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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다시 읽는 고전의 세계-한국고전과의 만남/권순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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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고전의 세계-한국고전과의 만남
春香, 아름답고 매운 봄의 향기
권순긍(세명대 교수, 문학평론가)
1.
어느 나라나 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애독되는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진정한 의미의 고전(古典)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 작품 속에는 민족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 흔히 '인구에 회자'된다는 그 고전의 목록에 맨 위를 차지하는 건 무엇일까? 중국에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있고, 일본에 <겐지모노가따리(原氏物語)>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춘향전(春香傳)>이 있다.
18·9세기엔 판소리 <춘향가>가 12마당 중 가장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고전소설로도 무수하게 많은 이본을 파생시켰다. 게다가 서양의 오페라와 유사한 창극으로도 공연됐으며 1923년 처음으로 영화화된 후 무려 11번이나 영화로 제작되었다. 최근 임권택 감독에 의해 10대 춘향과 이몽룡을 주인공으로 하여 판소리 뮤직비디오 같은 <춘향뎐>을 제작하여 칸느 영화제에 진출하기도 했다. 실상 근대문학이 개척된 1920·30년대에도 대중적 인기면에서는 <춘향전>이 단연 베스트 셀러였다. 당시의 기록을 보자.
지금 조선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무엇이냐 하면 춘향전(春香傳)이나 심청전(沈淸傳)이라고 한다. 이 춘향전과 심청전의 애독자는 만히 중류이상 가정부인이다.(H.K生, <가정과 구소설>, 《동아일보》 1929. 4. 2)
잘 팔리고 말구요. 지금도 잘 팔리지요. 예나 이제나 같습니다. 춘향전, 심청전, 유충렬전 이 셋은 농촌의 교과서이지요.
(박문서관 주인인 노익형의 말, 《조광》4권, 1938. 12)
이런 <춘향전>의 인기 때문에 1920년대 말에는 KAPF의 논객이었던 김기진에 의해 당시의 소설을 <춘향전>식으로 쓰자는 대중소설론도 제기될 정도였다. 무엇이 <춘향전>을 이토록 널리 읽힐 수 있게 만들었을까? 소설 뿐이 아니다. 영화로도 <춘향전>만 만들면 흥행에 대박을 터트린다는 것이다. 방화사상 <춘향전>이 한 번도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다. <춘향전>은 어쩌면 문학사를 뛰어 넘어 문화사 예술사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 말이 믿기지 않으면 남원 광한루(廣寒樓)에 가보라. 주변의 모든 것이 <춘향전>으로 도배를 하고 있다. 춘향장, 도령여관, 월매집, 춘향식당, 몽룡다방, 방자슈퍼 ….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도 아니고 단지 소설 속의 주인공일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폭 넓은 지지를 획득했을까? 춘향은 분명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무엇이 300년의 시차를 뛰어 넘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일까? 그 비밀의 숲으로 들어가 보자.
2.
흔히 쓰는 말에 '춘향같은 여자'란 말이 있다. 그저 남자만 바라보고 모든 걸 바치는 지고지순한 열녀(烈女)를 뜻한다. 그래서 장가 못간 총각들은 어디 춘향같은 여자 없냐고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디 가서 그런 소리하면 뺨 맞기 십상이다. 실제 춘향도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춘향전>의 가장 큰 오해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변학도에게 죽도록 매를 맞고 긴 칼을 쓰고 앉아 옥중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춘향, 이제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춘향의 모습니다. 이당(以黨) 김은호(金殷鎬) 화백이 그렸다는 광한루 춘향사당의 춘향 영정이 딱 그런 분위기를 띠고 있다.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주르르 흘릴 것 같은 청순가련형 여인의 정화로 보인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라. 일개 기생인(물론 춘향전은 비기생계 이본도 있지만 대다수는 기생계이다.) 천민 신분의 여자가 명문대가 양반 도령을 맞아 사랑을 이루었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요즘도 빈부나 처지가 다르기에 결혼하지 못하는 일이 흔한데 신분을 지고의 척도로 삼았던 봉건시대에는 오죽했겠는가. 바로 그런 험난한 사랑의 여정을 극복하고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던가. 그 험난한 여정을 눈물만 흘리는 청순가련형 여자가 어찌 극복해낼 수 있겠는가. 어쩌면 춘향에게 부과된 그 고통때문에 이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이 아닌가.
