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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호/단편소설/비단 사다리/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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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혜정
댓글 0건 조회 3,678회 작성일 02-06-14 12:13

본문

단편소설
비단 사다리
김혜정



때 이른 장마로 미처 손을 보지 못한 벽과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지고 몸에서는 검붉은 피가 비치기 시작했다. 아이가 남편의 닻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왔건만, 자궁벽이 약해 조심해야 한다고. 일 년 전에도 유산이 되었던 터라 아이를 가졌다는 말조차 꺼내기 조심스러웠는데... 쫓기듯 병원을 나섰다. 하늘에는 비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사모님, 꼭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침나절 정지현의 전화를 받고 내내 마음이 산란했다. 굳이 만나자는 것이나, 목소리로 보아 예삿일은 아닌 것이다. 장마가 시작된 후 남편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불면에 시달리는 것과도 관계가 있지 싶다. 나쁜 일이란 늘 겹쳐서 일어나지 않던가.
  "이런 얘길 해야할지 저도 고민 많이 했어요."
"무슨...?"
온몸에 도깨비바늘이 투덕투덕 달라붙는 것 같았다.  
"사실은 한 달 전쯤, 이 대리님이 갑자기 제게 어디론가 함께 떠나자고... 이 도시를 견   딜 수가 없다면서..."
"..."
  "오해는 말아 주세요. 사고를 같이 겪은 데 대한 동병상린이었겠죠."
"..."
"그날 제가 동생을 만나기로 하지 않았다면 동생은 죽지 않았을 거고... 이 대리님도 친   구분을..."
정지현의 말이 귓바퀴를 맴돌았다. 동병상린, 왜 나는 거기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남편은 모처럼 일찍 들어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채널을 이리저리 바꾸는 것으로 보아 그다지 열중해서 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런 대로 태평스러워 보였다. 남편이 태연한 만큼 정지현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고 그럴수록 정지현의 말이 못처럼 박혀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 내렸다. 외롭다거나 서글프다거나 그런 감정과는 다른, 완벽한 소외감. 거기에다 묘한 자괴감까지 뒤범벅되어 멍해질 뿐이었다.  
멍해져 있는 의식을 일깨우기라도 하듯 전화벨이 울렸다. 벌써 닷새째나 울렸다 끊기는 전화였다. 못내 꺼림칙했지만,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는 남편을 바라보다 하는 수 없이 송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절박하게 누군가를 찾는 것 같은데 발음이 불분명한 데다가 송수화기 저편에서 섞여드는 잡음 때문에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분간이 안 되었다.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고 숨소리인 듯한 소음만 거칠게 울려나왔다.  
"당신이 좀 받아 봐요."
"또 말이 없어?"
나는 남편에게 송수화기를 건네주었다.
"뭐야, 당신?"
남편이 다짜고짜 쏘아붙였다. 나는 사뭇 긴장이 되어 남편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은 이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도 하나 있으니까 염려 말아요..."
우물우물 미안하다는 말과 염려어린 몇 마디를 하고는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경리 아가씬데 사무실 열쇠 때문에..."
