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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호/기획/중학교 시교육의 문제점/이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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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남호
댓글 0건 조회 5,712회 작성일 02-06-1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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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중학교 시교육의 문제점
이남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현재 중학교의 국어교육은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 문학으로 편의상 나누어져 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문학 교육은 국어교육의 1/5에 해당되는 셈이다. 그렇지만 문학 교육은 종합적이다. 그것은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 교육을 포함하며 또 그러한 것들의 바탕이 되는 능력을 키워준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문학작품은 가장 세련되고 고급한 언어형태이므로 학생들은 문학 작품을 통하여 언어 능력을 키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 문학작품에는 다양한 사유와 감정이 표현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높이고 감성을 세련시키는 것과 직결된다. 그러므로 국어교육의 하부 갈래를 어떻게 나누더라도 문학 교육은 국어교육의 바탕이 되고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나라에서 오랫동안 국어교과서의 내용이 주로 문학작품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1)  

국어교육 가운데서 문학교육의 위상과 비중도 문제이지만, 그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학작품을 문학으로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현실인 것 같다. 시와 소설을 어떻게 이해하고 감상할 것인가에 대해서 현행 문학교육은 심각한 문제를 보여준다. 중학교에서 문학 교육, 특히 시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사례를 통하여 충분히 짐작될 수 있다.2)

이 사례에서 학생이 메모해둔 내용은 아마도 선생님이 불러 주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그 내용이 곧 이 시의 학습내용이라고 짐작된다. 학습내용은 우선 네가지 문제점을 보여준다. 

첫째, 별로 필요없는 단편적 지식이 대부분이다. 거의 모든 메모 내용은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이 시를 배우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별로 알 필요가 없는 단편적인 지식들이다. 형식상 내용상의 갈래, 소재, 운율, 각운, 구성, 돈호법과 은유법, 심상 등의 지식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이해된다면 시의 이해에 약간의 도움이 되는 지식들이지만, 이것들이 여기서처럼 암기를 위한 것이라면 전혀 필요가 없는 지식들이다. 그리고 계절적 공간적 배경이 여름과 해바라기 앞이라는 설명은 전혀 불필요하고 또 분위기가 명랑한 의미라는 것은 옳지 않은 지적이다.  

둘째, 불필요하게 어려운 말로 시의 이해를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 가령 1연과 5연이 거의 유사하게 반복되고 있는데, 이를 수미상관법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구성에 관한 메모를 보면, 학생은 이를 '수미관심법'이라고 잘못 적어 놓고 있는데, 여기서 짐작할 수 있는 바, 학생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있음이 거의 분명하다. 또 같은 곳에 '벗에 대한 원유'라고 메모되어 있는데, 이것은 '벗에 대한 권유'를 잘못 적은 것이다. 이 역시 학생이 그 뜻도 모르고 적었음이 거의 분명하다. 그리고 '벗아, 어서 나와 해바라기 앞에 서라'라는 구절에 대한 설명으로 '벗에 대한 권유'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은 시의 이해를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문제점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주제에 대한 설명이다. 학생은 이 시의 주제를 '정열적인 삶의 자기 왕성에의 의지'라고 적어두고 있다. '자기 완성'을 '자기 왕성'으로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학생은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의 주제를 그렇게 어려운 말로 규정한 것도 잘못된 것이지만, 주제의 파악 자체가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이 시는 그냥 항상 밝고 뜨겁고 환한 태양을 향하고 사는 해바라기처럼 희망차게 열심히 생활하라는 내용을 보여줄 뿐이다. 이 시에서 자기 완성에의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 

