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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호/특집/교과서의 반이라도 …/백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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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인식
댓글 0건 조회 3,722회 작성일 02-06-1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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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교과서의 반이라도 …
 백인식(인천 광성 고등학교. 교사 극단 "나무를 심는 사람들")





우리의 교육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교과서에 써 있는 대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이 교과서와 현실의 모습이 같다고 믿을 수 있는 그런 교육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반만이라도 현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수업 시간, 종을 엎어놓은 것 같은 곡선을 설명하며 "이 모양이 보아 뱀이 코끼리를 삼킨 것 같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보아 뱀이 뭐예요?"라고 묻습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 뱀 몰라?"했더니 짝궁에게 "야! 어린 왕자가 뭐야?"라고 물어 봅니다. 짝궁은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듭니다. 잠깐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다가 "야! 어떻게 고등학교 3학년이 어린 왕자도 안 읽어 보냐?" 했더니, 학생들은 오히려 나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나를 바라봅니다. 그때 왜 헤르만 헤세가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너희들 중에서 헤르만 헷세의 소설을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 손 들어봐!"라고 말했더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습니다. 머리를 긁적이다가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진도를 계속 나갔습니다.

교과서에는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문화 예술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써 있습니다. 시험 공부하기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은 없는데 교과서는 당당하게 책을 읽으라고 말합니다. 교과서는 현실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문을 여는데, 한 학생이 그 사이를 비집고 나갑니다. 그 학생을 불렀습니다. "야, 이리 와 봐!" 긴장한 학생은 "죄송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뭐가 죄송한데?" "선생님들 화장실에 들어와서요" "야! 임마. 그게 아니구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학생은 내가 무엇을 요구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너 지금 내가 문을 열자 그 사이로 비집고 나갔지. 그래도 되는 거야?" "아니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선생님이 들어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요." "그래, 임마. 꼭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누가 문을 열었으면 양보하는 마음으로 옆으로 비켜 주면 좋지. 너처럼 비집고 나가면 기분이 좋겠니?" "죄송합니다." "가 봐!" 그 학생이 잘못했다고 느낄 지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교과서에는 남을 생각하는 삶이 올바른 삶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어른들은 툭하면 "요즘 얘들은 …"하며 식으로 야단칩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우리의 학교에서는 몸에 습관이 배이도록 차근차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말 한마디, 정신교육 한 번에 모든 것을 배우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야간 자습이 자율을 핑계로 예전과 다름없이 진행되고 있는 인문계 고등 학교에서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따로 자습실을 마련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들은 에어컨이나 하이테크 의자가 있는 자습실을 메이저리그, 에어컨만 있는 자습실을 마이너리그, 교실에서 자습하는 학생들을 평민으로 나누어 부른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들이 여러 가지로 세 부류를 차별한다고 항변합니다. 예를 들어 메이저리그와 평민이 같이 시작 시간에 늦게 들어 와도 메이저리그한테는 "빨리 들어가서 공부해라" 하지만, 평민은 "쓰레기 같은 놈들이 공부는 안하고 어딜 늦게 돌아 다녀!"라고 꾸짖으며 체벌을 한다고 말입니다. 과장된 면이 있겠지만 평민이라 불리는 학생들의 가슴에 응어리가 진 것은 분명 합니다.

시험에 나온 문제라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에 동그라미를 쳐야 맞는 답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자신들이 평등하게 대접받고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점수에 의한 차별은 평등하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이 말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잘 나가는 학원의 선생님이 TV에 나와서 올해의 수학 능력 시험 경향은 어떻고, 올해의 입시 대책은 어떻게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니, 저런 내용은 선생님이 말해도 되잖아. 학원 선생님이 TV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자신도 모르게 학원 선생님들이 더 실력 있다고 믿게 되는 것 아냐?' 수능이 쉬워서 실력 있는 학생을 뽑을 수 없으니 본고사를 보아야겠다고 투덜대는 일류대 교수의 모습이 TV에 나올 때면 '왜 대학에서는 고졸 연습생으로 홈런 왕에 오른 장종훈 선수 같은 학생이 나올 수는 없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교과서는 학교의 선생님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TV나 신문은 학원 선생님을 더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교과서는 민주를 말합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선생님들 사이에도 민주적인 회의는 없습니다. 교과서는 개인의 능력이 학벌, 지연, 혈연에 앞선다고 말합니다. 학생들은 그 말을 믿을까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의 교육이 교과서 내용의 반만이라도 현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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