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창간호/백우선 연재시/'예술시편'[1]/백우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백우선
댓글 0건 조회 5,400회 작성일 02-06-14 09:42

본문

백우선 연재시 '예술시편'[1]
*[연재를 시작하며]

예술품은 삶의 미적 정수이다. 그에 대한 감동, 이해와 오해, 망상 등을 내 깜냥껏 얽어 보았다. 이들을 읽어가는 눈길이 조금이라도 즐겁기를 염원한다.


봄봄
―김인식 유화 '봄'


봄은 떼로 온다
온다 온다 오지 않더니
온갖 종족 떼로들 꿈틀대며
언제 터진 폭발일까, 꽃 꽃 꽃화산
확 몰려와 등을 탁 친다
히야―, 휘둥글
정신이 휘청한다
빛깔이며 향기며 흘리흘리며
동네방네 난리굿
질퍼덕질퍼덕 봄은 온다
그 꽃진창 속
흥건히 젖지 않을 길이 없다

*[꼬리말]
"샤르댕, 이게 무슨 꽃이지요?"
"스타치스, 노랑과 보라의 스타치스……."

그림에 들어가기 전의 꽃이 화병에 꽂혀 바짝 말라 있다. 색깔도 바래고 칙칙하다. 그러나 그림 속의 꽃은 여전히 싱싱하고 흐드러져 피어 있다. 그 아래서 연일 담배들을 피워대도 끄떡없다.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은 언제나 봄이다. 화병에 처음 꽂힌 꽃이 그냥 봄이라면, 이 그림 속의 꽃은 봄봄이다. 내가 싫어하는 담배 연기를 봄안개로 보이게도 해주는 향기로운 봄봄이다. 내 발은 늘상 그 꽃진창에 빠진다. 한겨울에도 봄꽃물이 가슴에 흥건히 고인다.

그가 좋아하는 화가의 이름으로 그를 부른다.
"샤르댕, 이 글 좀 봐봐요. 봄물에 젖나."







돌의 꽃밭
―변미영, 작은 돌 8개에 들꽃(7개)과 새(1개)를 그려 붙인 작품


꽃이란 꽃
다 주어버리고 잊어버리고
그저 막돌로 구르며
얼마가 지난 지도 모르는데
꽃 봐라 꽃 봐라
꽃 중의 꽃 봐라
돌의 가슴에 햇살은 내려
다시 꽃으로 피었습니다
깊이 모를 빛의 꽃 피었습니다
반짝반짝이는 하늘의 눈
꽃소식 전하려
나래 펴는 돌
파랑새의 노래도 향기롭습니다

*[꼬리말]
아기 주먹만한 자연석,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가 꽃과 새가 되어서 내 가슴속의 그것들과 만난다. 반가이 눈짓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눈다. 작가의 작고 나서지 않는 것들에 대한 애정, 그것들과 만나 이루어내는 아름다움의 의미――그런 것들로 인해 마음이 더욱 따뜻해 온다.

모두 여덟 개의 돌 중, 하나에는 파란색의 새 한 마리를, 일곱 개에는 애기똥풀, 수박풀, 붉은토끼풀, 톱풀, 으아리, 동자꽃, 초롱꽃을 하나에 한 가지씩 그렸다. 방해말과 물감을 써서 그린 것을 서화지에 적당한 간격으로 붙이고 꽃이름도 연필로 적어 놓았다. 글씨도 참 소박하다. 이들을 보거나 생각할 때마다 우리꽃들이 자꾸 피어나고 소리 없는 웃음이 번져온다. 주름 없는 공기의 투명비단 자락을 가만가만 흔드는 새의 노랫소리도 들려온다. 꽃의 빛깔과 향기가 새의 노래를 더욱 곱고 향긋하게 한다. 내 발걸음이 자꾸 춤이 되려고 한다.   





