개방은 국제법상의 제반 저작료와 기술료 및 사용료를 국가가 보증하여 지불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국내법상의 모든 제한이 철폐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앞서 지적한 대로, 국민정서와 윤리를 침해하는 극히 일부의 상품에 한해서 수용제한의 가능성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문화개방에 의해서 모든 불법 복사물과 복제물은 법의 제재를 받게되고, 아울러 합작생산과 기술제휴는 증가하게 되며, 창의적인 문화상품들은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상품의 질적 향상과 발전을 위해서도 개방은 바람직스럽게 여겨진다.
화류(和流)와 식민지대중문화
최근의 우리 신문과 방송에서 한류(韓流)라는 말을 자주 대할 수 있다. 주변 국가에서 일고 있는 한국유행, 한국붐을 약칭한 신조어이다. 한류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이면에는 이른바 중국화류(中國華流)와 일본화류(日本和流)가 전제되어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1876년 2월의 한일수교는 우리 문화사에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때까지 우리는 화류(華流)의 일방적인 수용국이었다. 길은 대륙으로 통하는 일방로(一方路)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의 조선통신사에 의한 문화교류도 중국사신모델과 별로 다른 점이 없었다. 19세기 말기의 한일교류는 이전과 양상이 전혀 달랐다. 조선침략과 식민지지배를 목표로 한 일본은 개항지 및 일본인거류지를 중심으로 하여 그들의 실용상품을 보급하고 동시에 대중문화를 이식시키는 데 열중했다. 화류(和流)의 수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문화루트인 해양로가 열렸다. 서양의 문물도 화류화(和流化)의 굴절된 양식으로 수용되었다.
우리가 식민지로 전락된 이후,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동화정책은 현재까지도 기성세대에게 일본문화에 대한 향수와 동경을 느끼게 할 정도로 치밀하고 철저하게 실현되었다. 식민지지배층을 통해서는 상류화류가, 말단공직자나 군인, 상인이나 기술자층을 통해서는 하류화류가 수용되어, 우리의 근대문화가 일본문화로서 동일시될 정도로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바람직스러운 것이든, 저질퇴폐문화든, 일본것이면 '새로운 것' '근대적인 것' '배워야 할 것'으로 인식되기 일쑤였다.
광복으로부터 1960년대 전반기까지, 남한에는 미국대중문화가, 북한에는 소비에트의 대중문화가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선호되었다. 중국화류와 일본화류는 지난 시대의 영화를 멀리하고, 잠시 동안 이땅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상적 이유로, 일본은 침략자의 문화라는 정서적 이유로 교류가 금지되었다. 1965년부터 불평등한 상태로 과도기적 한일외교가 재개되었고, 매스컴이나 일부 여행객들을 통해서 일본의 대중문화는 서서히 우리 주변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전후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일본, 그리고 그 사회와 문화를 기반으로 급성장한 일본의 현대화류가 미국의 대중문화와 나란히 우리 국민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선호되었다.
대중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고급문화에 대한 통속문화 혹은 지식문화에 대한 저질문화로 심각하게 양극화 돼 있다. 우리 사회에는 고급문화에 대한 극단적인 기피현상이 있는가 하면, 통속문화에 대한 극단적인 폄하가 엄존한다. 그리고 이러한 양극화는 역사적인 산물이다. 중국화류·일본화류·서양풍(風)·미국풍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신분이나 계층별로 다른 문화를,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인 데서 비롯된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사회기반이 양극화를 빚어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가령 그칠줄 모르는 '골프에 대한 시비'는 이런 사정을 잘 웅변한다.
