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창간호/단편소설/까치산/강인봉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인봉
댓글 0건 조회 5,625회 작성일 02-06-14 10:37

본문

단편소설
강인봉
까치산
-생명 이후 




버스가 온양천을 벗어나자 비로소 그 먼 까치산의 산록이 머릿속에 가득히 들어앉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는 가로수의 잎새들이 무겁게 가을빛을 견뎌내고 있었다. 이제 버스가 이대로 한 시간 정도만 더 달리면 그곳에 닿으리라.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산을 왜 까치산이라 부르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 산의 형상이 까치를 닮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까치가 유독 많이 서식을 하기 때문일까.

차라리 싸리산이라고 했다면 그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곳에서 본 것들 가운데 지금도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싸리꽃이었으니까. 그 산의 골짜기 전체가 달밤 같은 흰 싸리꽃밭이었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대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다시 아내의 목소리가 한 움큼 쟁쟁히 귓가에 살아나고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웬 줄담배예요?"

오늘 아침 아직 잠자리에 그대로 드러누운 채 뻑뻑 담배를 빨고 있는 내게 아내가 조심스럽게 지청구를 주던 말이었다.그러면서 아내는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일요일 아침이라 그녀 역시 한가하게 늑장을 부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벌써 설겆이를 끝내고도 났을 시간이었다.

"당신, 간밤에 무슨 나쁜 꿈이라도 꾸었어요? 오늘은 약수터에도 안 가고……."

그제서야 잠자리를 걷어내고 일어나 앉으며 아내가 잔뜩 심각한 얼굴로 담배만을 묵묵히 빨고 있는 내게 다시 물었다.

"글쎄…. 더 좀 누워 있지 그래. 아직 아이들 방에서도 아무 소리가 안 들리는 걸 보니……."

그 애들도 늦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젠 일어나야죠. 이게 다 복 감할 짓이에요."

역시 그녀다운 말이었다. 아내와 근 20년을 살아오는 동안 내가 그녀로 하여금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바로 그 복스러움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아내 덕분에 이렇게나마 명을 이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내를 맨 처음 만난 것은 대학 3학년 여름 방학 때였다. 그 당시 폐병 3기라면 실로 어마어마한 병이었다. 그런데 나는 혼자서 외로이 그 병을 앓고 있었다. 바로 그 까치산 산록에 있는 아내의 친정집에서였다. 장작개비처럼 꼬깃꼬깃 여윈 몸으로 안 그래도 거의 다 죽음의 문턱에 이른 상태였는데, 거기다가 같은 미술대학에 다니던 애인으로부터의 약싹빠른 변절은 나로 하여금 더욱 눈꼽만큼도 생의 애착을 못 지니게 했다. 기가 막혔다. 정말 기가 막힌 세월이었다. 그때 그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안타깝게 뒤척이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한 친구가 끌고 내려간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자네는 아직 젊은 몸이니 한 2년간만 이곳에서 요양하면 완쾌될 거야. 외롭도라도 꾹 참고 있으라구."

그 친구는 그렇게 손수 자기의 외가집에다 하숙을 정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놀랍게도 벌떡 기사회생을 했다. 그 친구의 외사촌 동생인, 지금의 아내 덕분이었다. 그때 그녀는 읍내에 있는 여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3학년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만 생각하면 절로 강아지풀이 눈앞에 떠오른다. 아내의 첫인상이 바로 그 복스러운 강아지풀이었다.

그녀는 새벽마다 그곳에서 2킬로쯤 떨어져 있는 청운사에 가서 약수를 받아 와 내게 먹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한번도 그 청초한 미소를 잊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풀잎에 내리는 햇살 같은 것이었다. 그 일을 누가 시켰든 그런 건 따질 일이 아니었다. 나는 거기서 비로소 인간 내부에 깊이 잠재해 있는 또 하나의 생명을 느꼈다.

"여보, 그 사람 있잖아."

이윽고 나는 담배불을 끄고 아내의 손을 꼬옥 쥐어 주었다.

"그 사람이라니요?

아내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당신이 언젠가 친정에 갔을 때 돈 오백 도와주었다는 그 사람 말야."

"아, 그분. 그거야 어디 그분을 도와줬나요? 내 친구를 도와준 거지."