태양새
―김기창 수묵채색화 '태양을 먹은 새'


태양을 집어삼킨 새
통째로 집어삼켜
하늘까지 꿀꺽 집어삼켜
태양으로, 하늘로
타오르는 새
저 위의 위
짙붉어 가이없는
태양의 태양
하늘의 하늘까지로
이글이글
깃을 치는 새

*[꼬리말]
이 작품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나의 분신같이 아끼는 작품이다. 우주로 비상하여 우주 자체를 집어삼키고 싶은 내 심정의 표현이기도 하다."<'나의 그림 나의 생각' "현대인" 1976년 4월호>

올 1월 23일 고인이 된 운보 김기창 화백은 청록산수, 바보산수, 수묵추상 등을 통해 우리를 푸르고 넉넉한 그림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그의 바보산수를 보면서는 나도 바보시를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10 년 전쯤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 있는 그의 '운보의 집'을 둘러보고 '운보의 집에는'이라는 시를 다음과 같이 썼다.(최근에 고침)

"운보의 집에는/크고 둥그스럼한/돌들이 있다//돌거북과 돌물고기/굴껍질 흔적의 바위/이들이 그들이다//초정 약수터 길목/본채 왼편에는/아욱과 기장밭의 신이란 뜻일까/'露葵黃粱社'(노규황량사)가/완당의 글씨로 현판돼 있다//들꽃들의 꽃밭이 있고/복스럽고 동그마한/개, 닭, 토끼 들도 있다//운보, 우향 기념관 앞에는/소박하나 그윽하고 넉넉한/돌해태 한 쌍도 있다"

'굴껍질 흔적의 바위'를 보면서 왜 하필이면 굴 껍질(제대로는 껍데기)이 붙어 있는 바위를 이곳에 세우게 되었을까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 굴 껍데기가 어쩌면 그의 친일 관련 얼룩일까하고도 생각해 보았다.





황홀의 비
―구스타프 클림트 유화 '다나에'


하늘의 꽃에서 내리쏟아져
땅의 꽃으로 빨려 들어라
황홀, 천지 황홀의
왼갖 꽃들 흐드러진 꽃밭의
진동하는 꽃비린내, 풀비린내
흥건한 꽃물 미끈미끈적여라

*[꼬리말]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물구슬발'이라고 부른 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냥 내리는 비는 '물구슬줄', 꽃에서 흘러내리는 비는 '꽃물구슬줄'일까.

그렇다면 꽃에서 꽃으로 흘러드는 꽃물은 '비단구슬꽃물'일까.

그렇다면 내게서 네게로 흘러가는, 네게서 내게로 흘러오는 이것의 이름은 무엇일까.







오직 연꽃을 사랑하리
―주돈이와 나의 '애련설'


나는 오직 연꽃을 사랑하리
진흙탕에서 자라 진흙탕을 꽃피우고
맑게 씻기고도 자만하지 않으며
속은 통하고 겉은 곧으며
덩굴지거나 가지치지 않고
향기는 멀리에서 더욱 맑으며
등불로 솟아올라 빛이 되나니
이만치서 바라는 보고
가까이서 만질 일은 아니리
나는 오직 연꽃을 사랑하리니
연꽃은 꽃 중의 어진이이리

*[꼬리말]
중국 북송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 전문 풀이는 다음과 같다.

"물뭍 초목의 꽃에는 사랑할 만한 것이 아주 많다.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였고 당나라 고조 이래로는 세인들이 모란을 매우 사랑하였다.

그러나 나는, 진흙에서 나오나 그것에 더러워지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고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통해 있고 겉은 곧으며, 덩굴지거나 가지치지 않고,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꼿꼿하고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만만히 다룰 수는 없는 연꽃을 유독 사랑한다.

국화는 꽃의 은일자요, 모란은 꽃의 부귀자요, 연꽃은 꽃의 군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슬프다. 국화 사랑은 도연명 이후엔 들은 적이 거의 없고, 연꽃 사랑은 나와 같은 이가 몇이나 될까. 모란 사랑 많음이 당연한 것이리라."

이 중에서 연꽃을 유독 사랑하는 이유 부분을 뽑은 뒤 내 생각을 20%쯤 넣어 풀이했다. 번역도 창작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그것도 한문일 경우는 10∼20%쯤일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도 써 보았다.

추천5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