'왜풍'(倭風) '쪽발이짓' '식민지잔재'라고 의식적으로는 일본대중문화를 폄하하면서도, 실제 행동양식에서는 '개화풍'(開化風) '양풍' '근대문화'라고 추종하는 사태가 공존해왔다. 무려 반세기나 넘게 사대극복, 일제극복, 양키즘극복을 입버릇처럼 되뇌었지만, 구체적인 대안의 제시와 실천적인 노력은 퍽 미미한 실정이었다. 미약하게 이런 우려와 비판이 지속되는 가운데, 저들 문화는 거의 위압적으로 홍수와 같이 이 작은 한반도 땅을 침식하고 뒤덮었다. 이제 우리는 어느 것이 일본풍이고 어느 것이 양풍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오염되고, 혼돈되고, 거친 문화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한류의 성장
최근 수년간, 아시아 이웃나라에서는 한류의 물결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수천년의 문화수입국에서 드디어 문화수출국의 위상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한류의 성장을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도 있고, '감각적 유행'이라 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볼 때, 한류는 예술성과 경영력, 초현대적 기술, 최첨단적 매체, 신선한 감각, 평균적 삶의 내용, 가격 및 장소상의 구매편의 등이 집약된 대중문화이다. 아울러 축적된 자본력과 전문인력,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자된 결과체다. 한류를 폄하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1960년대 중반부터 산업정책을 수립하고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수출물량과 무역흑자가 유사이래 획기적으로 증가해왔다. 아직은 IMF의 시련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채무가 적지 않지만, 국민의 생활수준이 과거보다 평균적으로 월등히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세계사에서 뒤늦게 우리는 산업사회를 이룩했고, 이 산업사회를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한국문화의 정체성 회복, 전통과 현대문화의 창조적 조화, 문화교류와 세계적 보편화, 교육수준의 질적 향상 등도 간과할 수 없는 발전양상이다. 1960년대부터는 문화교류의 차원에서 한국문화가 간헐적으로 국외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러는 동안에 우리는 문화정체성을 세우고 창조력을 신장시키려는 온갖 노력을 경주해왔다. 서양문화의 빠른 유입에 대한 전통문화습득과 현대적 계승, 제도권교육의 양적, 질적 향상은 우리문화의 개성과 자생력을 동시에 성숙시켰다.
한류의 성장에는 바로 이러한 경제·기술·정치·문화적 토양과 환경이 뒷받침 되었다. 물론 우리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이 어린 성숙이자 성장이었다. 한류를 단순한 문화상품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류야말로 값진 노력과 아픈 희생과 냉철한 정신이 빚어낸 국민적 산물이었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창조는 하나도 없다. 21세기의 초엽에 우리 한류가 아시아를 강타하는 것은 지난 시대 우리 국민의 축적된 저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한류의 선호는 아시아에서 일본을 대신해서 한국이 새로운 문화국으로 부상했음을 의미한다. 한국과 함께 일본지배를 체험했고, 사회주의 체제에 식상한 그들에게 한국은 '한 마리의 용'으로 '소황제'로서 새로운 발전모델이 된 것이다. 보다 넓게는 자국문화 이외의 새로운 대상으로서 그들이 한류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아직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유사 이래의 문화수출이 시작된 셈이다. 고질적인 문화수입국의 처지에서 최초의 탈피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류붐의 본질은 우리의 성공적인 민주화와 산업화에 대한 신뢰와 선망에 근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국민들이 잘 사는 나라, 그리고 자유와 생명력이 넘치는 나라라는 인식이 이웃나라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한 믿음을 주고, 동시에 부러움을 사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우리보다 앞서서 달리는 일본 사람들조차도 이러한 한국관을 지닌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국인은 우수하고, 한국의 미래는 기대할 만하다'는 생각이 그들에게 지배적이다.
그들은 한류를 선호하는 이유로서 저렴한 가격, 우수한 품질, 일본제와는 다른 개성과 활력, 윤리성 및 신용, 신선한 즐거움, 속도감과 현장감, 푸짐한 식단, 첨단적인 기술력, 현대적인 디자인과 색채감, 친근감과 친밀성 등을 들고 있다. 한류선호는 또한 한국관광 러시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의 경제성장으로 평균소득이 증가한 이웃나라 사람들은 연중 끊임없이 우리나라를 찾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한류 가운데 '한글배우기'가 동시에 전개되고 있는 현실이다.