"아무튼 그 돈이 그쪽으로 갔다면 결과적으론 그게 그거지. 그런데 그 사람 요즘은 왜 꼼짝을 안 하지? 아마 그 사람을 안 본 지도 서너 달쯤 되었을 걸?"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집에 내려갔을 때 읍내에서 우연히 여학교 동창을 만난 모양이었다. 서로 반가운 김에 가까운 다방으로 찾아들어 이런저런 살아온 얘기를 끌러놓다가 갑자기 그 친구가 한숨을 포옥 토해 내더라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돈이었다. 얼마 전에 자기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어디서 급히 돈 오백을 빌려 썼는데, 이제는 그쪽 역시 그 돈이 급하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것은 불교 신도회에서 어떤 사람의 거처할 곳을 마련해 주고자 갹출한 돈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돈 때문에 그쪽 일이 중도에서 낭패를 보고 있어 그리 안달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선뜻 그 돈을 내놓은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아내도 아주 신심이 돈독한 불교 신도여서 남의 아픔을 보고는 못 견디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일의 보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내의 친구가 아니라 바로 그 불교 신도회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아내에게서 빌려간 오백만 원을 갚은 것도 바로 그였다. 그가 그 돈을 들고 처음 찾아온 날부터 내가 화가임을 알고는 그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가며 내게 잔뜩 호감을 갖기 시작하더니, 그 희멀건 얼굴로 3년 동안을 줄곧 매달 두어 번씩은 꼭꼭 인사를 챙기곤 했다.

그것도 그냥 빈 손으로 오는 법이 한번도 없었다. 그 산의 온갖 진귀한 산채며, 심지어는 약술까지도 손수 담가 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것들을 갖다 주기 위해 찾아오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번도 그것이 자기의 선물이라 하지 않았다. 아내의 여학교 때 친구가 다만 자기를 시켜 그렇게 심부름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 그처럼 겸손을 떨었다. 아주 묘한 놈이었다.

하지만 우리 역시도 그를 그냥 보내지는 않았다. 아내는 그의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들을 미리 사두었다가 챙겨주었고, 나는 나대로 조금 그럴 듯한 술집으로 데리고 가서 맥주라도 양껏 사먹여 보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말귀가 통하는 점도 없지 않아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말까지 놓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무려 7살이나 아래였다. 그럼에도 술을 마시며 약간 취가가 오를 때 그 희멀건 얼굴에서 간간이 피어 오르는 그 산의 안개 냄새만은 기가 막히게 좋았다. 그것은 뭐랄까. 조금은 이유 모르게 나를 우울하게 하는, 그리고 조금은 어떤 알 수 없는 환희 같은 것에 은은히 젖게 하는 힘이 있었다.

언젠가, 그는 자기도 한때는 수도승이었노라고 내게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뜻한 바가 있어 머리를 기르고 절에서 나와 혼자 몇몇 신도들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도 그림에 대해서도 배우고 싶다며 나더러 제자같이 생각해 달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심 만족하게 웃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그 아름다운 생명의 빛깔에 눈뜨게 해주자는 게 평소의 내 주장이었다. 아무튼 그는 그렇게 술맛나게 하는 사람인 것만은 분명했다.

"당신 혹시 그분하고 무슨 오해가 있는 건 아녜요?"

아내가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오해는 무슨. ……괘씸한 놈."

괘씸한 놈이란 말은 나도 모르게 혼잣소리로 낮게 나온 말이었다. 지난밤 꿈 때문이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마악 이층 화실에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놈이 나타나더니 대뜸 이러는 것이었다.

"이제 보니 선생님의 그림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 진정한 생명이란 원래 남의 아픔을 자기의 것으로 승화시킬 때 비로소 얻어지는 법인데, 선생님의 그림에는 전혀 그런 빛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단지 그림뿐만이 아니고 선생님의 인생 그 자체가 벌써 죽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뭐, 뭐라구?"

순간 나는 놈이 말하는 그 생명이 불끈 손끝에 뻗쳐와 냅다 놈을 향해 들고 있던 물컵을 던져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꿈을 깨었다. 아직도 손끝이 그대로 부들부들 떨렸다.

"제가 한번 그쪽으로 전화를 해볼까요? 친구한테 물어보면 그분 소식을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

아내가 다시 조심스럽게 내 표정을 살폈다.

"글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글쎄라니요. 그분은 우리에게 복을 갖다 주시는 분이 아녜요."

그러더니 아내가 냉큼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복?"

하지만 나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사실 치사하게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따지고 보면 오히려 복이라면 우리가 더 준 셈이었다. 그까짓 그가 들고 온 산채 나부랑이 등속이 돈으로 따져 몇 푼이나 되겠는가. 그에 비해 아내는 그가 오기 전부터 열심히 백화점에 들락거렸고, 또 내가 사준 맥주값만 해도 그게 얼마인가.

