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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호/예술시편 연재<2>/백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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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우선
댓글 0건 조회 3,004회 작성일 02-06-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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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시편 연재<2>

백우선
아직은 희망일까요
―안병석 유화 '자연의 본성이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산과 물의 자연 풍경
산적한 차와 컴퓨터
하늘을 찢는 초음속 전투기
'자연의 본성이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라고 쓰인
디스켓

자연에서 나온
차, 컴퓨터, 전투기, 디스켓
모두 함께도 하고
자연으로 다시 들어가거나 못 들어도 가고

자연의 수많은 등분면(等分面) 중에는
그래도 처녀가 남았다고도 하고



[꼬리말]  
  베란다 화분의 금낭화가 피었다. 금낭화와 금낭화 사이에 있는 콘크리트 벽이 아니라, 콘크리트와 콘크리트 벽 사이에 금낭화가 피었다. 살충제와 살충제 사이, 제초제와 제초제 사이에도 금낭화는 피겠지만,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 컴퓨터와 컴퓨터 사이에 금낭화가 피었다. 지금 여기서 내가 뛰어들 수 있는 곳은 저 작은 금낭화 꽃풀 한 포기밖에 없다.        





생명의 샘
―마르셀 뒤샹 조각 '샘'



그는 소변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 앞의 사진사를 말하듯
소변기 앞 사람의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남자의 샘, 여자의 샘
그리하여 암컷샘, 수컷샘
암꽃, 수꽃을 말하는 것이다
흐르는 사람들과 짐승들의 물결
풀과 나무의 초록 바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뒤집은 물의 샘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살아있게 하는 샘
생명의 샘이다


[꼬리말]
  다 아시죠? 뒤샹(1887∼1968)의 조각 '샘'이 실은 남자 소변기인 공산품인 것을. 공산품을 조각 작품, 소변기를 샘이라며 당당히 출품하고 미술사에 기록되게 한 그 발상과 예술적 소신이 놀랍지 않나요? 뒤샹은 돈, 상업주의, 공명심, 어떤 유행이나 사조, 심지어 자기 자신의 재능으로부터도 자유로웠고, 이 자유를 긴 생애에 걸쳐 유지했다고 하네요. 화가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제작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체스 게임을 즐기며 전통적인 미학이나 예술의 우상 파괴자로서의 일생을 살았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가 현대 예술의 새로운 전통, 우상이 되었다고 하네요. 물론 그가 그런 걸 노려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요.







이삭 줍는 이삭
―장-프랑수아 밀레 유화 '이삭 줍기'


주인은 감독을 치켜올리고
감독은 일꾼을 몰아올리고
일꾼은 볏단을 끌어올리고

이삭은 이삭을 줍는다
이삭은 지금도 이삭을 줍는다
그나마 이삭끼리


[꼬리말]
  역시 원화를 보길 잘했다. 마을회관이나 이발소, 음식점 등에 걸린 그림에서는 이삭 줍는 세 여자만 보였/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유심히 보지 않은 잘못도 있겠지만, 낟가리를 쌓아 올리거나 마차에 볏단을 싣는 일꾼들이 있고 그것을 곁에서 말 타고 감독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앞쪽의 이삭 줍는 세 여자는 그 축에도 못 든 사람들인 셈이다. 밀레는 주인도, 감독도, 뽑힌 일꾼도 관심의 뒷전이었던 것이다. 일제 때부터 얼마 전까지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보아왔다는 이 그림을 우리는 반만, 아니면 반대로 보아온 것은 아닐까? 일제 때라면 주인은 일본인, 감독은 일본인이거나 그 하수인인 조선인, 일꾼은 당연히 조선 농부, 앞의 세 여자는 노동력 미달자인 조선인일 것이다. 그러나 저항이나 음모 없이 다소곳하고 근면해 보이는 세 여자가 클로즈업된 이 그림을 일본은 식민지배에 이용하기 위해 더 널리 보급하고 우리는 그 여자들을 삶의 전형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은, 가난했던 농업 위주의 과거 삶에 대한 향수에 젖게 될 것이고, 세 여자만 보면.  







새만금 갯벌을 위하여
―변산 해창 장승들
  

  울려라 풍악을 울려라
  얼쑤 어이 허이 깨-앵 씨-앵
  놀아라 꼭지껏 뛰어라
  조오타 읊어라

  도요새, 반지락, 철새, 농게, 꽃게, 망둥어, 갯지렁이, 피조개, 민챙이, 소라고둥, 백합 …… 갯벌, 습지, 호수, 산 등등의 대장군, 여장군/ 하늘에서 내린 듯 바다에서 솟은 듯/ 전국 각지에서 일제히 모여들어/ 갯벌에 우뚝우뚝 떡버티어 들어박혀/ 퉁방울눈 부리부리/ 주먹코 벌름벌름/ 대문니 으르렁 딱딱/ 작두날 혓바닥 널름널름/ 스피커입 우렁우렁/ 물고기 입에 문 여의주 번쩍번쩍/ 새만금호 돛배 하늘 높이 두둥실/ 물렀거라 잦았거라/ 자연개발 생태파괴/ 재해초래 생명말살/ 악귀야 잡귀야/ 엇쐬 물렀거라

  쳐라 매우 쳐라
  돌아라 휘돌아라
  얼씨구 절씨구
  어리라 저리라
  어리 저리 씨구 씨구

[꼬리말]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해창 바닷가에는 새만금 갯벌을 지키기 위해 세운 장승들과 매향비1), 풀꽃상 시상 안내판2)이 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신석정 시인의 '파도'를 새긴 시비가 있다.

