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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호/여성대표시/보푸라기들 외 1편/최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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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정례
댓글 0건 조회 4,108회 작성일 02-06-14 17:04

본문

여성대표시
최정례
자선 대표시
보푸라기들
   -백석 시의 구절을 빌어


저 티끌을 지나서 왔구나
저 벌레를 지나서
한없이 지나서 왔구나

업은 아이를 내려놓고
순두부를 시켜 먹는 동안
훌쩍거리며 코를 훔치는 동안
아이는 끽끽거리며
바닥을 기어 다니고

너의 나이 나의 나이
저 티끌에서부터의
나이를 셀 수가 없구나
[그 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까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검은 옷에 끈질기게 따라온 먼지들
악착같이 따라 붙는 희끄무레한 것들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이냐
세포가 되었다가
버러지가 되었다가
떨치고 일어나
짐승이 되고 싶은 것이냐

검은 옷에 악착같이 따라다니는
보푸라기야
구렁텅이야





신작시
두 사람의 잠


나는 나 자신을 떠나지 못한다
소금이 바다를 떠나듯이
쇠종에서 종소리가 떠나듯이
그렇게 못한다

당신은 오래 전에 잠들었고
등뒤에서
나는 몸을 구부리고
벌거벗은 돌멩이가 되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구름들이
밤새 우리 지붕 위를 흘러간 적이 있으나

당신은 고치 속에 웅크리고
고른 숨을 내쉬고
이제 나는 잔인함을 받아들여  
벙어리 자명종이다

놓여날 길 없는 차가운 밤
종 속에 갇힌 종소리들
유리창을 흘러내리는 안개들

당신은 잠결에 혹
손을 뻗어 중얼거리지만
당신이 잡은 건 게임판이거나
축구 경기의 채널

우리가 함께 갈 곳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함께 가더라도 각각
다른 장소인 그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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