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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호/문화/전통에 대한 강박관념과 현대적 계승의 문제/김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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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철
댓글 0건 조회 3,317회 작성일 02-06-1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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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통에 대한 강박관념과 현대적 계승의 문제
김현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1. 전통에 대한 인식과 자기 반성의 필요성

  현대인은 절대성이라는 아름다운 질서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던 시기에 살았던 과거 사람들은 스스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다양성과 모호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삶의 원리나 원칙을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힘든 상황에 놓여져 있다. 즉 삶은 항상 혼돈의 연속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놓여져 있는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는 문제가 바로 근원성, 원형성의 탐구이다. 결국 자신의 뿌리와 관련된 전통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연문화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예외일 수 없다.
  특히 세계화라는 경향과 맞물리면서 전통 연희와 관련된 공연물들이 유행처럼 만들어 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전통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우리에게 전통이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질문은 질문 자체가 우스운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습관처럼 인식해온 전통에 대하여 다시 한번 명확하게 선을 그어 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전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우리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에게 전통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누구나 손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질문 자체가 매우 어색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풍성한 전통 유산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이 질문이 "전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될 때에는 매우 복잡한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
  「전통」이란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초월성'이라는 속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전통이란 흔히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하기 쉽다. 이런 섣부른 생각은 곧바로 전통을 과거적인 것, 복고적인 것으로 규정짓는 우를 범하게 한다. 그러나 전통이라는 개념 속에는 항상 과거·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지속성과 연속성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동시대의 살아있는 가치 개념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전통이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 가능성'의 속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전통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하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 남아 있는 대표적인 전통연희 중 하나인 판소리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인 18세기에 완성된 예술이라는 것은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2001년 현재의 공연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1년에도 여전히 전통이라는 깃발을 내걸고 이루어지는 공연들을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공연들은 대중들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의 핵심을 언급한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반성적 시각의 결여'에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즉 과거의 고정된 틀 속에만 갇혀 있는 것이다. 전통의 다양한 얼굴을 무시하고 단순히 과거성, 복고성이라는 어두운 표정만 고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그곳에서 관객들은 더 이상 새로운 흥미나 비젼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적·복고적 가치를 그대로 복원해내고 있느냐. 사실은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현대의 공연물들이 취할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구체적인 공연물들을 예로 들어가면서 제시하고자 한다.