한밤중에, 정지현의 전화라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지만, 전화 내용으로 보아 별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용의자를 취조하다 범인이 아닌 것을 확인했을 때 느낄 법한 기분, 은근히 맥이 빠졌다. 이 참에 집앞 산이나 내다보면 기분이 달라질까 싶어 베란다로 나가려는데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발목을 잡았다. 삼 년 전 붕괴 사고가 났던 땅이 화면에 비쳤다. 그 땅에 관해서라면,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든 보거나 듣지 않는 편이 나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 남편은 미동도 않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계속되던 때였는데 잠시 얼굴을 내민 햇볕이 몹시 따갑던 날이었다. 건물 붕괴 사고 두 돌을 맞아 열린 희생자 추모식에 남편과 나, 그리고 동생을 잃은 정지현이 함께 참석했다. '영령이여 이 년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습니다. 어엿한 위령탑 하나 세우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을 원망하소서. 대신 꽃 한 송이 바치오니 부디 고이 잠드소서' 누군가 가슴에 묻어놓았던 딸을 부르며 오열하자 행사장은 이내 울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연단에 오른 한 공직자가 '비극에서 희망을 찾고, 절망에서 새로운 싹을 틔우자' 느니 어쩌고 하면서 유족들을 위로하려 했지만 오히려 원성만 샀다. 사고의 원인인 설계와 시공, 유지관리의 부실이며 감독관청이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허가를 한 것 등 과실이 명백하게 밝혀졌음에도, 책임자의 처벌 문제에 있어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리지 않았던가. 그러고도 이제 와서 위령탑 운운한다 한들 무슨 위로가 될 것이며, 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돌아오는 차안에서 한 마디 말도 않던 남편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주먹으로 벽을 쳐서 뼈에 금이 가는 상처를 냈다. 아직도 그 부위의 피부 세포가 까맣게 죽어 있다. 사고 후 그 땅에 대한 말은 또 얼마나 분분했던지. 고려시대부터 사찰이 있던 자리였는데 어느 여인의 상여가 장지로 향하던 중 돌연 일진광풍이 일면서 명정과 차일이 날아가 떨어져 묏자리가 되었다는 것이며, 훗날 미군 기지가 들어섰는가 하면, 우여곡절 끝에 공동묘지가 된 사연 등 귀신이 들끓어 아무 데도 쓰지 못할 거라고 했다. 이어지는 아나운서의 일기예보는 이미 귀에 들리지 않았다. 남편이 담배를 빼어 물었다. 적잖이 조바심을 내고 있는데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송수화기를 내려놓는 남편의 광대뼈 언저리가 떨렸다.
"왜 그래요?"
"아냐."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남편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 같았다. 담배를 아무렇게나 비벼 끄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면서도 눈에 초점이 없었다.  
"어디 가게요?"
"응. 요 앞 편의점에."
"비도 오는데..."
"맥주 한 병 사 올께."
남편은 웬만해서 늦은 시간에 편의점까지 갈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술이라니. 그러나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말릴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엉거주춤 서 있었다. 다시 남편을 멈춰 서게 한 것은 전화벨 소리였다.
"누구세요, 누구시죠?"
남편은 나가려다 말고 다시 신발을 벗었다.
"뭐라고 해?"
송수화기에서는 전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몸을 날리듯이 들어온 남편은 송수화기를 낚아챘다. 한참을 멍하니 섰던 남편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급기야 송수화기가 방바닥에 떨어지고 남편의 허리가 맥없이 접혔다.
밤새 천둥과 번개가 그치지 않았고 남편은 반 가수 상태의 고열에 시달렸다. 간간이 신음하듯 중얼거렸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휘휘한 눈빛으로 공벌레처럼 몸을 옹그리는 남편의 젖은 몸을 닦아주기 위해 수건을 물에 담그는데 문득, 삶이 탈색된 낡은 천조각처럼 느껴졌다. 남편에게 내 존재는 무엇인가.
"승환이야."
  정오가 되어서야 깨어난 남편의 입에서 튀어나온 승환이란 이름, 머릿속이 깡그리 비워지는 것 같았다. 승환, 그는 남편의 친구이자, 나와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다. 그는 남편의 회사 건물이 붕괴되던 날 남편을 만나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승환이였다니까."
"당신, 지금...?"
"날 지옥에 보낼 거래."
'엊그제는 전에 사고를 당한 친구를 만났다고 하던데요.' 정지현이 한 말이 떠올랐다. 사고 당시 남편은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있었으므로 승환의 시신을 보지는 못했지만, 장례를 치르는 자리에는 참석했다. 그런데도 가끔씩 남편은 자기 눈으로 시신을 보지 않은 이상 믿을 수 없다며, 승환의 죽음을 극구 부인하곤 했다. 남편의 진지한 표정 때문에 나도 승환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더욱 싸늘하게 표정을 굳혔고, 남편은 수그러들었다.  
"목이 조금 쉰 듯했지만, 그 자식 목소리가 맞아. 자식이 나더러..."