서로 유익한 문화교류와 문화수용
한일공동주최의 월드컵대회는 불과 8개월을 앞두고 있다. 공동주최는 문화개방을 전제로 한 행사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무엇보다도 방송프로의 개방이 없이 대회를 치르는 데는 적지 않은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4차, 5차의 일본대중문화개방이 중요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일본은 진정한 아시아의 리더국가가 되기 위해서,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닥아오는 세계월드컵의 성공을 위해서, 그간의 고답적인 자세와 낡은 방법을 획기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구태의연한 교과서정책도 새롭게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심기일전한 자세와 새로운 개혁이 보이면, 한국측으로서는 즉시 문화개방을 단행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국민여론이 호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는 최근에 고조되는 한류열풍에 대하여 자만하거나 과장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의의를 폄하하거나 자기비하에 잠겨서도 안 된다. 실태와 실체를 분명하게 파악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실천적으로 이루어 나가야 한다. 중국은 미래적 잠재력이 큰 나라로서, 일본은 대중문화의 선진국으로서,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대상이자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문화관광부는 지난 8월 28일자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한류산업을 집중육성'키로 했다는 의지를 밝혔다. 늦은 감이 있지만 바람직한 정책으로서 주목된다. 가칭 '아시아문화교류협의회'를 구성·운영할 것이라 한다. 한일간에는 이미 '한일문화교류회의'가 활동하고 있다. 장차 구성될 '협의회'는 정책수행을 위해서 전문적으로, 실질적으로 봉사하는 권위 있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보도내용 가운데서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업계가 겪고 있는 애로점을 해결해 주고 제도상의 제한을 풀어주는 방식이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은 온당한 방향으로 보인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한류는 민간주도로, 기업주도로 발전해야 한다. 정부는 상대 정부와의 관계 혹은 한류의 관련체들이 요구하는 각종 제도와 지원을 정당하게·적절하게 해결해 주어야 한다. 한류의 지속과 발전을 위해서는 우선 가능한 사업부터 시급하게, 동시에 탄력있게, 정권에 상관없이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한다. 우선 몇 가지를 두서 없이 열거해 보기로 한다.
한류를 지속성 있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웃나라의 현지사정과 종합적인 정보를 확보해야 한다. 기업상의 마케팅과 판촉을 포함하여, 상대지역의 법률·환경·역사·기질·의식주생활·경제수준·문화욕구 등을 상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 합작사업·합동공연 및 교류방영·합동행사 및 교류행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현지인들과 더불어 생활 속에서 숨쉬는 문화, 진정한 마음의 교류가 바탕이 된 문화, 정신생활에 유익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합작과 합동사업이 가장 바람직스럽다고 할 것이다.
현재 운영되는 해외한국문화원을 대폭 보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연차적으로 증설해야 한다. 명실상부한 문화외교, 문화보급, 문화교류의 센터가 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외국인이 누구나 편리하게 한글교육과 보급,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중심기관으로 육성해야 한다. 대중이 선호하는 한류만이 아니라, 우리의 유형·무형의 문화재전시, 상대국관계의 역사자료·연구서·관련도서전시, 한국적인 현대창작예술공연 등을 통한 고급문화의 해외진출도 적극 추진되어야 한다. 한류와 함께 최고수준의 예술을 수출하는 전기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소비·향유하는 문화로서 대중문화는 실질적으로 동시대의 현대문화에 해당한다. 한국의 대중문화로서 한류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공유하고 있고, 상대국에는 언제나 '문화침식'의 거부반응을 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아시아적 경험의 지평이라고 할 수 있는 민중문화적 '삶의 일체성'과 '현장적 친밀성', 그리고 '화해의 마음'을 망각하거나 상실하지 않으면서, 대중문화적 감성과 매체와 기술과 경영을 조화시키는 작업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본의 대중문화개방도 이러한 한류와의 균형·조화·발전을 도모하면서 가까운 시일에 모두 성취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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