2. 단순한 전통의 차용과 새로움의 창조적 해석

  전통의 현대적 계승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자 화두이다. 2001년 상반기에 공연된 <花水木 나루>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 예로 들어 전통의 현대적 계승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극단 자유에서 공연한 <花水木 나루>(김정옥 작·예술감독, 김승미 연출, 문예회관 대극장, 2001.3.16-3.25)는 전통연희의 현대적 창조라는 화두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진도 씻김굿의 형식과 내용, 음악 등을 직접 차용하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花水木 나루>에서 가장 두드러지면서 논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문제이다. 복잡한 내용이지만 실제 공연을 바탕으로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의 공주가 다른 나라로 망명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죽은 백성들을 위로하는 굿을 주관하기로 결정한다. 이 사실을 알고 추격하던 적국의 왕자가 첫 눈에 공주에서 반하여, 공주가 굿을 계속 진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그러나 공주의 수행원들은 공주가 너그러운 적국의 왕자에게 넘어갈까 걱정하여 공주를 죽인다. 그리고 막이 바뀌어 [아리랑 난장]이 진행된다. 갑자기 흥겨운 노래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민요에서부터 현대적인 음악까지 매우 흥겹다.
  이때, 내용이 도대체 어떻게 이어지는가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는 관객들에게 무대 위에 있던 배우들이 직접 나와 '이것은 연극이다'라고 재차 강조한다. 다시 장면이 바뀌어 다른 나라로 망명한 광대 패거리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천한 신분을 속이고, 모두 새로운 인물로 변신한다. 그 동안 꿈꾸던 부귀영화를 누린다. 서로 사랑하던 남녀도 새로운 신분으로 인해 따로 다른 남녀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지배층에 편입된 이들은 권력 투쟁의 현장에서 다시 만나고, 결국 피의 결투 장면을 목격한다. 마지막은 죽은 이들의 씻김굿으로 끝을 맺는다.
  이처럼 <花水木 나루>에서는 전통연희를 차용한 연극들이 자주 사용하였던 논리적인 구조의 의도적 방기(放棄)라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한 방법을 수행함으로써 극적 완결성을 확보하였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花水木 나루>는 그리 긍정적일 수 없다. 다양한 전통 연희적 요소를 사용하여 논리적이고 짜여진 구성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로운 극을 의도하였지만, 오히려 그 의도에 맞지 않게 연극은 난해함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내용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유의미성이 완전히 거세되어 버린 결과 단순한 오브제들이 무대 위에서 계속 움직이는 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인물들의 움직임은 과잉된 기호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다. 화려한 씻김굿의 보여주기와 음악적 세련미 그리고 조명의 효과적 사용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복잡한 기호들의 난무로 인해 관객들은 서서히 극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결국 <花水木 나루>는 전통을 단순히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전통으로 대변되는 여러 가지 형식적 요소들을 연극에 삽입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결과 전체적으로는 부조화와 균열이 일어나고 말았다. 전통적인 요소를 끊임없이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극의 전체적인 완결성을 해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은 비단 <花水木 나루>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모든 연극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대체로 전통극의 현대화 작업이 이러한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민속극의 현대적 계승 작업이 활발히 시도된 시기에도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70·80년대에는 민속극의 보편적 특징을 서사극으로 보았고, 또 그 서사극의 개념마저도 장면을 단순히 나열만 하면 충분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단순사고 역시 전통에 대한 강박관념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로미와 줄리엣>(세익스피어 원작, 오태석 재구성·연출, 극단 목화, 아룽구지 극장, 2001.5.10-7.1)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익스피어 원작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작품이다. 연출가 오태석은 새로운 이야기 구조와 우리의 색깔, 몸짓을 삽입하고 있다. 원작과 다른 맛이 나도록 노력한 것이다. 즉 이 작품은 태생 자체가 원작과의 차별성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 내용적 특징과 형식적 특성을 기존의 것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오태석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미 독일 브레머 세익스피어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높은 호응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해외공연에서 찬사를 받은 이유 자체도 기존의 해석과 다른 새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태석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순한 형식적 요소라는 관점에서 전통을 고수하지 않았다. 오태석은 좀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전통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사고방식, 극적 원리, 어법, 행동방식 등을 작품 속에 넣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또한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고정되어 있는 과거성이나 복고성을 추수하는 경향으로 나아가기 보다 오히려 현대적 원리와 상황에 알맞은 표현방식을 찾아내고자 하였다. 이것은 과거·현재·미래를 포괄할 수 있는 '초월성'을 찾고자한 노력과 연결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전통적인 측면을 잘 살렸다고 하지만 전통의 실체는 매우 모호하다. 한국적인 옷을 입고, 우리의 말과 몸짓을 한다고 전통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쉽게 단언할 수 없는 질문이다. 물론 오태석의 지향점이 과연 과거의 것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 것인가. 물론 그것도 아닐 것이다.  
  논의의 초점은 다시 오태석이라는 동시대적 인물로 모아진다.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한국의 전통을 스스로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보편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전통이라는 형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지만, 구체적인 형상화 방식은 자신 나름대로의 재해석이 들어 있는 것이다. 오태석은 자신 작품 속에서 굿, 탈춤, 판소리, 꼭두각시놀음 등의 여러 가지 연희적 요소들을 차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태석이라는 한 개인의 주관적 필터를 통과한 새로운 전통일 뿐이다. 즉 2001년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과 맞아떨어지는 감수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태석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외국원작이라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의 전통적 성향을 오히려 더욱 잘 드러낸 작품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전통이라는 견고한 허상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에서 보편적 가치를 파악하고 현대적 맥락에 맞게 새로운 가치를 연극 속에 삽입했다. 과거적인 것이지만 현재에도 살아있고, 또 미래에도 그 가치가 지속적인 것. 그것을 찾아내었던 것이다.

3. 원심력과 구심력, 과거·현재·미래의 통합적 가치

  지금까지 현대의 공연장르 중 특히 연극분야에서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창조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花水木 나루>와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에 불과하다. 실제로 2001년 상반기에는 이러한 연극 못지 않게 매우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전통 연희 분야인 굿놀이, 탈춤, 판소리, 꼭두각시놀음, 광대놀이 등을 살펴보면, 더욱 많은 공연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전통이라는 가치 속에는 물론 '과거성'이라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온전한 전통예술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노력이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흔히 원형만을 고집한다고 생각하기 쉬운 전통 예술분야에서도 과거의 형식적 틀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경향이 대두되고 있다. 새로운 가치에 대한 탐구가 오히려 더욱 많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든다면 <김덕수 장고 솔로콘서트>(문예회관 대극장, 2001.4.5-4.7)를 들 수 있다. 김덕수는 전통적인 풍물에서 사물놀이라는 음악을 만들어 낸 인물이다. 이 공연에서 그는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다양한 장고가락의 변주를 선보이며 최초의 '장고산조(長鼓散調)'를 발표하였다. 이처럼 전통예술분야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기 위한 시도가 왕성히 일어나고 있다. 또한 전통음악 분야에서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악기개량 운동도 바로 이러한 새로운 가치에 대한 욕구와 맞물려 있다. 이 욕구는 바로 좀더 새로운 분야로 확장하고자 하는 원심력의 욕구이다.
  전통예술의 장르에서도 동시대성과 보편성, 그리고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해석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보편성을 찾고 있으며, 그 과정 속에는 끊임없이 변화성·역동성이 내재되어 있다.
  오히려 현대 공연물을 생산해 내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루한 보수성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변화 가능성이라는 열려진 시각으로 전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고정되어 있고 변화하지 않는 무언가로 전통을 바라 본다면, 그 시작 자체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비유컨대, 그것은 조금씩 자신의 분야를 축소시키는 어두운 구심력으로 작용할 뿐이다.
  또한 현대적 계승은 항상 냉철한 자기 반성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다. 대상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자기 반성이 항상 수반되어야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과거·현재·미래의 통합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제작할 때 그것은 보편성과 초월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2001. 7. 20)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고려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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