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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신작시/맹문재/십이월 外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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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맹문재
십이월 外 1편
받지 못할 연금까지 원망하며, 커피나 한 잔 타 마시려고
부엌 쪽을 바라보는데
야적장 구석에 쓰러져 있는 김씨…… 그의
목에 걸린 방독면, 기름 범벅인 작업복, 목장갑 낀 손에 든
일당 전표…….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네,
몇 년만에 만난 동창의 말에 나는 또다시
빚진 통장을 화내고 있었다
담배를 이긴 대견함을 경멸하였고
계약직 강의를 깔아뭉개고 있었다
아침 전화도 받지 않고
두꺼운 역사책을 줄줄 외던 열정을
시장 거리의 먼지처럼 날리고 있었다
나는 화려한 아파트나 차지하려고
늘어나는 새치에 흥분하고
다가오는 총선거를 욕하고 있었구나
나무젓가락 같은 복수심으로 채운 일기장이여
행복한 설화에 갇힌 절망이여
전화벨이 다시 울리지만, 나는 받을 수 없다
버려진 계란껍질 같은 낙서를
나는 금간 나의 역사책에 그리고 있었다
십이월
1.
아내에게 말못할 이야기는
수줍은 편지로 건네는 그였다
육아일기를 쓰며 키운 아이들에게는
바둑과 장기를 가르치며
낙오자로서 가져야 할 침착함을 길러주었다
중동 건설에 참가했을 때는
모래바람이 막사를 뒤집는 날에도 월급을 꺼내
꽃마을 계좌를 지켰다
지난해 십이월의 일기에는
평범한 셀러리맨의 얼굴을 책임지기 위해
부적을 달 듯 강물 소리를 옮겨 적었다
"한 해의 강물이 또 저물어, 아쉬운 나이가 되었다."
2.
육교 아래와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그가 지나칠 수 없는 날보다
지각하는 날이 많았다
어떤 날은 아무리 기다려도 열차가 오지 않았고
제대로 가던 열차도 고장이 났다
서울 사무실로부터 문책 당하는 날이
연체 이자처럼 늘어나
다시 쓴 십이월의 일기장에는
피로를 알고 있었다
"나의 피로가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3.
그 날도 열차는 오지 않았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회사의 인사회의가
죽었던 그의 담배연기를 살렸고
역사에 전화를 걸게 했다
역사는 열차 지연을 항의하는 그에게
시민정신이 경박하다고 대번에 꾸짖었다
신앙심으로도 막을 수 없는 슬픔에 그는
모래를 만지듯 폭파를 웅얼거렸다
4.
"전철을 폭파하겠다!"
땅값이 오른다고 항간에 소문이나 내던
신문과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먹이사슬을 긴급히 치며
그를 포위해왔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그는 회사 근처의 공중전화에서 사과했지만
역사의 감청 장치에 걸려들었다
전철역 가판대에 모여 잡담을 하고 있는 신문들에게
탁탁 침을 뱉으며
5.
겨울 바람은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다
맹문재: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1991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 저서 {한국 민중시 문학사}, {한국 현대 대표시선}(편저) 등. 현재 경희대, 중앙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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