몇 번이나 입술을 옴죽거리던 남편은 힘이 부치는지 간신히 잠이 들었다. 잠든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보는데 나 역시 물위에 떠 있는 것처럼 몸이 휘늘어지고 의식이 혼몽해졌다.  
관상용 자라에게 먹이를 주려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흑거북이 한 마리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놈이 자라를 덮쳤다. 악, 소리가 터져 나오는데 자라의 몸뚱이는 사라지고 목만 뎅그러니 남았다. 자라의 목을 건져내려는데 커다란 검은 손이 내 손목을 잡아챘다.
  몸서리를 치며 깨어난 순간, 남편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눈을 흡뜬 채 몸을 떨고 있었다.  
"놈들이 내 눈을 반창고로 가리고 손발을 묶었어. 자기들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하게 내 귀에 헤드폰을 꼽았어. 귀에서는 용접할 때 나는 쇳소리가 끊이질 않고 목구멍은 불이 붙는 것 같았어. 물을 달라고 소릴 쳤는데도 놈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우두망찰, 나는 그저 남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야? 머릿속에서 악머구리가 들끓는 것 같다니까."
남편은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한 시간쯤 지나서 돌아왔다. 눈에 실핏줄이 엉겨있었다.
"날 좀 숨겨 줘. 어서. 승환이가 따라오고 있어. 날 지옥으로 보내고 말 거야."
"..."  
"자식이 날 죽이려고 한다니까."
"..."
  "빨리 사다리를 구해야겠어."
사다리, 남편은 사고 후 한동안 사다리에 집착을 했다. 밤마다 잠꼬대를 한 것은 물론,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라도 사다리를 보게 되면, 과민반응을 보였다. '불빛이 보입니까. 네, 보입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세요. 눈이 부셔요. 손전등을 치워 주세요.' 구조대의 사다리를 타고 남편은 지상으로 올라오는 데 아슬아슬하게 성공했다.  
  "사다리가 있어야 돼. 자식을 따돌려야 한다구."
남편은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가방을 꾸렸다.
일 년 전, 의사는 자학을 일삼는 남편의 증세를 두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했다. 베트남 전의 군인, 옆 사람의 희생을 지켜본 인질들,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 느낀다는. '이들은 스스로가 희생자이면서도 심한 고통을 받게 되죠. 살아남은 사람 중 일부는 죄책감뿐 아니라 두려움, 악몽, 사고를 연상시키는 상황에 대한 기피, 기억상실, 삶에 대한 의욕상실까지, 또는 억제하지 못하는 분노를 갖게 됩니다. 심한 경우에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마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 후에 심각한 문제가 되었죠. 가깝게는 우리의 광주도 그렇고요.'
"도망쳐야 돼."
잰걸음으로 달아나는 남편의 등뒤에 뭉개진 승환의 얼굴이 따라붙었다. 연이어 가슴팍을 찔린 여자, 잘려 나간 팔을 한 손으로 받쳐들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의 잔상이 토막 필름처럼 되살아났다.
언뜻언뜻 햇살이 내비치기는 해도 습기는 여전했다. 냉장고에서는 우유가 썩고 야채, 과일도 시들거나 곰팡이가 피었다. 빨랫감이 쌓이고 신문, 잡지가 제멋대로 나뒹굴고... 시계바늘은 계속 돌아가는데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고요가 흘렀다. 무엇보다 자꾸 몸이 축축 늘어지고 잠에 빠져들었다. 깨어있을 때라 해도 어둡고 긴, 회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 때면 으레 어린 시절 할머니를 만났다. 천둥 번개가 치는 날이면, 할머니는 '하늘이 노해서 벼락이 치는 거여.' 말 안 듣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할머니 치마폭으로 파고들며 이젠 말을 잘 들어야지, 다짐을 했다. 할머니는 겁에 질린 나를 무릎에 누이고 빙긋이 웃었다.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가만가만 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성경을 읽어주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태중에 두 국민이 있어 그들이 나누이리라...
