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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특집 창간 20주년, 《리토피아》가 걸어온 길/축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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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376회 작성일 23-01-1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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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호/특집 창간 20주년, 《리토피아》가 걸어온 길/축하의 글 



흐르는 물처럼


강우식 시인



최근 《리토피아》가 핸디해졌다. 오랫동안 고수해오던 국판에서 사륙판으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산뜻하다. 내가 문학에 입문했던 60년대에는 문학이 무슨 큰 돌덩어리를 진 것처럼 무겁고 심각한 풍조가 있었다. 그러나 문학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본다. 그 혁신을 창간 20주년을 맞이한 《리토피아》가 과감히 한 것이다. 시의 적절한 처사라고 본다. 문학이 억지로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심각한 체하던 전시대에서 벗어나 스피디하고 핸디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특히 문학지를 한 20여년 경영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풍토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견디어온 저력이 대단하다고 진실로 축하하고 싶다. 이제는 저력이 생겼으니 쉽게 무너지지 않고 연륜을 이어가리라 확신한다. 그 가운데서도 나는 매년 한국문학의 미래를 위해 유능한 젊은 시인들에게 주어지는 김구용시문학상을 통해 《리토피아》에서 이 땅의 좋은 시인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가 크다. 험한 산굽이 굽이를 돌아 바다에 이르는 흐르는 물처럼 그 발자국도 유연하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학지로 장수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참 좋은 문예지


문효치 시인



문예지는 우리 문학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대입니다. 문학인은 그 무대가 주어졌을 때 창작 의욕이 왕성해지고 그 나름의 문학 업적을 쌓을 수 있습니다. 

좋은 지면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좋은 지면이란 정말 의욕을 가진 문인을 밀어주는 지면, 흙 속의 보석처럼 묻혀있는 본인을 발굴하여 햇빛을 보게 하는 지면, 실력 있는 신인을 찾아 길을 열어주는 지면일 것입니다.

《리토피아》는 참 좋은 지면을 우리 문학계에 제공해 왔습니다. 《리토피아》를 통해 발표되어진 많은 작품들이 우리 문학을 유익하고 풍성하게 하는데 큰 몫을 해 왔습니다. 

이제 창간 20주년을 맞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치하의 말씀도 드립니다. 

문인이면 누구나 글을 싣고 싶어하는 문예지, 문학 독자면 누구나 읽고 싶어하는 문예지가 《리토피아》입니다.  

앞으로 20년, 200년, 더더욱 발전해 나가길 축원합니다. 꼭 그러리라 믿습니다. 





문학의 낙원, 리토피아의 꿈과 함께  


허형만 시인·목포대 명예교수



먼저 창간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리토피아》가 2020년 겨울호로 80호를 발간한다. 80호에 이르기까지 무려 20년이라는 긴 시간 속을 여행해온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물론 이 땅에 문학의 낙원을 건설하기 위한 꿈이다. 우리는 《리토피아》의 꿈을 함께 꾸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눈물겨운 일인가! 특히 《리토피아》는 사단법인 문화예술소통연구소를 중심으로 개인과 계층과 지역 간의 소통을 통해 창간사에서 다짐했던 ‘문화 각 장르 간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대화를 모색’하겠노라는 약속을 지켰다. 동시에 항상 독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호흡을 같이하면서 한국문학의 건강한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헌신해오고 있음도 우리는 잘 안다. 

이제 100호를 향해, 우리의 리토피아를 향해, 행복한 꿈을 꾸며 힘차게 나아가자. 





Litopia, 리토피아


김동호 시인



문학이 지향하는 유토피아를 향해 뚜벅뚜벅 소처럼 걸어온 《리토피아》 20년, 자랑스럽습니다. 엄한 자성과 활기찬 상상으로 새 출발의 바탕을 마련해주는 문학. 수면 아래 숨어있는 喜怒哀樂을 수면 위로 올리고 세상에 노출되지 않은 작은작은 꿈들까지도 가슴이 갈무리해서 전하는 문학. 문학이야말로 實存의 역사입니다. 때문에 시 소설 수필 희곡이 참다운 인생을 꿈꾸는 이들의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진솔과 성실이 문학의 가장 큰 무기임을 일깨워준 그간의 노고만으로도 《리토피아》는 충분히 찬사를 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20년 후엔 이제까지 키워온 힘이 모멘텀이 되어 literature-utopia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계속 健勝을 빕니다. 





더욱 향기롭고 풍성하게 발전하길


박찬선 시인



창간 스무 해 《리토피아》의 성년을 축하합니다. 나이 들수록 아름다워지는 나무처럼 연륜이 쌓일수록 든든해지는 《리토피아》. 처음 만났을 때는 이른 봄의 상추 맛같이 상큼했는데 이제는 묵은 묵나물 맛도 곁들여져서 더욱 입맛을 돋워 줍니다.

《리토피아》에는 가뭇없이 송구한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김구용 시인의 출생지인 이곳 상주에서 할 일을 《리토피아》에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관을 앞둔 ‘낙동강문학관’에 좁은 공간을 마련하여 선생님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했으나 미진한 일로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오랫동안 선생님의 문학제를 개최해오고 있는 큰일이 마냥 고맙고 경하할 일로서 자랑스럽습니다.