셋째, 주제 파악도 잘못된 것이지만, 그 외에도 틀린 내용이 많다. '라'라는 각운을 지니고 있다고 메모되어 있지만, 이 시에서 각운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또 각운이 있다는 것과 이 시의 운율이 내재율이라는 설명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그리고 '해바라기의 꿈은 붉게 탄다'라는 구절을 두고 '시각적 심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중학교 1학년생에게 시각적 심상을 가르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구절을 시각적 심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3) 또 4연에서 '해바라기처럼 해를 보고 살지니'를 두고 '의지적 각소'(이것은 의지적 각오를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거기에 어떻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있기 하지만, 그것을 각오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뿐만 아니라 '의지적 각오'라는 말 자체가 어색하다. 각오라는 말 속에 이미 의지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 시의 분위기를 명랑하고 볼 수는 없으며, 또 이 시가 상징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넷째, 시에 관해서 많은 설명을 했지만 실제 시의 이해와 관련해서는 거의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설명들을 따라가다 보면, 시 자체는 없어져 버리고 만다. 이 시를 이해시키려면, '해바라기 앞에 서라'라고 말하는 이유와 그 의미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해바라기 앞에 서라고 하는 것은 곧 해바라기를 모범으로 삼아 해바라기처럼 살라는 말이다. 해바라기처럼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을 때 이 시는 비로소 이해된다. 이러한 이해의 과정이 없는 한, 이 시에 관한 어떠한 지식도 학생들에게 헛된 것일 수 밖에 없다. 선생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할 점은 바로 해바라기처럼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가이다. 그럼으로해서 학생들은 밝고 희망차고 열심히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고, 그리고 해바라기가 항상 해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러한 삶의 태도를 유추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로부터 지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네가지 문제점 가운데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네 번째 문제점이다. 시의 이해에 다가가지 못하니까 단편적인 지식의 나열에만 의존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시로 지적되고 있는 바이지만, 문학교육은 지식교육이 아니다.4) 학생들이 문학에서 얻은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삶과 세상의 여러 국면들에 대한 이해의 확장이다. 다른 세상, 다른 삶, 다른 감정, 다른 생각, 다른 가치들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비교하면서 학생들은 정신적, 지적으로 성숙하고 또 감성이 세련된다. 이것이 문학교육의 일차적 본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의 여러 국면들이 어떻게 언어로 표현되어 있으며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가를 배움으로써 언어능력을 키우는 것이 문학교육의 이차적 본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볼 때, 위에서 살펴본 사례는 문학교육의 본령을 전혀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위의 사례는, <해바라기>라는 시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그 의미의 구체성에 도달하고 있지 못하며 아울러 그 구체적 의미가 어떤 언어 표현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해되는가에 대해서도 암시하는 바가 없다. 학생이 받아 적은 메모들은 모두가 그 실질적 내용이 거의 없는 껍데기 설명들일 뿐이다. 가령 '정열적인 삶'이란 설명을 했다면, 그것의 실질적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학생들에게 구체적으로 이해시키는 것이 문학교육이다. 정열이란 말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삶의 태도를 일반화시키고 추상화시킨 단어이다. 문학교육은 그것의 일반적인 뜻보다는 어떤 구체적 상황 속에서의 구체적인 삶의 태도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해바라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특정한 삶의 태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 정열적인 삶이란 말의 추상적 뜻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학작품의 실질적 내용에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 현행 문학교육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한편, 학생들의 학습내용 뿐만이 아니라 교과서 자체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지만 <해바라기>와 관련해서 두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는, 이 작품이 별로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5) 문학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작품 그리고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을 통해서 문학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학습내용이 다소 부실하더라도 좋은 작품을 많이 읽히면 문학교육의 절반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학교육은 특히 교과서가 중요하다. 둘째는, 단원의 목표가 시의 화자를 이해하는 것이다. 현행 교과서에는 단원별 학습목표가 정해져 있다. 중학생의 경우, 1학년 때는 시의 운율과 시의 화자, 2학년 때는 시의 언어와 시의 주제,  3학년 때에는 시의 심상과 비유를 배우도록 되어 있다. 만약 이러한 학습목표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해바라기>라는 작품의 이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해바라기>라는 작품은 시의 화자를 배우기 위한 보조자료일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주된 것과 보조적인 것이 뒤바뀌는 셈이다.  작품 자체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 시의 화자를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의 이해가 운율 - 화자 - 언어 - 주제 - 심상 - 비유의 단계로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시의 이해에 학년별 단계가 있다면, 그것은 시의 수준 또는 난이도의 단계이어야 한다. 즉, 그 시에 표현된 내용의 수준과 표현방식의 수준에 따라서 단계별로 심화될 수는 있다. 그러나 현행 학습목표의 단계는 문학교육의 실질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의 <해바라기> 학습내용에 대한 간단한 사례에서 확인된 문학교육의 문제점들은 현행 중학교의 문학교육 전반에서 관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지적한 바, 문학교육은 국어교육의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따라서 문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국어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에 중학교에서 어떤 문학작품을 어떠한 학습내용으로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반성과 탐구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현행 중학교 문학교육에 대한 반성은 여러 층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이루어져야 한다. 국어교육 안에서 문학교육의 위상도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것이고, 문학교육의 목표도 좀더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학생들에게 어떤 문학작품을 가르칠 것인가도 새로운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또 문학교육의 평가를 개선하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것이며, 각 수록작품에 대한 학습활동도 재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학의 특성 상, 문학교육의 개선이 연역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문학에 관한 이해는 거의 언제나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라기보다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다. 문학에 관한 원리를 먼저 이해하고 문학작품이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작품들의 이해를 통해서 문학에 관한 일반적 원리에 접근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학의 고유한 귀납적 성격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모두에게 작용한다. 그래서 문학이나 문학교육에 있어서 일반이론의 한계는 다른 분야의 이론이 갖는 이론으로서의 한계보다 훨씬 뚜렷하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문학교육의 개선도 일반이론을 통하기보다는 개별작품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중학교 학생들에게는 문학이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문학작품의 감상과 이해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문학교육은 이미 문학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교과서에 실려 있는 문학작품들의 학습내용을 하나하나 따져서 그것을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 물론 아주 초보적인 언어교육은 문학작품보다는 단순한 일상적 문장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실용적이거나 일상적인 언어 능력의 향상을 위해서도 실용적인 예문들이 많이 이용된다. 우리가 외국어를 습득할 때 대개 그러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기본적인 언어 능력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다. 국어교육은 기본적인 언어능력을 길러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언어구사능력은 초등학교 국어교육만으로도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국어교육의 보다 큰 중요성은 보다 고급한 언어능력을 함양하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고급한 언어능력의 습득이란, 세계와 인간을 보다 폭넓고 깊게 이해하고, 사유하는 능력을 키우고, 또 감성을 세련시키는 것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그 언어 속에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문화와 정신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모국어로서의 국어교육이 중요한 보다 큰 이유는 바로 이 점일 것이다. 그러므로 국어교육은 좋은 문학작품이나 고급한 지성과 감성으로 씌어진 명문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며, 문학교육이 국어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함 또한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2) 이 사례는, 필자가 강의하는 [현대문학교육론]시간에 4학년 학생이 발표한 발표문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대개의 중학교 교실에서 이 작품을 가르치는 방식과 내용이 이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학교 1학년 국어참고서도 살펴보았는데, 이 사례에서 보여주는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사례가 비교적 보편적인 것이라 생각해도 무방할 듯하다. 

