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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젊은시인조명/김은정/손 외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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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정
댓글 0건 조회 5,915회 작성일 02-06-14 09:47

본문

창간호 

젊은시인조명 

김은정
손 외 9편


벌판을 들여다본다

역경의 조각보

이 근면한 이파리 두 장







달걀


지금 내 꿈의 질량은 50g의 타원이다

오늘, 이 자루 속,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이 꽉 찬 속은 뻑뻑한 허망의 즙이며 남은 숨을 턱턱 막고 서는 누런 가래이며 존재의 가능태를 상상하는 단백질 시계, 그러니 오늘 내 위기의 심장은 싱싱한 50g이다

근본적으로 있지 않은 것에 대하여 그림을 그리면서 손톱이 부러지고 장지 모서리에 군살이 들어앉고 답답한 소득 위에 떨어지는 눈물의 농도에 휘말려 속이 상하지만, 그렇다 기꺼이 상해야 한다

뿌지직, 내 희망의 중량 50g을 넘어서는 이 미끄러운 기울기에서 상냥한 지진은 씩씩한 엉겅퀴를 기르고 나는 직면한다 고로 나는 태어난다





봄비


이제 시작이군요.
아주 조심스럽게 당신을 들여다봅니다.
나를 향해 당혹해하던 부드러운 솜털 투성이의 수줍음이 글썽일 때 얼마나 혈관이 저리던지요.
당신의 속눈썹을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바람의 갈비뼈 붙들고 세상에서 가장 굳건한 게 무언지 물어볼까요.
목숨 짓이기던 기막힌 날들, 가슴 태우며 겨누는 눈총 눈살에 쩍쩍 갈라지던 얼음장 보듬고 칼칼하게 드세었지요.
겨우 그리움이라니요, 두려움을 사랑하나니, 영혼의 모서리를 문지르며 흐르는 수액, 이 아름다운 춤.
이제 시련이군요.










당신은 물시계 추로 지평선 아래 누웠다가
청명한 날 내게로 발돋움합니다
오래 보듬고 살았던 젖은 눈동자를
아주 조심스럽게 깜박일 때면
더 먼 과거의 당신까지 내게 오고 있는 것이지요
수십 억 년 전 과거를 보여주는 현재
당신은 나와 어떤 각을 이루고 산이나 나무나 건물
또는 안개를 바라보다가
다시 잘 익은 한 톨 미래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인적 드문 곳이면 더욱 좋아요
혼탁하고 번거로운 함정을 지나
당신은 이제 해시계 바늘로 새 지평에 섰습니다







아침



나의 긍지인 당신,
당신이 도착하고 있군요
군담 없이 맑고 푸른 눈동자로 도착하고 있군요
다시 오늘밤 초록과 보랏빛으로 고매한 불의 춤
기쁨의 속살을 만지작이는
지문 속으로 흐르는 노래를 끌어안기 위하여
당신이 도착하고 있군요
내가 만들어진 태초의 기후와
기름진 땅 그 냄새 그대로
세상은 환한 물이 들고 있어요
무한을 건축하며 걸어오는 당신 용기의 품격
당신은 나를 증가시켜요







꽃잎


만져보아라
햇살 가락으로 뜨개질한 시계
이 부드러운 살

모든 것을 알고도
모든 것에 놀라는 눈동자로 무늬 넣은
이 물음표의 살

누구도 계산할 수 없는 순간의 길이로
중후하게 허공을 밀면서 독립하는
현재진행형 대륙
화사한 향기에 볼을 대어보아라

한 결을 따라 걸었던 속 깊은 이야기
그 영원의 중심을 원만하게 드러낸
장엄한 날개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

예예
예예예
예예예예
예예예예예
예예예예예예
예예예예예예예
예예예예예예예예
예예예예예예예예예
예예예예예예예예예예







촛불


휘발하리라
너를 밝힌 죄 극형을 앞에 두고
눈물로 가득 찬 나를 흔드는 어떤 화근도
원기와 진을 다 빼내지는 못 해
사랑의 길이를 섣불리 자르지는 못 해
너를 향한 나의 심지 융숭하게
묵묵 견디며 깊었으므로
화형이 아니라면 불꽃을 전해나 보겠느냐
적막의 스란 위에 심장을 놓고
뜨겁게 머리채 잡혀 주리 틀리는 이 천운
여기부터가 진정이구나
훨훨 탄다 첩첩 산아 비켜라