동양정신으로 구원의 세계를 추구하신 선생님의 문학세계가《리토피아》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이상적인 문학세계와 결코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줄기차게 탐구하신 ‘꿈의 이상’이 우리 문학이 담아야 할 양식일 테지요. 펜데믹의 시대, 정서 향유와 치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문학이 필요하고 시가 읽혀져야 할 것입니다. 그 중심에 《리토피아》가 있습니다. 더욱 향기롭고, 풍성하고, 줄기차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만유화락


백우선 시인



문학낙원을 뜻하는 《리토피아》의 창간 20돌을 축하합니다. 창간 준비 때부터 지금까지 발행인을 비롯해서 관련인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수고 많으시겠습니다.

책 이름을 생각하면 만유화락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사람이든 아니든, 생명이 있든 없든,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이 세상에 있는 모두가 서로 잘 어울려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말입니다. 코로나19도 어쩌면 영구동토층에 묻혀 잠을 잘 자고 있는 것을 사람에게서 비롯된 기후 현상이 깨워서 이렇게 온 세계를 어지럽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유의 즐거운 공생이 아름다운 낙원의 삶이며, 문학을 통해 이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이름에는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중심은 무엇인가의 희생을 당연시합니다. 난제이겠지만, 인간이 누려온 편리를 조금씩이라도 줄여서 비인간의 안락을 늘려주어야 모든 존재가 기후 재앙에 따른 죽음을 면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축하가 아니라 짐만 더 실어드린 듯하지만, 어쩌면 이 글에 안심한 코로나19가 좀 더 일찍 잠잠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년’이 된 《리토피아》, ‘문학의 낙원’ 건설하길 


권순긍 문학평론가·세명대 교수



문학 계간지 《리토피아》가 창간 20주년이 되었다. 계간지로 발행했으니 모두 80호의 엄청난 문학지의 금자탑을 쌓은 셈이다. 한 호도 거르지 않고 20년을 꾸준히 달려왔으니 대단히 축하할 만한 일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리토피아》의 발행이 중간에서 멈출 것 같았었다. 온갖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누가 옛날 방식의 문학지를 보겠는가. 더군다나 세상에는 눈을 현란하게 하는 새로운 매체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결국에는 재정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폐간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무수한 문학잡지들이 그런 전철을 밟아왔다. 10호를 넘긴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제 ‘문학의 시대’가 저물고 있으며 책을 내기 위해 필요한 재정의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토피아》는 그 모든 우려를 당당히 극복하고 이제 창간 20년을 맞게 되었다. 사람으로 치면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죽지 않고 살아남아 드디어 ‘성년’을 맞이한 것이다. 한 호의 두께가 대략 2cm 정도니 80호를 쌓으면 160cm가 된다. 책을 쌓아 사람의 키와 같다는 ‘등신대等身大’를 달성한 셈이다. 무슨 말로도 그 수고와 성과를 수식하기 어렵다.  

이 첨단 디지털 시대에 ‘문학지’라는 낡은 아날로그 방식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디지털의 방식은 ‘정보’의 처리와 분석은 뛰어나지만 그 정보에 대한 철학적, 감성적 판단은 쉽지 않다. 물론 그것 역시 ‘학습’을 통해 어느 정도는 도달할 수 있겠지만 문학의 섬세한 결과 무한한 상상력을 디지털 매체가 창조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디지털 시대에도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문학지의 존재가치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니 문학의 섬세한 감성과 상상력으로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것이야말로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리토피아》가 다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발 빠르게 당대 필요한 이슈를 잡아 이를 문학을 통해 현실화 시켰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양한 기획을 통해 문제를 던지고 해결하려는가 하면 중견작가들의 무게 있는 작품을 게재함은 물론 지역의 유망 작가들의 참신한 작품들을 발굴해 게재하기도 했다. 문학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제시한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리토피아》는 이제 성년이 되었고, 경인지역에서 유력한 계간지로 자리매김 하였다. 청년 《리토피아》가 건장한 장년으로 성장해 그 이름처럼 ‘문학Literature’의 ‘낙원Utopia’을 건설하길 기대해 본다. 부디 강건하길!





‘리토피아’ 향해 솟구친 순수 열정 20년! 


김완하 시인·《시와정신》 주간 



이 지상에 세우는 빛의 사원 있다면 그것은 필시 언어로 쌓아올린 탑일 것. 하여 굳게 품어온 꿈이 맺혀 《리토피아》로 영글었다. ‘자생적 담론으로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계간 문예지’. 새 천년의 첫 발길에 내어 건 슬로건 깃발을 삼고, 이 땅에 꽃피우려 했던 지상紙上, 誌上낙원. 《리토피아》 향해 솟구친 그 순수와 열정 20년. 그건 출발부터 이미 이뤄진 유토피아였다. 그 20년 더 큰 미래로 나아가 60년, 100년으로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다. 뉴 밀레니엄을 넘어오는 동안 새 천년 향한 첫 마음을 잊었던 순간도 있다.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니라며 주저앉아버린 때도 많았다. 그러나 여기 초지일관 이 땅에 세우려는 《리토피아》.

육로와 해로 그리고 항로로 통하는 세계의 관문 인천에서. 《리토피아》, 더 먼 미래를 미리 앞당겨 펼치며 힘차게 밀고 가는 거대한 항모航母. 이제 문학의 허브에 깊은 닻을 내렸다. 《리토피아》는 한국문학의 중심에 우뚝 선 기둥. 울창한 나무숲으로 자라나 그 그늘 안에 온 세상을 품고 꿈과 희망으로 사랑의 빛 화살을 쏘아 올린다. 





