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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신작시/최창균/노천탕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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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최창균
노천탕 외 1편
벼 그루터기들이 빨대처럼 박혀 물을 빤다 이른 봄 마른 논배미에 물이 자작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거대한 탕 이루어 찰랑인다 기척을 느낀 하늘이 내려 천기를 담는다 붉은 해가 저어가며 물을 데운다 이것이 노천탕이라는 듯
우렁이도 스멀 솟고 미꾸라지도 몸 흔들어 흙때 벗긴다 개구리는 좌욕하듯 한 자세로 알을 뭉클하게 쏟아 놓는다 알몸 냄새 진동하는 노천탕 그런데 보아라 천하에 비린 것 좋아하는 저 사람들 바지 걷어부치고 첨벙첨벙 들어간다 이제 탕은 위험하다 이내 물이 찢어진다 기척에 놀란 듯 개구리는 둑섶에 숨어서 욕조를 들었다 놓았다 울어댄다 아주 여러 날 그 울음소리 들으며 올챙이들 수면을 찢고 개구리가 된다 하나의 생명이 잘 닦여져 나오는 노천탕, 게으른 사람들이 그때서야 소를 몰아 논을 갈아엎는다 이제 어린 모가 꽂힐 참이다
숲 속의 장례식
죽은 나무에 깃든 딱따구리 한 마리
숲을 울리는 저 조종소리
푸른 귀를 열어 그늘 깊게 듣고있는
고개 숙인 나무들의 생각을 밟고 돌아
다음은 너 너 너 너 넛,
다시 한번 숲을 울리는 호명소리
한 나무가 죽음의 향기로운 뼈를 내려놓는다
따르렷다 따르렷다
딱따구리 한 마리가 숲을 뚫는다
마침내 그 길을 따라
만장을 휘날리는
나무들의 행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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