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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신작시/윤달/엉클 패티*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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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신작시/윤달/엉클 패티* 외 1편
윤달
엉클 패티* 외 1편
내 뒷모습의 행방은 꼬리가 알고 있어요
발자국을 지우는 습성을 가진
그것은 점점 길어져서
밟히지 않으려면 뒤를 자주 봐야 합니다
꼬리 많은 소문들이 나를 찾아 나섰다죠
어제는 애꿎은 헛소문이 누명을 쓰고
오늘은 멀쩡한 몸통들이 발가벗겨져서
온갖 억측에 억지로 끌려 나올 판이라죠
멜론과 스위트콘과 밀크쉐이크가 내 뱃속을 휘저을 때마다
한껏 늘어진 뱃살이 물풍선처럼 출렁댔어요
늘어지다 못해 질질 끌리는 뱃살로 시장 바닥을 쓸고 다니다
떠날 때를 이미 놓쳤다는 걸 깨달았어요
바나나 숲의 울창한 그늘과 맑고 시원한 물소리가 간절했어요
목적지가 목전에서 멀어질수록 다급해진 목젖을 숨길 데가 없어서
묵직해진 목덜미를 내려놓으려다
제 발에 꼬리가 밟혀 주저앉았어요
꼬리가 밟혔으니 자를 일만 남았는데 관종과 관심의 거리가 왜 이리 가까운가요
어제의 비만과 오늘의 비만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질문이 꼬리를 무는군요
그러니까 나는 단지 몸통일 뿐이라고 몇 번을 더 말해야 하는 겁니까
차라리 보호소가 나은 걸 그랬나 봐요
편히 살다 죽게 해주고 뒤도 잘 봐줄 텐데
꼬리 하나로 감추기엔 너무 커진 몸통이라
뒤를 보는 것마저 힘이 드네요
죄송하지만, 웃지만 말고
제 뒤 좀 봐주실래요?
꼬리가 궁금해서요
그래도 한때는 배후였는데…
* 태국 방콕의 한 시장 근처에 사는 긴꼬리원숭이로 관광객들이 던져 준 각종 음식을 먹고 심각하게 살이 찐 모습이 화제가 되었으나 최근에 실종되어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그랬던 거지
말아먹고 말아먹으면서도 어떻게든 비비대고 싶었던 거지 비비 틀고 틀어도 틀어지지 않아야 트러블이 없다는 걸 몰랐던 거지 트러블이 생겨도 달래고 매달리다 달려가서 내 손에 넣어야만 내 차지가 된다는 걸 깨달은 거지 깨닫고 깨물어도 한 번 처진 처지는 계속 처지기만 하는 게 억울했던 거지 불어터진 어묵처럼 퉁퉁 분 생인손을 입에 물고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개가 되기로 작심했던 거지 거저 줘도 안 받을 동전 같은 동정조차 좋아라 꼬리치며 받아먹은 거지 동전을 잔뜩 들고 구세군 냄비 앞을 멀찌감치 돌아서 은행으로 들어가던 기분 따윈 잊었던 거지 어떻게든 성공하고 싶었던 거지 거지로 살기는 싫었던 거지
그때보다 지금이 더 거지 같은데
그 많던 거지들은 다 어디로 갔나
*윤달 2020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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