신작로처럼 걸어가라


김유석 시인



가을 들길을 걷노라면 생각이 가지런해진다. 톡 톡 터져 발등을 어루는 풀씨들과 투명한 햇빛 모세혈관들, 알싸하게 코끝을 훔치는 들바람만으로 아슴한 지평까지 걸음을 끌 수 있다. 저만치 앞을 손차양해도 좋고 싸목싸목 기억을 안동해도 무방한 이 길은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그저 자연하게 사람과 사람의 마을을 뿌리처럼 땋는다.

어떤 길이 그와 같아서,

《리토피아》의 20년을 넌지시 짚어본다. 처음 길을 놓을 땐 무른 흙살에 잡초도 무성했으리라. 버거운 수레바퀴 자국이 얹히고 먼지도 폴폴 날렸겠다. 단단한 바닥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발바닥이 닳고 닳았을지. 

누군가의 생각을 물고 일개미처럼 바지런히 행렬 짓는 활자들을 쫓으며, 여기서 다시 유장할 《리토피아》를 생각한다. 어떤 길은 항상 ‘신작로’라 불리기도 한다는 사실이 새롭다.





#생각의 최종 저장고는 ‘책’이다 


김인자 시인



오전엔 일주일이나 잡고 있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고 오후엔 자작 숲과 바람부리 길을 걸었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읽어야 할 책이 쌓여있고 모니터에는 쓰다만 한글원고가 그대로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나처럼 쓰는 이가 있다는 것은 독자가 있다는 말이고, 달리 말해 그것은 곧 책을 만드는 이가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지식과 경험을 총망라한 생각의 최종 저장고가 책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살다보면 하루가 십년처럼 긴 날이 있고 십년도 하루처럼 짧게 느껴질 때가 있다. 며칠 시골에 머물다 귀가하던 날, 우편함에는 판형이 바뀐 《리토피아》 가을호가 도착해 있었다. 겉봉을 뜯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통권 79호, 내 입에서 자동 분사되는 단어는 ‘아니 벌써!’ 다. 계간지 한 권이 독자의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수고로 치자면 만들어본 사람만 아는 절대 노동일 텐데 그 일을 80회나 지속해 온 《리토피아》의 뚝심과 외고집은 어디서 발원한 걸까. 모르긴 해도 더러는 얼마나 버티나 보자는 심사로 뒤에 숨어 통권을 세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비난의 화살을 쏠 때도 또 누군가는 애정 어린 격려로 끝까지 《리토피아》 편이 되고자했을 테니, 안다.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문학의 낙원,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계간 《리토피아》’ 통권 80호, 그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각별한 마음으로 축하를 드린다. 





통권 제 80호로 창간 20주년을 맞음에


김현숙 소설가



실로 감회가 깊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성인이라 할 20세 약관의 나이. 문예지 발간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엄청난 적자사업임을 감안할 때, 무려 20년간 잡지를 발행해 왔음은 여간한 근기와 강단 없인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기에 뜨거운 격려의 갈채를 보냅니다. 

문학literature과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인 리토피아litopia. 그것의 의미란 ‘문학을 통해 현실의 온갖 금기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꿈꾸기를 실천하고자 한다’ 는 창간사 서두가 더없이 마음에 들어 좀 낯선(?)잡지이긴 했으나 선뜻 청탁에 응하였고, 그를 계기로 2019년 봄호부터 2020년 겨울호까지 총 8회에 걸쳐 장편, 『흐린 강 저편』을 연재하게 된 것입니다.

귀한 지면 내어주신 장종권 주간님과 박하리 편집장님께 새삼 깊은 감사의 맘 전합니다. 

이제 창간 20주년을 넘어, 창간 30주년, 40주년까지 계속 번성해 갈 《리토피아》를 꿈꾸며 끝으로 조언 한마디 보태고자 합니다.

문학을 한다는 일은 너무도 춥고 외롭고 쓸쓸한 일입니다.

리토피아가 그들 문학인들을 위해 부디 따스하고 아늑한, 그리고 넉넉한 문학 공간으로 길이길이 이어지길 기대하며 축하의 마음 대신합니다.

경축, 창간 20주년!!! 리토피아, 화이링~~~!!!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변종태 시인·《다층》 주간



당신은 왜 시를 쓰는가, 왜 문학을 하는가, 왜 당신은 활자에 매달려 어둠을 찍어 흰 종이를 채워나가는 것일까. ‘돈’도 안되는 세상에, 한 끼 밥값 정도밖에 안 되는 시집 한 권에 애면글면하는 걸까. 온갖 회의를 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빈칸을 채워가는 문인들을 생각하면 정말 왜 이러나 싶은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벅찬데, 수많은 문예지는 아직도 발간되고 때가 되면 우리 품에 와서 안기는 걸까. 운영자들은 왜 꾸준하게 문예지를 발간하고 있는 걸까? 끊임없는 의문과 회의가 거품처럼 끓어오름에도 불구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편집실에 앉아 머리를 쥐어박고 있다.