처음 남원부사 아들인 이몽룡이 그네 뛰는 춘향이를 대면했을 때, 이몽룡은 춘향을 기생의 딸이라 잠깐 즐기는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그네 뛰는 춘향이를 물어보니 방자가 "다른 무엇이 아니오라 이 골 기생 월매 딸 춘향이란 계집아히로소이다." 하자 "장이 좋다. 훌륭하다"고 하고 "들은 즉 기생의 딸이라니 급히 가 불러 오라"고 한다. 동등한 사랑이 아니라 미색을 탐하는 양반 난봉꾼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제의를 춘향은 매몰차게 거절한다. 실상 춘향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그것이 춘향의 본 모습이다. 결국 사또 자제 이몽룡은 "네가 너를 기생으로 앎이 아니라 들으니 네가 글을 잘 한다기로 청하노라."고 궤도를 수정하기에 이른다.
두 청춘 남녀가 만나 첫 눈에 반하고 사랑하기에 이른다. 그 사랑은 상대방의 신분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상대방이 마음에 드는 지인지감(知人知鑑)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양반과 천민이라는 신분적 장애가 가로 놓여 있고, 그 간극은 당시의 통념상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이들의 사랑이 진정한 것이 아니라 잠깐 즐기는 대상이었다면 신분은 그리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날 밤 이몽룡은 춘향이의 집을 방문해 서로가 부부가 될 것을 약속하고 불망기(不忘記)까지 적어준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혼인서약서'가 되는 셈인데 당시의 관습으로 그것이 사회적 구속력을 지녔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신분을 뛰어넘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절차인 셈이다. 적어도 둘 사이에는 신분이 문제가 될 것이 없어진 것이다.
그 첫날 밤 춘향과 이몽룡의 질탕한 사랑놀음은 <춘향전>을 외설시비에 휘말리게 한다. 개화기 신소설 작가였던 이해조(李海朝)는 '춘향전은 음탕교과서'라 했으며 초기 국문학 연구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던 조윤제는 <춘향전>의 주석에서 그 일부분을 아예 삭제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얼마 전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공판 과정에서 지지 의견을 내놓았던 민용태는 <즐거운 사라>를 <춘향전>에 비견하기도 했다. 필자에게도 웃지 못한 사연이 있는데 대학 국어 교재에 <춘향전>의 그 부분을 주석까지 붙여 자세히(!) 실었더니 원로 교수 한 분이 국어강의를 하고 와서 그렇게 야한 것을 실으면 어떡하겠냐고 해서 한 바탕 웃은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얼마나 발랄하고 생동감이 넘치는가. 학생들과 수 없이 이 부분을 강독해 왔지만 야하거나 외설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장면을 자세히 따져 보면 포르노와 별 다를 게 없다.(16살 밖에 안 되는 것들이 밤새 온갖 짓을 다하니 이거야말로 <빨간 마후라> 원조가 아닌가!) 하지만 진정한 사랑, 영혼의 만남이 있는 사랑의 행위는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답다.