그런데 한번은 그 술자리에서였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후배 녀석까지 만나 어쩔 수 없이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어쩐지 처음부터 기분이 께름칙했다. 가끔 내 화실을 기웃거리며 되지 못한 이론이나 주워섬기다 가는 그런 녀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저쪽 자리에서 녀석이 먼저 나를 발견하곤 반색을 하며 술잔을 들고 오는 것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녀석은 술이 몇 순배 돌자 제 버릇대로 주섬주섬 씨부리기 시작했다.

"그 언젠가 말한, 선배님을 아주 존경하고 따른다는 그 사람인 모양이지요?"

나이는 둘이 서로 엇비슷했는데 벌써부터 녀석은 그를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존경은 무슨."

나는 당황하며 얼른 녀석을 제지했다.

그러나 녀석은 막무가내였다.

"아, 선배님을 믿고 따르면 그게 존경이지요. 존경이 뭐 따로 있습니까?"

"이 사람,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나는 정말 너무도 민망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무튼 선배님은 좋은 심복을 하나 두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래도 녀석은 몇 마디 더 제멋대로 지껄여대었고, 얼핏 그의 눈을 보니 예의 그 안개가 시나브로 걷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우리 집에 아주 발걸음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니 나 역시도 마음이 편할 리는 없었다.

"당신이 한번 그곳에 내려갔다 오셔야겠어요."

거실에 나가 전화 통화를 끝내고 돌아온 아내가 갑자기 풀죽은 얼굴로 이죽거렸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듣자 부아가 끌어올랐다.

"그곳엔 내가 왜? 제깟놈이 찾아올테면 오고 말테면 말 일이지."

"그게 아니라, 지금 친정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자리에 누워 계신대요."

"그렇다면 가봐야지."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어서 빨리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다시 말하지만 그 어른은 내 생명의 은인이었다.

처음엔 친구가 나를 청운사에서 요양을 하게 해줄 요량으로 그곳에 끌고 내려갔는데 그 어른이 대뜸 반대를 하고 나섰다.

"그러잖아도 몸이 저 지경으로 비쩍 말랐는데, 채식만 하는 절간에 가서 얼마나 견디겠나. 더구나 그 독한 약을 먹어 가면서 말이지."

그때 나는 아이나·스펙티노마이신·리팜피신 같은 약을 장복하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폐병이라면 두려운 전염병이어서 집안 식구가 아니고는 사실 사람들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꺼릴 정도였다.

"그러지 말고 그냥 우리 집에 있게. 우리 집에 있는다고 해서 특별히 몸 보신을 시켜줄 만한 처지는 못 되네만."

하지만 그 어른은 까치산을 다 뒤져서 지성으로 뱀을 잡아 내게 먹였다. 폐병에는 그것이 가장 특효약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뵙고 오시면서 그분도 한번 찾아보세요. 어차피 내려가는 길이 아녜요. 그분은 지금도 그 청운사 아래에서 살고 있대요."

버스는 이제 드디어 까치산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빛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산등성이에 무더기로 핀 억새꽃이 말갈기처럼 바람에 부드럽게 쓸리고 있었다. 이제 이 길로 곧 가면 머지않아 처가집 마을이 나오리라. 실로 어머니의 품속 같은 곳이었다.

물론 처음 친구를 따라 그곳을 찾을 때의 심정이야 스스로 무덤 속에 기어드는 그런 것이었다. 오히려 한 가지 엉뚱함이 있었다면, 언젠가는 꼭 한번 죽음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보고 싶었던 미술학도의 꿈이 그제야 막연한 설레임으로 온몸을 마구 떨리게 한 희열 같은 것이랄까.

인적 드문 산길이라 그런지 정류장이 아닌데도 버스가 잠시 멈추더니 스님 한 분을 실었다. 한 사십 되었을까. 스님은 잠시 버스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비어 있는 내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아마도 청운사에 계시는 스님이리라. 나는 다시 차창 밖으로 눈을 주었다.

누가 그 생명의 씨앗을 저리 많이 뿌렸는지 코스모스의 긴 행렬이 산길을 따라 그리움처럼 아득히 이어지고 있었다. 문득 푸른 하늘에 목화송이처럼 피어 오르는 흰 구름도 보였다.

그때 돌들을 씻고 내려가는 맑고 찬 시냇물 소리가 들렸다.

"손님께서도 청운사에 가십니까?"

스님의 눈빛이 가만히 나를 담고 있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을 찾아갑니다."

