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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호/여성대표시/엄마와의 전쟁 외 1편/노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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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혜경
댓글 0건 조회 3,370회 작성일 02-06-14 16:58

본문

여성대표시
노혜경
엄마와의 전쟁-1
-기와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문이 있고, 꼼꼼히 쌓은 돌담 아래 또 문. 아홉 겹 첩첩 담장 맨 안쪽에 엄마의 방.
엄마, 엄마! 대답이 없어도 나는 방문을 열면, 열두 폭 치마 다소곳이 입고 새각시처럼 앉은 우리 엄마. 배꼽 아래 피의 강물이 흐르는데 커다란 배처럼 앉은 우리 엄마.

엄마, 말없는 사람의 말 속에, 눈물도 마른 그 얼굴의 거칠거칠한 피부 아래
조용히 당신이 숨겨둔 말 한 마디가
들리세요? 저기 우물 속에서 부르는 내 목소리, 엄마, 엄마, 들리세요?

오랜 전쟁이 끝나고, 마침내 돌밭에 새 씨앗을 뿌려야겠다고 마을 사람들이 손에 발에 갈퀴를 메고 들로 나간 뒤
엄마는 우물에다 딸들을 쓸어담았죠.

우물 안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들, 엄마, 엄마
목을 길게 꺾고, 엄마는 생각에 잠긴 눈으로 모래흙을 부었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우물에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지요.
저 우물 곁에 가지를 마라, 한 모금 나시면 아기가 되고 또 한 모금을 더 마시면 노인이 된단다, 다시는 네 젊디 젊은 처녀가 되돌아올 수가 없단다

엄마는 딸들을 우물에 던지고 흙을 덮고
조용히 돌아와 대청마루로 올라간다.
방석위에 얌전히, 팔려가길 기다리는 꽃병처럼 앉아 있다.
커다랗게 구멍뚫린 엄마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공갈빵 아기들을 낳는다.





엄마와의 전쟁 0
--포도주 공장
노혜경

한밤중이었고 나는 걷고 있었다 길의 끝에 엄마가 서서 포도주를 쏟고 있었다 엄마 엄마 왜 그러는 거예요 엄마는 울면서 포도주가 다 삭아 초가 되었다고 했다 아직 때가 멀었는데 벌써 그랬구나 얘야 길이 여기서 끝나버리면 안 되는데 벌써 그랬구나 글쎄 아직 밤중인데
엄마의 수도꼭지에서 흐른 포도주가 냇물이 되어 흘러간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은색으로 빛난다 나하고 똑같이 생긴 엄마가 길가에 서서 이 많은 항아리가 다 초가 되었구나 얘야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기 구름 위에서는 달이 빛나는데 엄마와 내 머리에만 쏟아지는 비 엄마가 갑자기 내 손을 놓는다 이게 다 내탓이다 얘야 이 가로등은 왜 나만 따라 다니는 거냐 이 길은 내 길이니 너는 다른 길로 가거라
엄마가 갑자기 심장을 찢는다 진짜 포도주들이 매끄러운 완제품 포도주병이 툭. 툭. 떨어져 나온다 엄마가 운다 엄마의 얼굴로만 빛은 쏟아지고

이 모든 풍경을 나는 멍하니 서서 보고 있었다 갑자기 말씀이 들렸다 이 모든 것을 너는 마음에 새기지 말고 말로 하라 엄마처럼 생긴 벽돌이 들판에 창고를 세운다 포도주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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