<챠텔리 부인의 사랑>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산지기인 멜로즈가 챠텔리 부인과 사랑을 나누는 씬인데 벌거벗은 온 몸에 꽃을 올려 놓고 키스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야하다거나 외설스러운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고 너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포르노의 한 장면이나 마찬가지일텐데 그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그 사랑이 대상화되거나 도구화되는 것이 아니라 온 존재로서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춘향전>의 이 부분을 강독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정말 미치도록 서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춘향전>의 '사랑가' 중에 한 예를 보라. "나는 죽어 인경마치 되야 … 인경 첫마디 치는 소리 그저 뎅뎅 칠 때마닥 다른 사람 듣기에는 인경소리로만 알아도, 우리 속으로는 춘향뎅 도련님뎅이라 만나 보자꾸나."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랑의 자장(磁場)안으로 들어오는 그런, 이명세 감독의 <첫사랑>에서 김혜수가 하늘로 날아 오르는 그런 경지다. 봉건시대 고루한 예교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인간의 개성을 마음껏 발산하는 그런 발랄하고도 도발적인 춘향의 모습이 바로 여기서 확인된다. 르네상스의 숱한 그림과 조각들이 왜 중세의 음울한 휘장을 벗어버리고 모두 인간의 아름다운 육신을 드러내는가를 생각해 보라. 단 물신화된 요즘 사회의 성(性)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무조건 성이면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 동반될 때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춘향전>의 성은 진정한 사랑이 만나서 펼쳐지는 한 없이 아름다운 진경(眞景)인 것이다. 춘향이의 성을 이 물신화되고 파편화된 현대의 퇴폐적 성과 동일시 해서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자 이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보자. 상호신뢰와 애정에 의해 감추어져 있던 신분적 갈등의 현실의 고난으로 나타난 것은 이몽룡과 이별하고 변학도가 남원부사로 내려오면서부터다. 이 고통의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춘향전>은 비로소 위대한 작품으로 자리잡게 된다.
아름다운 기생을 사이에 두고 한량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미기담(美妓談)' 혹은 '탐화담(探花談)'은 조선 후기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어는 고을에 원님으로 내려 왔던 양반이 그 곳의 아릿따운 기생과 사랑을 나누었고 임기가 다하여 서울로 올라갔지만 기특하게도 그 기생은 절개를 지켜 나중에 면천시켜 첩으로 삼았다는 얘기가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어찌보면 아름다운 사랑얘기가 아니냐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동등한 인격체의 사랑인가는 여러모로 생각해 봐야 한다. 아름다운 꽃을 꺾듯이 여성은 단지 장식물에 불과하며 철저하게 남성 중심인 것이다. 그저 얼굴 하나 잘 나서 뽑히게 된 것이다. 이들 이야기의 제목으로 많이 등장하는 '탐화(探花)' 혹은 '절화(折花)'라는 표현이 그 단적인 예다. 사랑하고 괴로워하는 여성의 살아 있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정식 부인이 아닌 첩으로 삼았다는 대목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몰론 당시의 실정으로 부부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여성의 주체적인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춘향전>이 여느 미기담(美妓談)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춘향전>은 여성 주인공인 춘햐이의 얘기인 것이다.
남원에 내려 온 변학도는 만사를 제쳐놓고 '기생점고'부터 하고 춘향이를 찾는다. 어떤 이본에 보면 기생명부에 없으니 집어넣고 데려 오라고 까지 한다. 춘향이를 대하는 이몽룡과 변학도의 태도부터 다르다.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이몽룡과 우격다짐으로 수청을 강요하는 변학도, 바로 이 변별점이 춘향이가 그토록 강하게 수청을 거부한 근거가 된다. 변학도는 춘향을 인격체가 아닌 양반의 노리개로 보고 수청을 강요한 것이다. 춘향이의 수청거부는 이몽룡을 위해 절개를 지킨다는 의미보다도 바로 이런 무지한 폭압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변학도가 기생이 무슨 정절이 있냐고 조롱하자 춘향은 다음과 같이 대꾸한다.
충불사이군(忠不事二君)이요 열불경이부절(烈不更二夫節)을 본받고자 하옵는듸 연차 분부 이러하니 생불여사(生不如死)이옵고 열불경이부(烈不更二夫)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 충효열녀 상하있소. 자상히 들으시오. 기생으로 말합시다.
춘향이가 강변하는 것은 봉건적 덕목인 '열(烈)'인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한 사랑하는 남성과의 사랑을 위해서 수청을 거부하겠다는 말이다. 곧 자신의 인간적 권리를 주장한 셈이다. 이런 춘향의 항변에 대해 "지나 가던 새도 웃겠다."거나 "기생이 정절이면 우리 마누라는 기절"이라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당시 기생은 인간도 아니었다. 이 때문에 당시의 실정법에 해당되는 '열'이라는 명분을 통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야 했다. 당시의 봉건적 덕목을 이용한 것이지만 춘향이 강조하는 '열'은 한 인격체의 권리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외피의 역할을 한다. 춘향이가 주장하는 '열'은 그 핵심에 있어서는 봉건적 덕목과 상반되는 당당한 인격체로서의 자유의지를 포함하고 있다.