전혀 뜻 아니하게 말이 그렇게 나왔다. 실은 아따가 보아서 한번 찾아가볼까 어쩔까 생각중이었다. 그의 집은 마을의 맨 뒤에 외따로 떨어져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재작년 여름 아내를 따라 나도 한번 그곳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집 앞 채마밭에서 다 떨어진 작업복을 걸치고 앉아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영락없는 머슴이었다.

"어떤 사람이라면……?"

"그 사람도 과거엔 스님 생활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스님이 단박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거기서 대체 무슨 공부를 배우고 있습니까? 더러 나한테 와서도 그림을 좀 배우고 가곤 했는데요."

그는 분명 내게 그림을 배우고 싶노라며 제자같이 생각해 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놈이 심복 얘기가 나오자 발걸음을 뚝 끊어버린 것이었다.그래도 뭣 달린 사내라고 자존심은 있는가? 하지만 제자나 심복이나 그게 그것 아닌가.

"그분은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이 소승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한사코 높은 자리에 앉기를 마다하고 있지요. 지금은 몸이 다쳐 자리에 누워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약을 지어 가고 있지요. 그런데, 그분이 손님에게서 그림을 배웠다고 하셨나요?"

일순 스님의 맑고 찬 눈빛이 약간 떨리고 있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한데, 그 사람은 그곳에서 무엇을 가르칩니까? 아직 나이도 많지 않은 사람이……."

"그야 선(禪)이지요."

"선? 선이 무엇입니까?"

나는 다급하게 물었고, 스님은 빙그레 웃었다.

"삼라만상의 운행을 바로 보는 눈이지요. 그분은 큰 도인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 우주 자체를 다만 한 장의 그림으로 보고 있을 뿐입니다."

"도인?"

나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산이 온통 단풍으로 어지럽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마치 먼 저승에라도 찾아온 듯한 마음이었다.

"사실은 도인도 두 가지가 있지요. 하나는 명안종사(明眼宗師)로부터 인가를 받은 진짜 도인이고, 하나는 그냥 자칭 도인인데, 그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맥을 이어받은 한국의 마지막 남은 선사(禪師)입니다. 원래 불교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그 법통이 이어졌는데……."

그렇다면 왜 그런 멀쩡한 사람이 절을 놔두고 거기서 그리 궁상을 떨고 있는가. 그날 아내와 내가 마악 대문에 들어설 때였다.

"보살님, 거 오늘은 새참을 안 줍니까?"

채마밭에 앉아서 풀을 뽑고 있던 그가 담배를 하나 꺼내 물더니 집을 향해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안에서 기다렸다는 듯 웬 할머니가 막걸리병과 안주를 들고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그냥 놓아두시면 지가 다 알아서 헐 것인디 왜 이렇코롬 땀 흘려가며 일을 헌대유?"

그러나 그는 아무 대꾸도 없이 술만을 맛있게 퍼마시고 있었다.

"여기서 이렇코롬 혼자서 살려면 여자가 있어야 헐 턴디……."

입가의 잔주름을 묘하게 모아 웃으며 할머니가 말했다.

그러자 그는 넙죽 그 말을 받았다.

"인연이 있어야지요. 그럼, 보살님이 중매를 하나 해주십시오."

"참말 그래도 좋을까요?"

"좋다마다요. 한번은 있었지요. 아주 마음씨가 참하고 돈 많은 과부였는데, 나이가 너무 젊고 딸린 아이들이 많아서 그만두었지요."

지금도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는 듯 그는 쩝쩝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한국의 마지막 남은 도인이라니. 다시 언뜻 코스모스의 긴 행렬이 아득히 보였다. 아직 해질녘도 아닌데 그 끝에 까치산 자락이 선홍빛으로 짙게 물들고 있었다.

스님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도인도 두 가지가 있는데, 본산의 높은 조실 자리에 앉아서 설법을 하는 도인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그걸 다 버리고 그분같이 야산에 묻혀 이름없는 풀꽃처럼 사는 도인이 있지요. 그런데 그분이 가끔 찾아가곤 하는 집이 하나 있는 모양입디다. 그 집 안주인이 화신 보살(化身菩薩)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따금 그곳에 찾아가 그 여인으로부터 말없이 무엇을 배우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서너 달쯤 되었을까요. 그 집에 갖다 줄 약초를 캐기 위해 산에 올라가다가 그만 낙상을 하여 온몸이 크게 금갔지 뭡니까. 그래서 아직도 내가 이렇게 약을 지어 가고 있지요."

추천5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