지난 계절의 문을 닫고, 새 계절의 문을 여는 순간에도 이러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리토피아》 창간 20주년 청탁이란다. 질문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다른 질문의 모든 문장은 사라지고 한 글자만 남는다. “왜?” 하지만 이 질문과 회의는 유보하기로 한다. 언제까지? 우리들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문학의 유토피아를 지향한다는 의미인 ‘리토피아’. 어쩌면 이 제호에 질문의 답이 있지 않을까 싶다. 문학의 유토피아가 완성되는 날까지 우리는 밤마다 활자 귀신에 쫓길망정 키보드를 두드릴 것이고, 그 결과물을 실어나르는 수레의 바퀴를 끼울 것이다. 나아가 기업의 대표거나 국회의원이니 정치인이니 하는 이들보다 시인이나 작가가 존중받는 사회가 올 때까지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리토피아》도 그 고집의 길을 꾸준히 걸으리라. 그 길을 함께 가리라.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박완호 시인



문학이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 외로운 길을 묵묵히 걸어온 《리토피아》의 창간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창간호를 손에 받아든 게 얼마 전의 일 같은데 어느덧 이십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 여든 번째 잡지를 만나게 되었군요. 수많은 문학지가 창간, 폐간을 거듭하는 현실 속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도 초심을 잃지 않고 《리토피아》의 오늘이 가능하도록 애쓰신 장종권 주간께도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가을호(79호)부터는 책의 크기와 편집 내용도 세련된 형태로 바뀌어, 성년이 된 《리토피아》가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리토피아》를 통해 많은 사람이 좋은 시를 만나고, 시와의 마주침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가치 있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시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저 또한, 《리토피아》가 더 좋은 잡지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창간 20주년을 거듭 축하드리며.  





불멸하라 리토피아


김왕노 시인·《시와 경계》 주간



《리토피아》는 내 문학의 동행이자 내게서 빼놓을 수 없는 문학의 족적이 남아 있는 모지와 같은 튼튼한 문학지다. 《리토피아》를 통해 발표한 시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회자되므로 내 시가 각광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발표한 리얼한 TV (2014년 리토피아 여름호)에 나타난 세상처럼 《리토피아》는 참 리얼하게 발전해 왔다. 《리토피아》 살림살이와 《리토피아》 식구의 면면을 알고 있는 나는 《리토피아》의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장종권 시인의 리드와 박하리 시인의 정성을 필두로 《리토피아》가 우보천리 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급성장이 아니라 한 발 한 발 점진적으로 걸어왔기에 내구력이 생기고 무너지지 않는 전통이 세워졌다. 아울러 문단에서 늘 정중동을 지키며 《리토피아》의 초심을 지켜왔기에  20년 발전을 거듭 축하하고 잡지 20년이란 문학사에서는 장구한 세월이다. 근근이 이어오다가 사라지거나 불미에 휩싸인 출판사가 생기는 판국에 건전한 《리토피아》가 나와 함께 호흡하며 영원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강경호 시인·《시와사람》 주간



‘벌써’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20년 세월 함께 해온 동역자이자 동지라는 말이 알맞겠다. 그 동안 신난고난한 일들 말하지 않아도 나는 다 안다. 어쩌면 서로 떨어져 있을 뿐 어떻게 살아왔는지 훤하다.《리토피아》 창간 20주년을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환영한다.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 문학을 아우러온 《리토피아》는 이제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요한 문예지로 성장했다.

문예지를 창간했을 때 문예지 발행인 및 주간으로 산다는 일이 이처럼 험난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누구인들 문예지를 창간했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어디론가로 도망갈 수도 없고 고난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장종권 주간님을 포함한 《리토피아》 가족의 처지가 안타깝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리토피아》 가족들의 용기가 아름답다.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문학사는 문예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예지는 문학관리자로서 한국문학을 견인해 왔다. 특히 《리토피아》는 창간 때부터 로칼리즘과 《리토피아》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우리 문학사에 힘을 보태왔음을 모두가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창간 20주년을 성대한 잔치라도 베풀어도 좋을 텐데, 세상이 너무나 흉흉하고 수상해 따스한 마음만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금껏 해왔듯 앞으로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우리 문학사의 결핍에 늘 힘이 되기를 바라며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시의 낙원을 위한 20년


윤의섭 시인·대전대 교수



시인의 시와 시인의 정신이 집결되는 가장 전위에 위치한 문예지가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발간되는 경이로운 사건은 마땅히 축하받을 일이다. 문예지의 존속이 발행인의 열의와 의지만으로는 수월하지 않다는 것을 얼마나 많이 목격해왔는가. 문예지 존속에 대한 저해 요인은 경제 논리가 우선인 듯하나 도덕적 해이도 만만찮은 요인이다. 이런 가운데 작품성과 기획력, 그리고 필진의 높은 수준과 의식을 고루 갖춰 문예지를 매 계절마다 꾸리는 일은 긴장의 연속이며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는 고투의 작업이라는 것을 잘 안다.