왜 춘향이가 죽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했을까? 사건의 진행 과정을 보면 춘향이 매를 맞아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고, 거지꼴로 내려온 이몽룡을 보고 살아날 희망을 포기하고 사후 처리까지 부탁한다. 아주 독하게 마음먹고 여러 유혹도 뿌리친다. 변학도는 사람을 보내 "네가 수청을 들면 관고돈이 다 네 돈이 될"것이라고 하고, 어머니인 월매는 "이번 만은 눈 질끈 감고 수청 한 번 들라"고 한다. 실상 기생들에게 있어 잠자리 한 번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 하지만 춘향은 양반의 노리개가 되어 구차하게 사느니 당당하게 죽겠다고 했다. 이런 당돌하고도 독한 모습이 춘향이의 진면목이다.
춘향이 바라는 것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평범한 지어미로 한 가정을 꾸미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양반의 노리개가 되야하는 신분적 질곡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신분적 질곡에 당당히 맞섰던 여자가 바로 춘향이다. 춘향이와 비교해 볼 때 이몽룡은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상대일 뿐이고 명문대가의 양반이기에 사랑의 성취가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이 때문에 춘향이는 양반으로의 '신분상승'을 이룬 것이 아니라 천민인 기생도 한 인격체로서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신분해방'을 현실화시킨 것이다. <춘향전>은 한국판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다. 어찌보면 처절한 한 천민의 투쟁사인 것이다. 이 끔찍한 고통의 터널을 경과하면서 <춘향전>은 위대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곧 남녀의 사랑얘기를 통하여 작품의 주제를 정치적이고도 사회적인 의미로까지 확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봉건 신분제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였던 '신분해방'의 의지를 실현시켰을 뿐만 아니라 변학도의 수청강요로 대변되는 탐관오리의 폭압에 대한 항거로까지 읽히게 된다. 변학도가 누군가? "욕심이 어떠한 도적놈인지 민간 미전 목포를 고래질하여 백성이 모두 거상지경(居喪之境)"에 빠질 정도로 탐학한 탐관오리의 전형적 인물이다. 자연 그 인물에 대한 수청거부는 부패한 봉건 통치에 대한 저항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매맞는 춘향이를 보면서 남원부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춘향이를 지지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세계 명작이나 위대한 고전 치고 사랑의 얘기가 없는 작품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의 얘기를 통해 당대 사회의 모습과 민중들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염원을 담아냈기에 그 작품이 고전의 반열의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춘향전>이 바로 그렇다.
4.
<춘향전>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꼭 내주는 과제가 있다. 온 몸이 망신창이가 되도록 매를 맞고 옥에 갇혀 내일이면 죽게 될 춘향이의 심정이 되어 '옥중서한' 혹은 '유서'를 써 보라는 것이다. 물론 작품에는 없는 것이지만 이런 작업을 통해 멀고도 험한 사랑의 여정에 동참시킨다. 어떤 학생은 그 막막한 자신의 운명에 진저리를 치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마치 80년대 양심수의 옥중서한처럼 투사적 면모를 보이기도 하며, 또 어떤 학생은 살고 싶다는 욕망에 두려워 떨기도 한다. 정말 춘향이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 모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춘향이를 일러 천의 얼굴을 가진 인물이라 했다. 때로는 한 없이 나약한 여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독하게 저항하는 투사로, 또는 자신의 개성을 발랄하게 드러내는 생기있는 인물로…. 춘향(春香), 그 이름처럼 눈부시게 아름답고도 매운 봄의 향기로 다가오는 여인, 바로 우리 누이의 모습이 아니던가!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겁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드래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더구나 그 구름이 쏘내기되야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 서정주의 <春香遺文>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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