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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특집 제7회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다층|김상숙·수상작 염병이라는 사원 외 1편 /신작 추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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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특집 제7회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다층|김상숙·수상작 염병이라는 사원 외 1편 /신작 추어탕
김상숙
다층─수상작
염병이라는 사원 외 1편
눈만 뜨면
그 사내가 기르는
무수한 말의 열꽃
발에 차이는 깡통,
코 질질 풀리는 모자 같은
바느질하다 밤에 찔린 손톱 밑
스톱워치 같은
노화된 트럼프의 반복된
하지정맥류 같은
한겨울 내 빨랫줄에 매달린
꽁꽁 언 그네 같은
루비 사파이어 청금 홍옥
타지마할 대리석 묘궁에 새긴
코란의 경구 같은
제 눈 찔러대다 행간에 옮겨붙은
신종 바이러스 숨구멍 같은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
혼자 쉬어가는
애절한 창법 같은
…… 염병할
불러 봐도 없는
새벽 두 시가 범람한다
빗방울이 방울에 목숨 붙이고 있는 시간
내 한 덩치가 바닥에 붙었다 떨어져
가장 왜소해지는 시간
새벽이 심드렁하거나 말거나
한 시는 있었고
세 시도 곧 당도할 터인데
방금은 두 시일까 아닐까
두 시라고 말할 때 진열장 안
불뚝불뚝 온갖 근육 뽐내는 사내를
주홍입술에 엉덩이를 흔들며 월담하는
장미의 교태를 두 시라 부른다
여름에도 부르르 떨고 있는
옥탑방 월세의 압박을 두 시라 부르고
붉은 포도주와 스테이크를
레이어로 주문한 피 묻은 포크를
불러낸 불금을 두 시라 부른다
불곰, 하면 지체 없이 가벼워져 달려오는
남편을 두 시라 부르고
까만 새벽 두 시에 없는 너를
두 시라 부른다
신작
추어탕
푸르고 싱싱했던 지느러미
잃고 나니 겁도 슬그머니
숨구멍 안쪽으로
속도와 방향이 멈춰있다
비밀스레 내통하고
위장술에 능통했던
길이 내려앉았다
뜨거웠던 시절 다 지나가고
피죽처럼 허공으로 내몰린 生이
한 사발 국물로 사라진다
매몰된 生이 내 뱃속을 불린다
오늘은 경건한 진흙의 말씀
붉은 물결을 이룬다
여름이 부글부글 졸아든다
심사평
이미지와 의미를 맛깔스레 버무린 시
제7회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후보로는 ‘다층문학동인’ 전체의 지난 1년간 발표 작품 전체를 대상으로 하였다. 동인들의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지난 해 동인들이 워낙 왕성한 창작과 발표를 한 결과, 시집을 발간한 시인이 10명, 누적된 작품이 300여 편에 이른다. 그 중에 왕성한 활동을 한 동인과 그들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1차 심사를 하고 우수작품 선정에 들어갔다.
그 결과 김상숙 시인의 「염병이라는 사원」(《다층》 2019년 겨울호) 「불러 봐도 없는」(《시와소금》 2019년 가을호) 2편을 우수작품으로 선정하는 데 최종 합의하였다. 해마다 선정하는 우수작품상이고, 이미 문예지에 발표되어 독자들에게 검증을 받은 작품들이기에 누구의 작품이 좋으냐보다는, 선정하는 사람들이 동의하는 작품 쪽을 선정하기로 하였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좋은 작품 쪽으로 기울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수상작으로 선정한 「염병이라는 사원」과 「불러 봐도 없는」은 시적 완성도나 작품성에 있어서 수작이었다. 전자는 제목만 봤을 때는 요즘 팬데믹 증상을 보이는 코로나19에 관한 시일까 싶지만 실상은 진지함에 대한 극적인 반전을 노래하고 있다. ‘~같은’이라는 연마다의 병치는 무언가 진지한 고민과 사유를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마지막에 터뜨린 ‘염병할’이라는 한 마디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진지함과 엄숙주의 뒤통수를 통쾌하게 가격한다. 후자는 부재의 대상에 대한 새로운 명명으로 이미지와 의미를 맛깔스레 버무린 시라고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발표한 모든 작품이 고른 질과 함량들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김상숙 시인을 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수상자로 선정하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김효선, 반연희, 변종태, 임재정
수상소감
통성기도 하듯 써가는 詩
언제부턴가 쫓기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감각을 놓치지 않고 시를 붙잡으려고 애를 쓰는 중이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다 보니 게으르게 되고, 시간이나 상황에 끌려다니지 말자던 다짐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쓰지 않으면 아득히 멀어지게 될 것만 같고, 써야만 한다는 고통을 지팡이 삼아 나를 분해하고 해체하고 착각하게 만드는 이 부질없음이 고맙다.
제7회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수상이라니 어색하고 송구스럽다. 따끔따끔 지적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함께 읽어주는 동인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편견이 때로는 분열을 낳고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다양성을 이끌어가는 관문이기도 하기에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통성기도 하듯 다시 포용을 하게 되는 까닭이다. 어쩌면 동인들과 함께함이 내가 나를 밀고 가는 힘이 된다. 아직도 갈 길이 멀고, 갈 길을 몰라 헤매는 나에게 행선지를 묻고 다시 시작한다. 용기 주신 글벗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김상숙 2003년 시집 『강물 속에 그늘이 있다』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물렁물렁한 벽』, 『대책이 없는 문장입니다 당신은,』, 다층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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