  다시 전화벨이 울렸을 때는 천지가 맞붙어버릴 듯한 굉음이 지나간 직후였다. 잠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는 했지만, 전화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남편이 집을 나가고 처음 울리는 전화벨 소리지만 왠지 남편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남편이라 해도 그다지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집요한 전화벨 소리와 무슨 게임이라도 하듯 나는 방바닥에 드러누워 꼼짝 않고 버텼다. 그러나 결국 조급한 내 손이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역시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마저 죽인, 팽팽한 긴장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치 꼭꼭 잠겨 있던 문이 바람에 떠밀려 열리듯 송수화기를 타고 말이 흘러 나왔다.
"거기..."
"..."
"저..."
송수화기를 내려놓는데 마치 거대한, 텅 빈 동굴 속에 갇혀 누군가의 커다란 웃음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거기 어쩌고 한 말의 주인공이 승환, 그였던 것 같다. 귀기어린 웃음소리, 나를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가 온몸을 에워쌌다. 남편의 말대로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휘뜩한 승환의 눈이 천장과 사면의 벽 곳곳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무작정 집을 나와 얼마나 걸었을까. 누군가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은 불안감과 미아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초조감이 멀미처럼 울렁거렸다. 빗줄기가 살 속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누구 하나 마음 한 자락 나눌 사람은 없었다. 무심결에 누른 전화번호, 정지현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음성 메모만 계속되었다. 퍼붓는 비와 온몸에 끼쳐드는 한기를 피해 들어간 커피 전문점에서는 선병질적인 현악기의 선율이 쓸쓸함을 부추겼다. 싸늘한 커피에 생크림이 엉기는 듯한 어둠, 주파수 맞지 않은 라디오의 지직거림 같은 이명이 끊이지 않았다.
무심코 내려다 본 탁자에는 아이 둘이 이마를 맞대고 있는, 십자수가 놓인 무명천 탁자보가 깔려 있었다. 언젠가 그렇게 이마를 맞대고 승환과 앉아 있었다. 맞대었던 이마를 살며시 떼고, 그가 내 손을 잡았던가. 우리 결혼하면 애들 많이 낳자, 고 했을 때 창가에 놓인 제라늄 화분이 붉은 꽃망울을 터뜨렸었나. 홀어머니에 형제 없이 혼자 자라 외로웠다는 승환은 유난히 아이들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나는 그런 그가 천진하게 느껴졌고 또 든든했다. 이런 사람이라면, 적어도 삶이 고단하지는 않으리라. 그와 함께 설계하는 미래에는 언제나 담쟁이덩굴이 둘려진 나지막한 담장과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꽃밭에 모여 있는 풍경이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즈넉하고 소담스러운 삶. 때마침 그가 벗어 놓았던 검은색 뿔테 안경이 탁자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챙그랑, 소리와 함께 안경알이 깨졌다. 그깟 안경알 하나 깨진 것에 왜 그렇게 마음이 소란스럽던지... 허둥대며 그걸 줍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손가락에서 퐁글 솟아오른 피가, 피를 닦아주려고 허리를 굽힌, 그의 연두색 셔츠 소맷귀에 묻고... 오래도록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늘 연둣빛 그리움이었던가. 그러나 그와의 인연은 어쩌면 그때 깨진 안경알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그의 복을 가로챘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지만, 결국 그를 배신한 것은 남편이 아니라 내가 아닌지. 가슴이 뭉근해져 왔다.
  휘늘어진 가로수의 가느다란 가지에 빗방울이 매달려 있다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소리도 없이 빗방울을 빨아들이는 이내. 엷었던 어둠이 점점 푸른빛을 더해가고, 도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질 때까지 나는 걷고 또 걸었다. 널찍한 도로에 이따금 자동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검정색 옷을 입고 사각모양의 검정색 가방을 든 여자가 자동차에서 내려, 차가 왔던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오래도록 여자에게 시선이 붙들려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여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분명히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여자를 쫓고 있었는데... 휘르륵 무언가 머릿속에서 빠져나가는 것도 같고 옴짝달싹 못하게 내 몸을 결박하는 것도 같았다.
