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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호/신작시/심재휘/뱅뱅 사거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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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심재휘
뱅뱅 사거리 외 1편
예고 없이 비 내리는 뱅뱅 사거리
회전 초밥집에 그는 앉아 시계방향으로
취한 어깨가 기우는 걸 자꾸 추스를 터인데
유리창 너머 밤 10시의 좌석버스들은
초밥에 얹힌 살점들의 生前처럼
바닷속을 한없이 떠돌고 싶을 터인데
요리대에 서서 가만히 주먹밥을 만드는
주방장 여기에는 무슨 고기를 얹을까
돌아가는 그릇들 너머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밤이 깊었다고
오늘은 문을 닫아야겠다고 뜬금없이
밤비 오는 거리로 그를 밀어내는데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갈까 주머니 속
동전의 까끌까끌한 테두리를 만지며
찌걱거리는 보도블럭 위에 섰다가
지나가는 바퀴가 검은 물을 튀겨
내 몸 하나 급히 피하고 보니
낯선 처마 밑에 널부러진 취객 하나
가증스러움에 대하여
잠긴 어둠을 열 듯 지퍼처럼
오토바이 한 대가 질주하고 그 틈으로
첫 닭이 울었다
낡은 바닷가 오래된 여관이었다
산맥을 넘어와 잠이 깊게 든 가족
들에게 쌕쌕거리거나 화장기 없는
나의 잠을 조금은 나누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커튼을 열지 않아도 해가 뜬다는 것쯤은 안다
그러니까 내 불면의 뼛골 뒤로 휘익 지나가는
저 7번 국도도 어디쯤에서 끝이 날 것이다
다만 슬픈 것은 길 끝 어느 해변에서도
혼자 해돋이를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나를 닮은 것도 같은 어떤 사내
이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딘 음계 사이로
이따금 해변의 폭죽 소리는 적당했는데
다시 봉합되는 적막의 솔기에서 언뜻
무언가가 들렸었나 싶어 몸을 뒤져보면
손목 시계와 구겨진 지폐와 가느다란 머리카락
쥐 죽은 듯 하였는데 지구가 도는 소리처럼
이미 우리와 한 몸이 되어버린 소리
이곳까지 따라와 밤새 울어대는 매미소리
가증스러운 가증스러운
97년 [작가세계]로 등단
대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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