《리토피아》는 20년 동안 초심을 유지하며 오늘도 시의 낙원을 밝히는 불씨를 피워내고 있다. 탄탄한 기획으로 시사에서 주목할 만한 비평을 실어왔고 전국의 시인을 고루 필진으로 초대 했으며 유수한 신인을 발굴해 왔다. 문학제와 시노래 공연 등을 통해 외연을 확장했고 시인과 독자를 향한 소통의 길을 활짝 열어놓았다. 과거의 애쓴 흔적에는 미래의 풍요로운 지평이 이미 펼쳐져 있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흔히 예견이라고 한다. 《리토피아》를 보며 우리는 모두 예견자가 된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더 예견할 수 있을까라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리토피아》는 창간 20주년을 주파하고 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리토피아 창간 20주년에 즈음하여


손현숙 시인



그때, 잡지를 만들겠노라 말씀하시던 장종권 선생님은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창간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가 20년 전이니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잡지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잡지는 모두 서울에서만 창간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던 때였다. 그런 고정관념으로 중무장이 되어있던 때, 장종권 선생님은 인천에서 《리토피아》를 처음 출항시킨 것이다. 저 배가 순항을 할 수 있을까. 《리토피아》는 그렇게 염려와 경이로움 속에서 시작을 했다. 나는 그 후 잡지의 한 꼭지 「손현숙의 아트엔 아티스트」를 맡아서 40회를 넘게 연재를 하고 있다. 손으로 꼽아보니 십 년이 넘어갔다. 그런 중에 내가 선생님을 만나 점심을 한 것은 딱 한 차례. 사무실을 방문한 것도 단 한 번뿐이다. 이 한 장면으로 《리토피아》는 설명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는 그냥 사람을 믿는다. 그것을 의리라고 해도 좋고. 넉넉한 인품이라 해도 괜찮다. 그런 고품격으로 오늘, 《리토피아》는 20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다시 앞으로의 20년을 기약하면서 무조건 《리토피아》의 건승을 빈다.  





《리토피아》의 자기운명, 그 경이로움 


고명철 문학평론가·광운대 교수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종합문예계간지를 표방한 《리토피아》 창간호가 놓여 있다. 나는 《리토피아》의 편집위원 중 한 명으로서 창간호부터 대략 10여 년 《리토피아》와 운명을 함께 해왔다. 창간호를 발간한 시기가 말해주듯, 2001년 봄은 새 천년을 향한 설렘과 기대로 한국사회 안팎은 한껏 새로운 기운으로 충만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떤 것을 새롭게 시작할 때 패기뿐만 아니라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사적인 고백을 하자면, 그 당시 나는 문단에 나온 지 불과 3년 정도밖에 안 된, 신인의 꼬리표를 떼지 못한 햇병아리 비평가로서 종합문예계간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물론, 비평가로서 첫 발을 떼자마자 동료 비평가들과 함께 비평동인지 《비평과 전망》의 편집위원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예지의 생리에 전혀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평동인지와 종합문예계간지는 그 성격이 여러 면에서 다른데, 특히 문학의 모든 장르에 걸쳐 원로부터 중진 및 신예에 이르는 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나로서는 선뜻 편집위원 활동을 펼치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기어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시인 장종권 주간의 격려와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장종권 주간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신인 비평가로서 이렇다할 비평적 인지도가 없는 내게 《리토피아》 계간지를 힘차게 끌고나가자는 패기와 용기를 보여주었다. 한국문학사에 숱한 문예지가 명멸해갔고, 그 중에는 흔적도 없이 소멸해간 문예지가 얼마나 많던가. 무엇보다 문예지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각종 부정적인 것을 양산하는 모습을 목도해온 나로서는 그만큼 문예지가 수행해야 할 일들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장종권 주간의 패기와 용기는 기존 문예지의 낡고 구태의연한 부정적인 것을 쇄신하는 어떤 갱신의 문화운동을 실천하는 동력 그 이상이었다. 이것은 창간호의 표지 사진으로 김구용 시인을 선택했고, 이후 《리토피아》는 김구용 시인의 시정신을 창조적으로 섭취하기 위한 실질적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왔다. 한국 전후 시인의 돌올한 경지를 이룬 김구용 시인 특유의 시적 갱신은 장종권 주간이 《리토피아》를 어떤 방향으로, 어떤 모습으로, 문예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흔히들 얘기한다. 코로나 이전과 똑같은 사회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고. 그렇다면,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야 할 우리에게 문학은, 그리고 문예지는 어떤 자기운명을 살아야 할까. 《리토피아》 창간호 표지 사진에 나온 김구용 시인은 묵언의 문학적 전언을 타전하고 있다. 문학과 《리토피아》는 요란법석을 떨 필요가 없다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우직하게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경이로움을 성찰하는 언어를 경청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의 난경과 더불어 자기운명을 겸허히 살아가는 《리토피아》의 경이로움이리라.





열린 지향으로서의 잡지


우대식 시인



《리토피아》 창간 20주년. 참 시간이 빠르기도 하다. 문학잡지가 20년을 이어오는 일이 쉽지 않았으리라 막연히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그 실제를 주관해온 장종권 시인의 악전고투가 있었으리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만한 일이다. 어쩌면 최근의 20년은 문학의 위기를 최정점으로 체감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잡지 운영의 어려움을 집작할 법도 하다. 그러한 가운데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문인들에게 발표의 장을 마련해주고 토론의 장을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리토피아》에 느끼고 있다. 

시의 분열화와 파편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을 줄 아나 어쩌면 시인의 가장 적합한 자리는 이처럼 외지고 변경의 그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동양시학으로서 안분지족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시인의 위상이 대사회적인 어떤 것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소외되어 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소외를 절실하게 받아들이는 자세야말로 시인의 마땅함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떨칠 수 없다. 그러한 의미로서 이 시대의 섹트주의나 분파주의는 촌스럽기까지 하다. 