길모퉁이를 잘못 돌아 같은 곳을 언제까지나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은 기분, 특별히 어떤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두운 그림자가 내 곁을 맴돌았다. 일 주일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을까. 남편이 돌아왔다. 왼손에는 푸른색 비닐 우산이, 오른손에는 짙은 밤색 가방이 들려 있었다. 비쩍 마른 몸이 더 휘청댔고 눈은 움푹 꺼져 눈두덩엔 검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먼 이국 땅에서 온 사람인 양 낯설게만 느껴지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슬픔이나 기쁨 따위의 감정과는 무관한, 무위의 허탈감이 나를 주저앉게 했다.  
"좀 괜찮아요?"
"응."
남편은 왼손가락을 펴서 자신의 오른뺨과 턱을 문질렀다. 그새 자라난 수염에 마른버짐이 피어올랐다. 나는 가방을 받아 내려놓고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남편의 싸늘한 체온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그렇게 얼마 동안이나 그러안고 있었을까. 가슴과 가슴 사이로 흐르는 망아의 연민. 지옥의 끝에 천국의 문이 있다고 했던가.  
남편이 오디오의 전원을 넣고 손수 커피를 끓였다. 남편이 즐겨 듣는 '페르귄트'가 낮게 흐르고, 잔잔한 물결이 살갗을 핥듯 남편의 손길이 내 몸 구석구석을 어루었다. 남편의 심장으로 내가 숨을 쉬는 것 같은, 내 몸이 남편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 나는 몇 번이나 멈칫했다.
사고 후, 승환의 장례를 치르고 오열하는 내 곁에 승환의 친구인 그가 있었다. 나를 부추겨 다시 걷게 한 사람, 그러나 오히려 그런 그가 부담스럽고 그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만큼 겁도 났다. 승환의 기일에 남한강가에 갔다가 저녁을 먹는데 느닷없이 그의 눈물이 국그릇 위로 떨어져 내렸을 때, 저 사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을 했다. 우두둑 이를 악무는 그를 보며 더 이상 그를 방치할 수는 없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비굴한 변명이 될까. 그러나 그 당시의 남편에 대한 기억은 친구를 잃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나 사랑을 얻지 못하는 사람의 그것이 아니라, 그가 이를 악물었을 때 그의 입가로 비어져 나온 파전 한 조각일 것이다. 잇자국이 선명한 파전 한 조각에 엉긴 비애 때문에 그와 내가 오늘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난 그날 당신을 보려고 승환이를 불렀던 거야. 난 그때 이미 당신을 빼앗을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그 자식이 산정 높이 올라가 포효하는 표범이었다면 나는 산기슭을 어슬렁대는 하이에나였지. 썩은 고기나 먹는. 자식이 나한테 당신을 소개했을 때 나는 질투심으로 미쳐버릴 것 같았어. 내 속에 악마가 똬리를 틀기 시작했지.
그 자책감이 오히려 나를 향한 애정으로, 때론 연민으로, 또는 보상 심리로... 그것이 어떤 것이었든 그의 집요함이 결국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서로에게 구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 누구나 벼랑 끝에 서서는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으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자초한 불행이었다는 것을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남편과 나는 밤마다, 각자 물에 불은 솜덩이를 지고 끝도 없이 펼쳐지는 사막을 걸었다. 각자의 등에 진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낙타의 평행 이동. 아침이면, 선명한 평행선의 거리가 두통으로 남아 있곤 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모래 기둥이 서고, 절룩거리며 사막을 횡단하던 낙타가 곤두박질쳤다. 내가 뭐 수도승인 줄 알아? 이건 강간이야. 상관없어. 당신은 어차피 승환이 여자였어.
남편은 밀린 일이 많다며 출근을 서둘렀다. 나도 오랜만에 집안을 정돈하고 구석구석 배인 먼지와 묵은 얼룩을 닦아냈다. 장롱 속에 넣어 둔 물먹는 하마도 새 것으로 갈고 눅눅해진 이불도 내다 말렸다. 모처럼 재래 시장에 들러 저녁 찬거리를 사는데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걸음을 몇 번이나 멈춰서곤 했다. 속 야문 감자와 가지런한 팽이버섯을 고르고, 공들여 간을 맞춰 찌개를 끓이면서 팽팽한 고무풍선 하나를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살피살피 끼여드는 위구와 불안을 떨쳐내지는 못했다.

