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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권두칼럼/장종권/딱 20년 동안 군불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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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권두칼럼/장종권/딱 20년 동안 군불 지폈다
장종권 시인·본지 주간
딱 20년 동안 군불 지폈다
딱 20년이 되었다. 2001년 1월 18일이 계간 리토피아의 생일이다. 초반에는 해마다 생일을 기념하고 즐기기도 했다. 애시당초 리토피아가 한국문학판에 변화를 가져오거나 영향을 미치거나 미래의 무슨 선도적 잡지가 되거나 새로운 젊은 피이거나 하는 욕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시를 쓰는 놈이니 다른 놀이터가 없어 문학판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래서 생일을 즐기기도 했으리라. 그런데 태어나면 언젠가는 꼭 죽게 된다는 공포스러운 진실을 간과했다. 생일은 즐길 일이 아니었다.
몇 년 안 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개개의 생명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혼자 살아가는 법을 체득하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는 것을 말이다. 혼자 사는 것은 혼자 사는 것이고, 혼자가 여럿을 끌고 가려면 영웅적인 희생이나 시대적 기적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 이 시대에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질문과 만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개인이 죽는 날까지는 살아 있어야 하듯이 문학도 죽는 날까지는 그저 살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과도 만나게 되었다.
허우적이다보니 창간 10주년이 되는 해에는 10년이 되는지도 모르고 지나쳐 버렸다. 언젠가부터 생일이 의미가 없어졌던 것이다. 탄생이 버거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일지도 모른다.
이제 딱 20년이다. 정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돌아앉아 뒤를 바라본다. 더 올라야 하나. 사실 정상이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정상이란 누구나의 착각이기 마련이고 착각하는 사람들끼리 무시로 정상에 올라 막걸리 한 잔 마시는 것이 고작이 아닌가. 그러니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꿈에서 깨고 나면 다시 고통이 시작되는 아침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깨어나야 한다. 생명은 처음부터 선물이 아니라 징벌일 수 있었다. 생명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저주받은 것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리토피아는 충분히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온 일반적 생명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것들은 고통스럽다. 고통을 잊으려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고 난리 부르스다. 그래도 누구나, 무엇이든, 죽는다.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한다. 초심이 있었던가. 초심은 옳았던가. 궁금해진다. 세상만사 변하는 것이 답이고 이치라고 믿어왔다. 그러니 초심이 무슨 대수랴. 더 나은 길이 보이면 재빨리 올라타야 하고, 잘못된 것이 보이면 일단은 바로잡아야 하는 것, 그것이 소박한 순리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초심이라는 것이 그렇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말고 무슨 초심이 있었을까. 무슨 초심이 필요했을까. 무엇이, 무엇이, 초심이라고 고백하곤 했던 지난 20년 동안의 거짓에 관해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구한다. 나는 살아남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만한 능력도 철학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20년이 되는 해에 코로나19를 만났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게 귀엣말을 전한다. 그대가 정복한 지구를 상상해 보았는데 어쩐지 만화 같아 보여. 다시, 딱 20년에 코로나19를 만났다. 살아있는 것들은 살아있다고 말하지 마라. 죽어있는 것들이야말로 진정 고요하고 평화롭구나.
아직은 불을 때는 중이다. 군불이다. 아직은 눈보라 치고 바람이 매서운 겨울이다. 군불이라도 때야 식구들이 얼어 죽지 않을 것이다. 마을에서는 장작불도 피우고 마을 밖에서는 기름으로 전기로 더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집은 누추하게도 황토 바른 초가집이다. 아직 헐벗은 60년대이고 배가 고픈 70년대이다. 아무리 세월이 달음질을 쳐도 여기에서는 뒷걸음질이다. 세월을 따라 앞으로 내달리는 바람이여, 열심히 달려 보아라. 그대가 만나는 세상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으리라. 세상 어디에도 아무것도 없으므로 안 가봐도 훤하다. 앞으로 달려도 없고 뒤로 달려도 없으니 따지자면 마찬가지이지만.
아직은 불을 때는 중이어서 아직은 따땃하다. 아직은 살 만하다. 이 따땃한 가슴으로 20년을 녹인다. 앞으로의 20년도 앞으로 달리는 20년이 아니고 뒤로 달리는 20년일지 모른다. 자빠지는 자들이여, 아직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다시 일어설 수는 있다. 그러나 매서운 겨울이 아니어도 어차피 죽는다. 아무리 죽는 연습을 해도 죽음은 힘들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은 군불이나 때면서 따땃해 보자. 어디로 떠나지 말고 고향의 초가집 아궁이에서 가끔은 젖은 양말도 태우고 새까맣게 탄 누룽지도 깨물어 보자. 그것 말고 무슨 특별한 짓을 찾고 계시는가.
고명철, 엄경희, 이성혁, 강경희, 임영봉, 김남석, 강성률 문학평론가와 맹문재, 백인덕, 장이지 시인(이상 초기 편집위원), 그리고 황희순(초기 편집장), 박하리(이후 편집장) 시인 등이 초기의 리토피아에 숨을 불어 넣어준 분들이며 끝까지 리토피아를 지켜주고 있는 고마운 분들이다.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죄송할 따름이다. 강우식 선생님과 고인이 되신 이가림 선생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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