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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호/신작시/김충규/대나무 앞에 무릎을 꿇어라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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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규
댓글 0건 조회 3,320회 작성일 02-06-14 11:42

본문

신작시
김충규
대나무 앞에 무릎을 꿇어라 외1편



대나무 잎과 잎이 서로의 귀를 갈아 준다
어린 새가 그 사이에서 퍼덕거린다
퍼덕거린 만큼의 전율이 대숲에 좌악 펼쳐진다
대숲을 품고 있던 산이
울컥 토해놓은 노을의 찌꺼기
찌꺼기가 잎마다 반점처럼 묻어 있다
그 아래에서
나는 귀신처럼 서성거렸다

대숲에 들어가면
내 생을 애태웠던 시간이 흐름을 멈추고
제 몸 속에 깊은 우물을 판다
우물 속으로 들어간 시간을 불러내면 안 된다,
 그러면 대나무 잎들이 날카로운 칼로 변해
내 몸을 베려고 덤벼들 것이다
무엇을 완성하려고 하면 안 된다,
대숲에선 속에 든 것을 울컥울컥
토해놓아야 한다 토해 놓을 것이 없으면
 내장이라도 토해놓아야 한다
대나무 속이 왜 비어 있겠는가,
나날이 비우고 비우기 위하여 사는 대나무들!
비운 만큼 하늘과 가까워진다
하늘을 보라, 가득 채워져 있었다면
어찌 저토록 당당하게 푸를 수 있겠는가
다 비운 자들만이 죽어 하늘로 간다  
뭐든 채우려고 버둥거리는 자들은
당장 대숲으로 가라,
당장, 대나무들 앞에 무릎을 꿇어라,

성난 대숲이 싹둑 싹둑 잘라놓은 구름이
대숲 너머에 버려져 있다 거기,
제 육신을 다 비워버렸던 자들의 뼈가
시간의 도움 없이도 삭고 있다







여드레쯤 그만 앓아 눕겠네


지칠 때면 가끔
꽃 그늘 속에 들어가 쉰다
신발을 벗고
딱딱한 발바닥을 주무르며
숨소리도 내지 않는
낮달을 올려다본다
벌건 대낮에
아무렇지도 않게
제 상처를 드러내 놓은 낮달,

낮달의 상처에
꽃잎 짓이겨 발라주고 싶다
상처 있는 것들은 그늘을 남기는데
그늘도 안 남기는 저 낮달의
상처를 자꾸만 속으로 곪는
상처를

내 상처가 낮달보다 더 깊고 아득했다면
나 오래 전에
저 낮달 속으로 도망쳐 살았으리
꽃 그늘이 나를 환해 적셔
내 속의 상처가 욱신욱신 솟구쳐
더는 꽃을 못 보고
더는 저 낮달을 못 보고
여드레쯤 그만 앓아 눕겠네
앓아 눕겠네




1965년 경남 진주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8년 문학동네 문예공모 시 당선
2001년 시집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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