어느 새 날이 저물고 있었다. 베란다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아 앞산을 바라보았다. 비바람에도 의연한 산과 나무들의 푸르름에 숙연해졌다. 숲 깊숙이 눈길을 들이는데 뿌리가 뽑힌 채 나동그라져 있는 나무 한 그루가 클로즈업되어 눈에 잡혔다. 갑작스레 멍해지면서 알 없는 안경을 쓴 승환의 얼굴이 스쳐갔다. 단전 밑이 서늘해지고 늑골이 뻐근한 통증이 왔다. 찬찬히 숨을 고르고 다시 그를 추억하기 위해 눈을 돌려 부드러운 산의 능선을 따라가 보았다. 무언가 더 정겨운 그림 하나쯤 떠오를 법도 한데 살아 있었을 때의 그에 관해 아무 것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다만, 비오는 날의 장례식 광경만이 음울하게 살아났다. 거기에 겹쳐지는 남편의 얼굴, 그 위로 빠른 번개가 지나갔다.  
다급한 초인종 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내가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가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남편은 문을 두드려댔다.  
  "승환이를 만났어."
입안에 들어온 벌레를 잘못해서 삼켜 버린 것 같이 거북한 기분이었지만, 나는 남편의 말을 못들은 척 목소리를 돋우어 말했다.
"당신 좋아하는 된장 찌개 끓여 놨어요. 빨리 와 봐요."
"..."  
  "밥 먹자니까요."
"그 자식 집 근처 막다른 골목이었는데 자식이 나를 보고 빙긋이 웃더라고. 그래서 나도   따라 웃었지. 날 다 용서한 것 같았어."
  "..."
"왜? 당신도 만나고 싶어? 허긴, 왜 안그렇겠어? 승환이도 당신을 보고싶어 하더군. 당   신과 내가 결혼한 것을 말하려다가 그냥 당신이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했지."
"그래요? 그랬더니 뭐라던가요?"
이제 다시는 팽팽한 고무풍선을 쥘 수 없으리라는 상실감이 부른 반발이었는지, 갈 때까지 가 보자는 오기였는지 내 입은 의지와 무관하게 말을 방류하고 있었다.
  "역시 예상 대로군. 나와 자면서도 승환일 생각했던 거야."
"당신..."
  "처음엔 승환이도 믿지 않았어. 그럴 리 없다면서. 당신이란 여자, 절대 그렇게 못할 거   라면서. 하지만 차츰 포기하는 것 같더군."
"..."
  "자식, 날 저주하고 있어."
"그래, 그래서 이제 어쩌겠다는 거예요?"
"사다리를 구해야지."
"..."
"그 자식이 내 발목을 잡기 전에 타고 올라가야 해."
남편은 황황히 뛰어 나갔다. 남편을 붙잡으려는데 물컹, 아랫도리에서 무언가 쑤욱 빠져나가고 배에서 실핏줄의 균열이 일었다. 허리가 뒤틀리고 끊어질 듯한 통증과 걷잡을 수 없는 어지럼증이 일었다.  
두둥실 부풀어 오른 내 배를 가만가만 쓸어 주며 할머니가 성경책을 읽어 주었다. 야곱이 에서의 복을 가로챈 일로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내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어미 리브가가 알고 야곱에게 이르되 네 형이 너를 죽여 한을 풀려 하나니 아들아 너는 피하여 네 형의 분노가 풀리기를 기다리라 내 어찌 하루에 둘을 잃으랴 하였느니라. 문득 배가 시리다고 느꼈는데 배에 닿던 할머니의 손길이 멀어지고 있었다. 차르락차르락 할머니가 하얀 베옷자락을 흩날리며 물결엔 듯 몸을 실어 멀어져갔다. 나는 할머니를 부르며 달렸는데 발은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물위에 뜬 것처럼 너울거렸다.