그동안 《리토피아》의 열린 지향을 눈여겨보았다. 외적 수사나 포장에 귀 기울일 필요 없이 앞으로도 열린 장으로서 더 오래 더 멀리 가기를 기원 드린다. 쓸쓸한 문인들의 손을 잡고.   





20주년을 맞이하여


엄경희 문학평론가·숭실대 교수 



문예지를 결호 없이 20년 동안 지속해왔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입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견뎌내며 창간 20주년을 맞이한 《리토피아》의 견고한 문학정신에 감동하며 찬사를 보냅니다. 지금의 토대가 미래를 이끌어갈 저력이라 확신하며 거듭 축하를 드립니다. 





《리토피아》창간 20주년 축하의 말 


남태식 시인



《리토피아》창간 20년이라고 하니 이 20년은 나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내게 있어 내 습작기 20년의 끝과 등단에서부터 시작된 이 20년은 등단 작가로서 살아온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시간이기도 하고, 하니 이 20년은 달리 말하면 장종권 주간과 나와의 20년이라고 할 수도 있다. 2000년 봄에 장 주간으로부터 등단 관련 전화를 받는 것으로 이 20년은 시작되는데, 원고 재송부를 요청하는 전화였다. 이 첫 통화를 시작으로 몇 번의 전화가 더 있고 나서 나는 그해 《세기문학》여름호로 등단하였고, 등단 후에도 여러 번 더 통화했으나 만남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장 주간의 청탁으로 등단한 그해 등단지 겨울호에 등단 후 처음으로 작품이 실렸고, 이후 재발간을 못 해 결국 폐간하게 된 등단지의 휴간 소식을 들었고, 《리토피아》 창간호를 받았다. 첫 만남은 첫 통화 이후 1년 반쯤 지난 2001년 초겨울에처음으로 내가 먼저 전화를 해서 이루어졌다. 그때의 만남이 실체로서의 《리토피아》와의 관계의 시작이었고, 그날 그 자리에서 나는 같이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2002년에 《리토피아》에서 첫 시집을 출간하고, 2003년에 재등단을 했다. 장 주간의 은근한 권유에 따른 출간이었고, 장 주간의 미안함에서 결정한 재등단이었는데, 가타부타하지 않고 이끄는 대로 갔다. 이후에도 계속하여 《리토피아》에서 3권의 시집을 더 출간했고, 《리토피아》에서 하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쭉 함께 해왔으니, 내 등단 작가로서의 20년은 곧 《리토피아》와의 20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소설을 공부하다가 20대 초반부터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어떤 연유로 등단을 포기했다. 포기할 때는 등단하지 않고도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정신으로 시를 쓰고 활동하겠다고 작정을 했었는데, 책임감이 따르지 않아서였던가, 글쓰기는 때때로 미루어져 쓰다 말다, 쓰다 말다, 하였다. 보다 못한 문학동인 선배의 도움으로 등단이라는 것을 하기는 했으나, 등단하고 나서도 이 버릇은 쉬 고쳐지지 않아 역시 쓰다 말다, 쓰다 말다, 하였다. 직업의 특성상 전보가 잦은 편이었고, 임지를 변경할 때마다 시 쓰기의 변동을 겪었는데, 활력을 얻기보다는 잃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럴 때마다 계속 독려하고 다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이가 옆에 있지 않았더라면 천성이 게으른 나 같은 작가가 지금까지 버텨오는 것이 어려웠으리라. 《리토피아》 20주년 축하의 말을 청탁받고 20년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추억에 젖어 원고 마감일이 가깝도록 차일피일 쓰기를 미루고 있는데, 문득 떠 오르는 한 생각이, 축하의 말보다 감사의 인사를 먼저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해서 먼저 감사 인사부터 드린다. “이렇게 제가 지금까지 버텨 올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신 장종권 주간님, 여러 선생님들, 함께 한 《리토피아》의 식구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절.” 장종권 주간님, 처음 만났을 때 10년만,이라고 했었던가요. 10주년을 맞았을 때 새로운 계획을 밝히면서 5년만 더, 라고 하고, 15주년 때 또 5년만 더, 라고 했던가요. 이제는 기한 정하지 말고 창간할 때의 정신 그대로 그냥 쭉 밀고 갑시다. 가는 데까지 저도 쭉 함께 가겠습니다. “《리토피아》창간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자생적 담론으로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종합문예계간지 《리토피아》


