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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호/신작시/이장욱/지나치게 낙관적인 변신 이야기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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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장욱
댓글 0건 조회 3,412회 작성일 02-06-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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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장욱
지나치게 낙관적인 변신 이야기 외 1편


  내 얼굴이 안경을 찾아 쓰고 천천히 단단해지는 아침, 창 밖 가로수의 애벌레는 마침내 나비가 된다. 내 발이 15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도무지 움직여지지 않을 때, 멀리 인수봉 암벽에 가파른 바람 한 줄기 지나간다. 내 몸이 기어나가 어느 사립대학 담 아래를 걷고 있을 때, 아주 먼 항성에서 드디어, 천천히, 지상에 도착하는 빛.

  그 순간에 나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변신에 대해 생각한 것이다. 가령 나는 바위 틈으로 화사하게 일렁이는 산철쭉. 절벽에 사선으로 그어진 그 가지 아래서 막 처음 편 제 날개에 놀란 호랑나비. 그러므로 나는 햇빛 속에 눈 감고 최초의 바람을 느끼는 자.

  "지나치게 낙관적인 변신 이야기"라고 나는 중얼거린다. 외포의 갈매기들이 부리를 적시는 저녁에, 나는 더 이상 먼바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근해에 저물어가는 수평선. 까마득한 上空의 구름이 작은 빗방울로 변신하는 순간에, 나는 비상구 앞에 멈춰 움직이지 않는 구두.

  내 몸은 불 꺼진 방에 안장된다. 지상의 빛이 녹아 사라진 시간, 내가 문득 눈을 뜨면 내 곁에 누군가 모로 누워 있다. 나는 짐짓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깨운다. 이봐, 누군가 널 부르는군. 창 바깥 지나치게 낙관적인 하늘에 비는 내리는데.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어쩌면 모든 게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최악의 상황이란,
상황이 전혀 바뀌지 않았을 때라는 것

좋지 않은 예감에 시달리는 밤에는 편지를 써
서울로 소렌토로 성 프란체스코로
성 프란체스코로 소렌토로 서울로
부디 흐르는 자에게 축복을 내리는 비에는 평화를

나는 흐르는 것들의 스파링 파트너야
영원한 복고풍이지 고딕의 건물들 사이로
말없이 제 몸을 굴리는 페트병들
좋지 않은 예감에 시달리는 밤에는 편지를 써 편지를

나를 사육하는 것은 정확하게 다가오는 밤과 낮의 경계,
나는 지하도와 상가와 간판들 사이에서 방금 사라진
오래된 中世를 찾아 두리번거리네
나는 웃으며 호러 풍으로 흐르는 구름 아래 거닐었으니

어쩌면 모든 게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었는지도, 혹은
최악의 상황이란 상황이 전혀 바뀌지 않았을 때라는 것
한 번도 내게 사랑을 주지 않은 자들에겐
절대로 죄짓지 않겠노라, 중얼거리는 내 단단한 입술

그러므로 이젠 病의 스트럭춰만 보여,
하루종일 일생을 복기하는 노인네처럼
죽은 바둑돌들을 올려놓는 자들의, 그러니까 저기,
약국 앞을 종생토록 지나가는 저 어이없는 자들의,

그렇군, 오늘도 다만 지극히 단순한 하루일 뿐
어쩌면 모든 게 착란에 불과했는지도
하지만 좋지 않은 예감에 시달리는 밤에는 편지를 써
서울로 소렌토로 성 프란체스코로
성 프란체스코로 소렌토로 서울로


1968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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