의혹


나는 어쩌면 이 삶을 방문한 운석일지도 모르겠다.
이 삶의 표피에 충격을 주며 어느 날 갑자기 침범한 은하의 염색체, 눈 먼 유전자 껍질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쩌면 누군가가 잃어버린 그 과거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직 파악되지 않은 퇴적과 퇴적 사이, 그 층층 사이 아주 작게 움츠리고 앉은 세포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는 사실이 너무나 큰 가능성인 이 생존 구역, 햇빛으로 풀잎을 짜듯이, 햇살로 볍씨를 만들 듯이, 궁금증으로 직조하는 이 시간 위에 얹힌 파장의 파란들.
알 수 없는 것들 쪽에 가슴 맞대고 곧게 서면 단단히 막힌 비밀의 벽 쿵쾅이며 삽질하는 나의 맥박 소리. 생명을 헤아리는 정밀한 눈금의 잔잔한 파문, 그 원의 둘레, 그 원의 원의 원의 세.










그리움은 미생물, 나를 오래 오래 발효시켜 여기까지 데려왔어요.

나를 만난 당신은 등불로도 켜지고, 어둠으로도 만져지고, 고요 그 자체로 나를 휘감기도 합니다. 또 당신은 가까운 숲 속 재잘거리는 새들, 그 알아들을 말도 아닌 기특하고 낭창한 다정으로, 어쩌다 두려워 푸드득 날아오르는 순발력 그 소리로도 있고, 깃털 하나 떨군 자리 못내 아쉽게 뒤돌아보는 목덜미 아래 흐르는 시냇물의 음성으로도 있습니다.

그 물 단단히 제 갈 길 가다가 표면이 얼면 어쩌다가는 그 위로 마음이 미끄러지기도 합니다. 쭈르륵 엎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어찌 당신을 엎지르겠나요. 그 순간, 당신은 그 차고 딱딱한 빙판으로 나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더 아래로 빠지지 않게. 언제나 어디에서나 나를 이렇게 안고 있는 거지요. 기쁨이 깨우쳐집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쏟지 않는 그 힘 그 탄력 앞에 부드러운 저음으로 환호합니다.

나를 짊어질 때 당신의 불균형은 사라지고 나를 안을 때 당신의 불완전이 닻을 내리는 것 아는 일, 비로소 다행이지요. 나는 당신의 오묘한 지체, 당신은 나를 기르는 무한한 그릇. 오 아미타.







<시작노트>
시-마음의 기하학

내게 있어 시는 여전히 구원이다. 나는, 시가 인간에게 구원을 준다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이 삶으로 내던져진 것 아닌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사는 일이 매우 기쁘다. 그 슬픔을 섬긴다. 그 묵직한 과정에서의 신성한 눈물 흘리기, 그러므로 소외만을 식량으로 선물 받은 나는 이 황망한 지상에서 늘 뉴턴의 운동법칙을 느낀다.

나는, 만약 시에 의해 변화를 받지 않았다면 여전히 시를 모르기 이전 그 기존의 상태를 계속 그대로 유지하려 했을 것이다.(제1법칙) 그러므로 내 삶의 변화는 내게 시가 작용하는 힘에 비례하고 또 그 힘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제2법칙) 게다가 그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있다.(제3법칙) 즉 나의 바깥에는 나와 크기가 같고 방향이 서로 반대인 힘이 존재한다. 한 쌍의 힘인 것이다. 물론 내 질량은 신께서만 아실 일이다. 나는 시를 믿고 사랑을 믿고 구원을 믿는다.

성(聖)이라는 글자가 있다. <이(耳)+목(目)+비(鼻)+구(口)>, 즉〔耳(目鼻)口〕. 그리고 그 아래 절대적 존재. 그 모든 것이 통해야 도달하는 영역이다. 제일 먼저 귀가 뚫리고, 눈이 뚫리고, 코가 뚫리고, 마지막으로 온 몸 입이 되어 말씀을 전하는 단계, 말하지 않고도 말씀을 전하는 단계, 그 너머 너머까지.

나는 늘 나를 부축해주는 수수께끼들을 읽으며 그 여운을 헤아린다.

추천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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