3) 심상에 관해서는 중등학교 문학교육에서 상당한 혼란이 있는 듯하다. 시의 학습과 관련하여 시각적 심상, 공감각적 심상 등을 비교적 많이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심상에 대한 이해가 대체로 잘못된 채, 또는 시의 이해와 전혀 연관이 없이 단편적 지식으로만 언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시에서도 '붉게 탄다'라는 말이 나온다고 시각적 심상이라고 한 모양인데, 그것은 옳지 않다. 이 구절은 심상으로 시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순 진술일 뿐이다. 

     심상이란 매우 혼란스런 개념이다. 그것은 마음 속에 환기되는 어떤 모습이나 감각을 뜻하는데, 실제 작품에서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단어의 차원에서도 말할 수 있고, 구절의 차원에서도 말할 수 있고 또 시 한편 전체에서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감각적인 이미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이미지도 있고 상징적 이미지도 있다. 중등학교 문학 교육 현장에서는 주로 단어 차원의 이미지를 여러 감각으로 구분해서 이해하는 것으로 이미지를 공부한다. 가령 '머리맡에 찬물을 솨- 퍼붓고는'이라는 구절을 두고 찬물의 찬 심상(촉각)와 퍼붓는 소리 심상(청각)를 찾아낸다. 이러한 설명은 틀린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작품의 이해에 거의 도움이 안되는 불필요한 설명이다. 왜냐하면 심상을 말하지 않더라도 찬물이라는 단어에서 차다는 느낌을 받고, 또 솨-라는 것이 소리임을 누구라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굳이 촉각심상이니 청각심상이니 하는 것은 오히려 시의 이해를 방해한다. 심상은 시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은 시 전체에서 특별한 효과와 의미를 가질 때에 한해서이다. '붉게 탄다'라는 구절을 두고 시각적 심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하다. 

4) 문학교육에서도 지식교육적인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학생들에게 그 자체로 일정한 지식을 제공하고, 또 문학교육의 범주 안에는 학생들이 외어야할 단편적 지식도 얼마간 들어 있다. 문학교육에서 지식교육은 전혀 필요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보조적이고 부차적인 것이다. 문학교육에서뿐만 아니라 교육 전반에 걸쳐 지식교육을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견해들도 있는데, 그러한 견해는 사려깊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5) <해바라기>가 좋지 못한 작품인 이유는, 그 발상의 상투성과 지나친 단순성,  시상 전개의 어색함 그리고 언어 구사의 부적절성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문학작품의 평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교과서에 수록되는 작품은 그 우수성이 비교적 폭넓게 인정받는 작품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해바라기>는 그러한 인정을 받기에는 크게 미흡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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