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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신작시 권영준 벚꽃 축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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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권영준
벚꽃 축제 외 1편
저 나무가
왜 저토록 화사한 假笑花 매달고 만개했는지
나는 알지
그 향낭에 감추고 있는 회검의 내력도
나는 알지
욕된 세월 난장의 축제를 벌여 대더니
요조숙녀처럼 입술을 꼭 다물어버린
독한 것,
제 입 속에 흰 독약을 머금고도
배시시 웃는 것 좀 봐
가미가제보다 더 독하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부부여,
저 나무가
왜 제 독을 먹고 새파랗게 지면서도
다음 나무에게 꽃망울을 필사적으로 전해 주는 지
너는 모르지
너는 모르지
내 속의 야생동물
내 속에는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살아간다
그 동물들은 대부분 난폭해서
이성과 양심의 이중망을 친 나는
하릴없이 혈기만 죽이고 사는 불쌍한 놈들을 다독거리는 데
하루를 보낸다
삶이 너무 무료하다 느낄 때
나는 곤히 잠든 야성을 흔들어 깨운다
그럴 때마다 한없이 순종적으로 길들었던 놈들은
발악을 하며 날뛴다 이미 몇몇 놈들은
머리를 이중울타리 밖으로 내밀어 우우거리고
뿔난 몇몇 놈은 선량한 이웃의 심장을 물어뜯는다
내가 늙어갈수록
놈들은 끊임없이 새끼를 쳐서 나를 괴롭힌다
울창한 탐욕의 광야를 그리워하며
꿈속에서도 벌떡 일어나 울부짖는다
야성을 구속하는 세상에 대한 적의를 느낄 때마다
광견처럼 미쳐 날뛰지만
그러나 그들은 백치처럼 충직해서
내가 죽으면 한꺼번에 순장되고
무덤 속까지 쫓아와 내 삶을 증거한다
나는 그들을 바라볼 때마다 슬프다
정성껏 사육한 놈들을 한 마리씩 잡아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탐욕에 굶주릴수록 놈들은 더욱 기를 쓰고 발광하므로
내가 키운 동물들은 나의 주식이며
나를 생생히 오래 버티게 하는 힘이다
매일 밤 야성의 울에 들어가
가장 포악한 놈을 골라 멱을 따며
내 생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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