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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신작시/구순희/모델하우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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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구순희
모델하우스 외 1편
-선물.21
얼마 전에 분양받은 그 집은
4대가 오종종 살아갈 집이다
내부 구조는 볼 수가 없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먼저 이름이 지워진 대로
순서에 입각한 입주다
부모 자식도 없다
공평하다, 가족묘
제 집 앞에서 제가 절한다
엎드려 죄의 등짝에 내리죄는
햇볕도 슬쩍 꿇어앉았다 간다
장차 육신을 눕힐 마지막 번지
지상의 꿈을 지하로 끌어내리는
잘 부푼 밀가루 반죽 같은 지붕
새 집의 앞과 뒤뜰을 쓴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을 세어 보며
평생 발묶여 이사도 못 갈 집
아랫목이나 웃목 가릴 것 없이
오랜 잠을 잘 대리석 제단 앞에서
제 무덤에 제가 두 번이나 절했던가.
눈물은 빈소 밖에 있다
-군사우편.22
누가 때리지도 않았는데
서러운 눈물이 난다
방에서 사나흘 그렇게 지낸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이 온다
이유 없이
이유가 없진 않지만
겉으론 그런 이유를 합리화시킬 때
영안실에서 전화가 온다
오토바이에 치여 혀 빼물고 돌아가신
어머니는 옷 욕심 많은 딸에게
처음으로 상복을 입혀 주셨다
무언가 물컹한 게 목구멍 채울 때
또 다른 빈소에 다녀온다
그러나 원수는 죽지 않는다
독오른 눈물에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죽지 않으려거든 날 울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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