  하얀 천장과 포르말린 냄새, 깨어났을 때는 창을 부술 듯이 비가 퍼붓고 있었다. 빗소리가 오히려 정적보다는 위안이 되었다. 어슴프레 정지현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는요?"
"아직은 괜찮대요. 하지만, 절대안정을 취해야 된대요."
"그런데 지현씨가 여기 웬 일이예요?"
"병원에서 회사로 전활 걸어 이 대리님을 찾았는데..."
"회사에도 안 나가는 거죠?"
뻔한 걸 알면서도 나는 무심히 한 마디를 던졌다.
"처음부터 두 분, 힘들거라 생각은 했지만..."
"우린 어쩔 수 없나 봐요."
"섣불리 단정하심 안 돼요. 두 분 다 피해자였어요."
"하지만..."
  "망각을 너무 서두를 건 없어요. 누구나 쉽게 잊을 수는 없을 거예요. 잊어서도 안 되겠   죠."
"이젠 너무 지쳤어요."
"두 분 다 한 나무의 이파리로 앓으면서도 상처를 갈무리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던 거예   요. 어쩌면 이 대리님이 그랬듯이 사모님 또한 이 대리님께 가해자였는지도 모르죠."  
사고 후 한때 실종된 동생의 흔적이나마 찾으려고 날마다 쓰레기 하치장을 헤집고 다녔다는 정지현. 그녀의 꿋꿋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러나 아내인 나보다 남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그녀, 어딘지 모르게 여유 있는 어투가 못내 걸렸다.
장마는 소강 상태로 들어갔다. 일기예보는 이 달 말이면 장마가 그치고 무더위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풍년이 예상된다고. 유난히 긴 장마, 비와 비 사이에 햇빛이 내비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나 집안 구석구석까지 배어있는 습기와 곰팡내를 걷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닦아내도 흔적이 남는 고춧물 자국, 설거지는 매번 개운치 않았다. 남편의 면도기며 재떨이, 빈 맥주병들은 남편의 부재를 확인시켜 주었고 헛헛한 가슴의 밑바닥에서 사소한 기억의 파편들은 오히려 날을 세웠다. 그러나 여전히 몸은 흐늘어지고 자주 잠에 빠져들었다.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바다 한가운데를 헤엄쳐 나갔다. 젖은 몸에 휘감기는 옷자락의 감촉을 느끼며 깨어났지만, 한동안 물살에 흔들리는 파란 산호가 눈에 어른거렸다. 그 환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데 천장 위에 붙어 꼼짝도 않던 파리 한 마리가 날개를 털며 날아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몸을 일으켜 커튼을 젖히자 아직 해는 남아 있었다.   한 올 햇빛의 스러짐을 곱새기고 있던 석양 무렵, 한때 밤마다 살얼음판으로 틈입해 오던 전화벨 소리 같은, 그때 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단말마적 신호가 파열음을 내며 울렸다.
"여기 병원인데요. 이 대리님이 위급해요. 추락사고예요."
정지현의 목소리가 잘게 부서진 유리 파편처럼 흩날렸다. 주체할 수 없이 속이 울렁거렸지만, 오히려 정신은 투명했다.
남편은 잠깐 의식이 들었다가 잠이 들었다. 정지현은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아주 먼 곳을 다녀온 듯한, 밑바닥을 보아버린 사람의 눈빛. 그러나 나는 더 이상의 상상을 접었다.

남편은 그 동안 사고 현장이었던 신축 공사장을 오갔다는 것이다. 매일 공사장 주변을 배회하면서 그가 구하려 했던 무엇이었을까. 위령제를 지내는 도중에 갑자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는 남편, 추락하는 순간에 누군가를 소리쳐 불렀다는데 그는 역시 승환이었나.  
  "이 대리님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사모님이 필요해요."
당당함도 비굴함도 아닌, 처연한 눈빛으로 고향으로 떠나겠다는 말을 남긴 채 병실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은 제 잎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나무의 그림자처럼 음산했다. 보짱 깊어 보였던 그녀, 그 꿋꿋함은 허상이었나. 어쩌면 그녀를 다시 볼 수 없을 거란 예감이 들었지만 돌아서는 그녀를 붙잡지는 못했다.