  1)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았듯이/ 후대에 물려줄 갯벌이 보전되기를 / 바라는 뜻에서 이 비를 세우며/ 해창다리에서 서북쪽 300걸음/ 갯벌에 매향합니다/ 2000년 1월 30일/ 새만금 사업을 반대하는 부안 사람들

  2)제5회 풀꽃상// 본상: 새만금 갯벌의 백합/ 부상: 갯벌을 위해 소송을 건 어린이들// 갯벌은 갯지렁이가 꼬물대고 망둥어가 설쳐대고 농게가 어기적거리고 수백만 마리 찔룩이와 저어새가 끼룩거리는 생명의 땅입니다. 또한 해일과 태풍이 오기 전에 모든 생명체에게 재해의 예감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자연의 파괴력을 완화시키기도 하는, 은혜로운 땅입니다. 그러나 갯벌 가치에 대한 무지와 오판으로 인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갯벌과 갯벌 생명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우리는 조개 중의 조개라 불리는 백합에게 제5회 풀꽃상을 드리는 것으로 갯벌과 갯벌 생명체에 대한 말로 다할 수 없는 애정과 함께 그들이 영원토록 갯벌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000. 3. 26/ 풀꽃 세상을 위한 모임







일어선 매향리
―임옥상 조각 '자유의 신 인 코리아'


  매향리에서는 사람들이 일어선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타겟들이 일어선 것이고
  반쯤 날아가버린 농섬, 보복적으로 매립된 논, 우라늄 열화학 폭탄(BDU)에 새까맣게 타 널브러진 흙들이 일어선 것이고
  소음성난청, 중금속오염, 유산, 스트레스, 혈중납농도, 수면장애, 홧병, 불안, 공포, 암, 방사능피폭, 기형아출산, 무정란산란, 불발탄폭발, 젖소유산, 가옥파괴, 항의대구타가 일어선 것이고
  평일 낮 하루 평균 200여 차례와 8∼10시 야간 폭격으로 불모지가 된 '가상의 북한 땅'이 일어선 것이고
  고기 잡다 기총 사격에 관통된 어부의 팔뚝, 조개 줍다 폭탄 파편에 잘린 소녀의 다리가 일어선 것이고
   굴 따다 포탄에 명중되어 즉사한 임신 8개월의 산모와 그 태아가 일어선 것이고
  포탄 맞아 죽었어도 장례비 요구는커녕 빨갱이로 몰릴까봐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개죽음 당할까봐 가족끼리 모여 앉은 밥상머리에서도 쉬쉬하며 먹던 밥알들이 일어선 것이고
  사격 훈련을 알리는 찢겼으나 내려지지 않는 황색 깃발이 일어선 것이고
  자기들만 착용한 청각보호장구, 레이저탄 섬광 보안경이 일어선 것이고
  주권국가라 할 수 없는 곳에 살아 국민임을 포기한 이들의 반납된 주민등록증이 일어선 것이고
  헬기, A10과 F16 전투기의 폭탄 투하, 기총 사격의 붕 부웅 꽝 꽈앙하는 굉음과 목표물의 하얀 연기가 일어선 것이고
   왜 왔느냐 어디서 왔느냐 어떻게 왔느냐 언제 가느냐 ……
  한국인 경비경찰이 진압봉 들고 묻는 말의 울림이 일어선 것이고
  경고/위험
  미공군 시설
  폭탄 및 총포 사격장
  작전용 폭탄/불발 포탄
  본 군사시설 사령관의 허가 없이 본 시설의 출입은 위법입니다
   본 시설의 보호
  대한민국 법령 2388호 1972년 12월 26일 공포
   대통령령 6655호 1973년 5월 2일 공포
  대통령령 7031호 1974년 1월 4일 공포
  본 군사 시설 내에 있을 때에는 개인 및 소지품에 대하여 수색을 받을 것입니다
  그 너머의 오만에 부딪힌 눈길이 일어선 것이고
  법원이 훈련 피해 배상 결정을 내린 바로 다음 날의 폭격 훈련 재개에 벌어진 입들이 일어선 것이고
  외국군의 범죄에 배상금으로 쓰이는 우리 국민의 혈세, 사격장 주변에 새로 친 철책의 가시에 긁힌 눈의 불길이 일어선 것이고
  주한미군과 동아시아 주둔 미군 기동사격과 폭탄투하 훈련장(고온리/쿠니사격장)으로 사용되게 한 1954년 한미협정과 1967년 소파(주한 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의 굴욕적인 불평등이 일어선 것이다


[꼬리말]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 남에게 대접받기를 원하거든 먼저 남을 대접하라. 사람만이 아니라, 만물이 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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