김동윤 평론가·제주대 교수 



‘자생적 담론으로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종합문예계간지’를 내건 《리토피아》가 출범하기 직전의 겨울. 아직 30대 중반이던 나는 「1950년대 신문소설 연구」로 학위를 받고서 숨 고르기를 하면서 비평가로서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어쭙잖은 평문을 몇 편 쓰고 제주작가회의의 말단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긴 했지만 등단 절차를 밟지는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동향의 비평가로서 각광받던 고명철로부터 새로 창간하는 문예지에 대중문학과 관련된 특집 원고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거절하기 어려웠다. 나름 열심히 써 보낸 글이 「문학의 권위와 위기, 그리고 대중문학 현상」이었다. 얼마 후 다른 곳에서 원고청탁을 받고는 약력에 《리토피아》 창간호를 통해 본격적인 평론활동을 시작했다고 적었다. 나중에 그걸 알게 된 장종권 주간이 ‘리토피아 새 얼굴’ 축하패를 만들어 줬다. 그렇게 좀 이상한 경로로 나는 《리토피아》가 배출한 첫 신인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사실 첫 ‘신인상’을 받은 분은 따로 있다.). 그 후 두 권의 저서도 ‘리토피아 신서’로 나왔다. 이제 《리토피아》가 창간 20주년을 맞게 된다니 고향집에 큰 경사가 난 것처럼 기쁘기 그지없다. 앞으로 30주년은 물론 100년을 넘어서면서 굴지의 문예지로 성장해 나가길 축원한다. 





《리토피아》 20주년을 축하합니다 


장이지 시인·제주대 교수



문예지를 하다 보면 사건·사고가 많기 마련이고, 부침도 잦아서 이즈음에는 생겼다가 금세 사라지고 잊히는 잡지도 많이 보게 되는데, 《리토피아》가 20년이 되었다니 놀랍고 고마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간에 결호도 없었던 것 같은데, 장종권 주간님의 고집과 뚝심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구용시문학상을 만들어 운영한 일이 그 중 기억에 남습니다. 주간님이 의리의 사나이여서 김구용 선생님의 뜻을 잘 이어받아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저는 그런 식으로 믿어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단양·제천 여행을 리토피아문학회 회원들과 떠난 기억도 납니다. 기본적으로는 모두 후덕한 형제자매들이어서 싸우면서도 정을 들여온 식구들이라고 여겨집니다. 앞으로 더 안으로 돈독해지고, 밖으로 승승장구하는 《리토피아》와 ‘리토피아문학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력으로 될 일인지 모르지만, 3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가 또 있으면 좋겠고, 그때는 더 좋은 축사를 쓸 수 있길 속으로 바라봅니다 





《리토피아》의 창간 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김용균 시인·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리토피아》의 창간 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우리 시문학 관련 출판문화계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 리토피아가 시전문 계간지로서 꿋꿋이 성장해 성년을 맞이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기적을 일구신 장종권 시인과 리토피아 가족들에게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요즘 시를 읽는 독자가 시를 쓰는 시인보다도 더 적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시집은 도무지 팔리지 않고, 심지어 600여 개의 직업 중에서 시인의 소득수준이 가장 낮다는 통계까지 보았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말처럼, 시인은 모름지기 “인간의 본성을 지키는 바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우리 삶의 질을 좌우하는 정치 현실은 서로 헐뜯고 상처를 주는 정쟁만을 일삼고, 자본경제사회는 승자독식을 향한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점거해버린 인터넷 세계에는 온갖 상스러운 말들이 난무합니다. 게다가 우리 생활을 지배하는 기후 현상도 전에 없이 거칠기만 합니다. 그러니 현대인들의 성정性情이 점점 피폐해질 수밖에요. 모두가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이 메말라가는 까닭일 것입니다. 이런 심성을 치유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 바로 시가 아닐까요? 어느 때보다도 시인의 역할이 절실한 때라고 여겨집니다.

20C 최고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이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인도의 타고르를 상찬하는 글에서 “이제껏 인간이 성취하고 창조한 모든 것의 뿌리는 시와 사랑의 강 속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리토피아》가 앞으로 더욱 발전하면서 좋은 시인들을 많이 발굴하고 모든 사람이 시를 즐겨 읽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주시길 소망합니다. 모쪼록 이 땅에 ‘시와 사랑의 강물’이 넘쳐흐르게 하는 《리토피아》의 귀한 역할을 기대해봅니다.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들…… 


유시연 소설가



《리토피아》를 만나기 전, 그 잡지가 나에게 각인된 기억이다. 지나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주옥같은 시와 단편들, 평론, 단상이 실려 있음을 보게 된다. 문학예술이 커가기에는 녹록치 않은 환경에서 《리토피아》는 이제 허리가 튼실한 나무로 성장했다. 문학의 씨앗이 뿌려지고 발아하고 여린 잎이 풍상을 견디며 자라기까지 거름을 주고 물을 흠뻑 주며 키워낸 장종권 주간의 땀과 노고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더 넓은 가지를 펼치고 너른 자리를 만들어가는 계간지 《리토피아》의 그늘 아래에 시인 작가 예술인들이 돗자리를 펴고 쉬어가며 거대담론을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리토피아》 창간 20주년에  


이채민 시인·《미네르바》 주간 



문학이라는 작지 않은 동네에서

배고픈 길을 20년 묵묵히 지나오셨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열정과 향기로운 지성의 내음이 

언제나 가득했지요.


잡지의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앞으로의 20년에 

힘찬 응원의 박수 보내드립니다.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오르듯 

더욱 꿋꿋하시길 기원드리며


진심을 다하여 축하드립니다.





깔아준 멍석이 크고 넓다


안성덕 시인



세상이 미쳤다. 내가 나를 모르고, 네가 너를 모른다. 아폴론 델포이 신전에 새겨져 있었다는 “너 자신을 알라”를 까맣게 잊고 산 지 오래다.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나훈아가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물어도 아무도 답해 주지 못한다. 세상이 끊겼다. 통하고 흐르던 것이 통하지 못하고 흐르지 못하니 썩을 수밖에 없다. 고이고 고여 임계점을 넘으니 둑이 터질 수밖에 없다. 갑갑해 죽을 지경이다. 