"당신, 많이 여위었군."
핏기 없는 얼굴, 애써 내 손을 잡는 남편의 손이 삭은 볏단처럼 미끄러져내렸다.
"나중에 얘기해요. 말을 많이 하면 안 좋대요."
남편과 나, 마음 밖 마음으로 마주선 듯,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다. 당신이 찾던 사다리, 나도 그것을 찾아 헤맸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속으로 뇌었다. 그런 내 마음 어딘가에 영원히 봉합되지 않을 것 같은 골이 패이고, 쩡쩡쩡 흙벽이 무너지고, 구름장을 밀치고 달려오는 천둥소리가 들렸다.
무르춤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어쩌면 처음부터 승환이가 죽기를 바랬는지도 몰라. 그때 그 흙더미 속에서 자식, 목이 말라 죽겠다고 했는데 난 한 방울도 남겨 주지 않았지. 자식의 목에서 쇳소리가 났는데... 난 그 순간에도 당신을 차지하려는 생각을..."
  남편의 얼굴에 각인된 고단한 흔적, 나는 당겨진 활시위의 마지막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도 사다리가 내려왔을 때 자식은 날 먼저 올려 주었어. 내가 손만 뻗어 주었어    도... 한순간이었어. 그 짧은 순간에..."
"..."
"여름 내내 집요하게 나를 쫓던 자식이 어느 날부턴가 나타나질 않는 거야. 자식이 안    보이니까 더 불안해지고 견딜 수가 없었어. 자식이 칼이라도 들고 나타나주길 바랬어.    정말이야."
천국이 올려다 보이는 창이 있는 지옥이 가장 지독한 지옥이라고 했던가. 남편의 지옥, 남편의 창.
"사다리를 타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다 승환일 봤어. 자식도 사다리를 타고 있더군. 비   단 사다리,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사다리였어. 눈이 마주쳤는데 자식이 웃더라고. 아주 오래 전처럼, 따뜻한 웃음이었어. 내가 자식의 손을 잡으려고 몸을 틀었는데..."
남편의 눈동자가 외틀어지고 있었다. 말을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날개를 단 것처럼 몸이 가벼워지는 거야. 훨훨 날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눈에 일던 푸른 광채는 어둠을 좇아 짓붉게 물들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에서 이지러진 승환의 얼굴을, 또 형편없이 망가져 버린 내 얼굴을 보았다. 그 기분이란 이제까지의 그 어떤 것, 미움이나 연민보다도 묘한 통증을 안겨 주었다. 공중곡예를 하고 있는 것처럼 남편의 눈빛이 흔들리고, 입가에 침버캐를 문 채 남편은 까무룩, 잦아들었다. 무겁게 내려앉아 있던 구름이 한바탕 몸서리를 쳤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한 돌을 베개하고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몸을 잔뜩 움츠리고 할머니 품안으로 파고드는 나를 다독이며 할머니가 말했다. 결국 여호와는 에서를 축복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여호와를 믿고 따른 야곱을 축복하였느니라.
나는 승환이 타고 올랐다는 비단 사다리, 출렁이되 결코 추락하지 않을 그 심연의 사다리를 그리며 서서히 병실을 빠져 나왔다. 어느 새 내 몸도 비단 사다리를 탄 것처럼 너울거렸다. 멀고 먼 방황의 황야를 넘어 끝내는 돌아와 죽음을 맞는 페르귄트, 어디선가 비감의 선율이 들려왔고 흩어지는 바람의 방향을 좇아 나는 걸음의 속도를 늦추었다. 아랫도리가 점점 무거워지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한껏 달구어진 땅의 열기가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곧이어 몸 속에서 무언가 커다란 것이 훅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검붉은 핏덩이의 감촉, 나는 걸음을 멈췄다.                                                                           
  1962년 여수 출생
1995년 문화일보에 단편 '비디오가게 남자' 당선
  창작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재학중
장곡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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