끊어진 세상과 세상, 사람과 사람을 문학이 이어줄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이 독자의 곁에서 이반 되는 현실을 냉철히 응시하고, 독자의 곁에서 호흡을 같이하는 문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딜 것이다.”라고 다짐하며 태동한 《리토피아》가 20주년을 맞았다. 성년, 명실공히 온전한 개체로 성장했다. 권리보다는 책무가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처음의 각오로 능히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뚜벅뚜벅 앞을 향해 나아가리라 믿는다. 《리토피아》는 그간 문학의 유명작가와 지역 편중화 타파에도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마음껏 놀아보라! 깔아준 멍석이 크고 넓다. 그 멍석에서의 한바탕 신명이, 미친 세상 끊긴 세상의 통로가 될 것이다. 결단코 임계점을 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지나온 길에 박수를, 가야 할 길에 격려를 보낸다.   





창간 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천선자 시인



《리토피아》 창간 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요즈음은 일상의 모든 일들이 코로나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장종권 주간님을 중심으로 하여 막비시동인과 리토피아문학회 회원들이 힘을 합하여  《리토피아》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리토피아》는 앞으로 30주년, 50주년, 100주년, 끝없이 발전하면서 문학인들의 놀이마당을 만들어 주리라 믿습니다. 장종권 선생님, 박하리 편집장님, 그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리토피아》여, 영원하라. 





꿈을 찾는 문학인들의 빛이 되시길


정미소 시인



《리토피아》 창간 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사업성도 없는 문예지의 길을 20년이나 걸어오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인천은 우리나라 근대 문물이 가장 먼저 닿은 곳입니다. 토박이가 아닌 장종권 주간께서는 숭의동 이슥한 포구에 닻을 내리고 힘든 항해를 시작하였습니다. 시를 향한 열정에 불타올라 많은 문학인들의 길잡이가 되어 풍랑을 헤쳐왔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상어 떼의 습격보다 더 큰 외로움을 견뎌왔습니다. 우직한 성품처럼 《리토피아》라는 목선은 거대한 배가 아니었습니다. 발동기 달고 밧줄 구비하고 돛폭 올려 길 없는 항해를 시작하였습니다. 

가끔 사석에서 “창간에 도움 주신 지인들을 잊을 수가 없다.”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일부 잡지는 문단의 권력이 되어 돈벌이 수단으로 여긴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장종권 주간은 순수한 문학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길 없는 바다를 노 저어 거친 항해에서 돌아온 헤밍웨이의 난파선처럼, 고독한 여정임에도 많은 시인을 배출한 《리토피아》의 역량에 무한 감동과 신뢰를 보냅니다. 

부디 지치지 마시고 남은 항해에도 꿈을 잃지 않는 빛과 길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리토피아》, 고맙고 감사하고…… 


허문태 시인



나는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했다. 그때가 60세였다. 늦깎이 등단, 너무 늦은 늦깎이 등단이었다. 그리고 그때 간암 투병 중이었다. 몇 번의 수술은 생의 연착륙을 서두르고 있었다. 30대 초반까지 동인지 활동을 하며 문학에 열정을 쏟다 생활의 파고에 휩쓸려 멀리 떠내려갔다. 시에 대한 그리움은 한시도 나를 떠난 적이 없었다. 생의 연착륙을 생각하며 시에 대한 애틋함이 간절할 때 《리토피아》는 내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마음대로 원 없이 놀아 보라고 자리를 내어 주었다.

직관이 부족하고 감각이 떨어져 힘들었지만 한 편 한 편 시를 쓸 때마다 생명수를 마시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깨어났다. 그 동안 2권의 시집을 발간했고, 간암은 어느 덧 원상으로 회복되어간다. 고맙고 감사한 《리토피아》가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마음을 다해 축하한다. 

척박한 땅인지 알면서 그 땅에 《리토피아》라는 씨앗을 심고 단단하고, 건강하게 성장시킨 장종권 주간에게 경의를 표한다. 앞으로 새로운 지평을 기대한다.  





창간 20주년을 축하하며


김영진 시인



창간 20주년을 맞이하여 감격스럽습니다. 장장 20년 동안 《리토피아》에 생명의 피를 공급하여 스무 살 청춘의 꽃으로 피게 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보살펴 키워오신 장종권 주간님께 먼저 축하를 드립니다. 

《리토피아》는 게재된 작품의 질감이 매우 풍부하여 첫 페이지를 열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중독성이 강한 문예지입니다. 보편성으로 무장한 목소리를 담아내면서, 상실과 침묵의 시대에 헤매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으로 평가가 됩니다. 사람과 사회와 자연과 소통하는 《리토피아》를 사랑합니다.

사무사思無邪 의 정신이었을까요. 20년을 끈질기게 이끌어온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어려움이 많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것은 주간님의 뜨겁고 강한 도전정신의 결실이라 믿습니다.

창간 20주년을 다시 한 번 축하 드립니다. 동시에 생과 사가 부질없이 일어나는 대중문학의 홍수 속에서 초심을 잃지 않고 치열한 문학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장종권 주간님께 다시금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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