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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특집 제7회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열린시학|임미리·수상작 탐매探梅 외 1편 /신작 자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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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299회 작성일 23-01-1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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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특집 제7회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열린시학|임미리·수상작 탐매探梅 외 1편 /신작 자귀꽃


임미리


열린시학─수상작 


탐매探梅 외 1편 



계단을 오르니 운선암 뒤편 각시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상, 가슴이 잘린 곳을 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비운의 여인상, 붉게 물든 사연 바위에 깊이 새겨둔 채, 지금은 어디쯤에서 붉은 꽃 피워내고 있는지 궁금해지네.

 

암자 모퉁이 보일 듯 말 듯 한 곳에 숨어있는 해우소에 쪼그리고 앉아 마애여래상의 사연 한 자락 모르는 척 버리려 하는데,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향기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네. 저 멀리서 홍매화 막 피어나네.


굳이 탐매에 나서지 않아도 되겠다는 설레는 마음을 숨기는 곳이 하필 해우소라 혼자 붉어진 내 마음을 알았을까. 홍매화도 덩달아 붉어지는 이 봄, 명지바람에 휘날리는 꽃잎의 향기도 황송한데 매화는 저만 모르는지 자꾸만 붉은 미소 터트리네. 


나는 후다닥 각시바위에 오르네. 살며시 조금씩 피어나는 홍매를 보네. 바람은 등 뒤에서 불어 비운의 사연 한 자락 지워지지 않게 바위에 새기네. 붉은 꽃잎들이 휘날리네. 나는 용기를 내어 여인의 가슴에 얹힌 왼손을 가만히 내려주네.





지극히 몽환적인



빛바랜 담장을 바람이 넘나든다.


진홍빛 겨울장미 한 송이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오고 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휘어잡는다. 


이 겨울, 너는 어쩌자고 

저토록 선명하게 피워 담장을 넘었을까. 

따스한 햇살이 겨울도 잊게 하더니

장미의 봉오리를 맺히게 하고 

꽃 피우게 하였을 것이다. 


내일쯤 찬바람 불어와 눈이라도 내리면 

여리고 어여쁜 꽃잎은 얼어붙어 

고개를 떨구고 시들 것을 알기에 

황홀경도 잠시, 장미의 안위가 걱정된다.


세상을 사는 일도 가끔은 

때를 잊고 피어나는 장미처럼 

타이밍이 맞지 않아 비현실적일 때가 있다. 


몽환적인 표정을 애써 감추며 

황홀하게 피어나고 있는 너에게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란 그림이 연상되어 

부드러운 꽃잎이 요동친다.


환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계절을 잊고 담장을 넘은 장미 한 송이

지극히 몽환적인 설렘을 피워낸다.





신작시


자귀꽃



동구리 호수공원을 느리게 산책하고 있는데

저 멀리 홍학 떼 쭈빗쭈빗 머리를 내밀고 있네.

바람 따라 이리저리 춤추는 것 같아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한 달음에 달려갔네.

막 하늘을 날아오르려고 폼을 잡은 듯하여

눈을 비비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름다운 홍학, 찰나지간에 날아오르고 

그 자리엔 연분홍 자귀꽃만 만발했네.

두근거리는 기쁨도 환희도 잠깐이었네.

자귀꽃 피면 여름 장마가 시작될 거라 했던가.

구름은 벌써 알고 하늘을 그러데이션으로 수놓았네.

잠시 농담을 논하는 사이 빗방울 후드득 떨어지네.

저 멀리 팔각정을 향해 급하게 뛰어가 

옷깃을 여미며 빗줄기를 피하는 사이

연분홍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빗속의 연인

우산 속 겹쳐진 저 손 서로 놓치지 않기를 

가만히 자귀꽃 불러 눈빛으로 청하니

눈부신 춤사위로 화답을 하네.





심사평


정밀한 관찰과 섬세한 사유 돋보여



제7회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에 임미리 시인의 작품 「탐매探梅」와 「지극히 몽환적인」을 선정했다. 임미리의 작품들은 자연물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섬세한 사유가 돋보였다. 일상적 체험을 아무렇지도 않은 자연물과 결합시켜 비범하게 만드는 감각이 남달랐다. 

‘일부러 매화 핀 경치를 찾아 구경한다’라는 뜻을 가진 제목의 「탐매探梅」는 ‘운선암 뒤편 각시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상’의 전설 속 애절한 사연과 화자가 가진 매화에 대한 탐미성이 만나 극적으로 승화된 작품이다. 화자는 봄을 만끽하러 왔기에, 슬픔에 젖기 싫어서 ‘비운의 여인상’을 애써 모른 척한다. 그런데 해우소 문틈 사이로 홍매화 향기가 찾아와 “혼자 붉어진 내 마음”을 들키고 만다. 전설 속 상처를 안고 있는 유폐된 ‘붉음’이 싱그럽게 개화된 ‘붉음’과 만나 미적 반응으로 승화된 것이다. 그로 인해 “여인의 가슴에 얹힌 왼손을 가만히” 내려주는 화자의 행위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치유로 다가온다. 

「지극히 몽환적인」은 계절의 질서를 벗어난 겨울 장미의 몽환적인 자태를 통해 화자의 내면에 자리한 에로스적 감수성을 암시적으로 표출한 작품이다. 관습을 깨는 일은 언제나 “여리고 어여쁜 꽃잎”을 얼어붙게 만드는 일처럼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얻어지는 ‘황홀경’은 너무나 눈부시다. 그런 겨울 장미를 통해 화자는 자신의 몸속에 있는 ‘꽃잎’이 요동치는 남다른 경험을 하게 되고, 생의 변곡점을 지날 것 같은 예감에 젖게 된다.

이 상은 격려와 바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보여준 문학적 성과에 대한 격려가 첫 번째고, 앞으로 더 깊이 있는 시세계를 펼치라는 바람이 두 번째이다. 두 가지 의미를 가슴에 잘 새겨서 높은 경지의 미학적 행보를 끊임없이 보여주길 바란다./이지엽·하린(글)





수상소감


눈부신 오늘을 소중하게 살아가겠다



노마드적 사유를 붙들고 나무와 숲과 바람과 그의 친구들을 벗 삼아 살고 있습니다.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수상을 연락받기 며칠 전에 결혼식장 동선의 타이밍에 걸려 코로나19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검사를 하며 농담 사이로 많은 생각들이 스쳤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이전과 이후로 나의 시대도 나뉘게 될 것 같습니다. 사는 일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목숨처럼 간절했던 순간들이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느슨해진 마음 자락을 덕분에 붙들었습니다. 

청보랏빛 산수국이 변하기 쉬운 사람의 마음처럼 지고 있습니다. 이별했으나 이별하지 못한 것들과 떠나보냈으나 떠나보내지 못한 것들을 붙들고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눈부신 오늘을 소중하게 살아가야하겠습니다.

다시 세상으로 발을 내딛으며, 처음처럼 시에게 길을 물으면서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미리 2008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물고기자리』 ,『엄마의 재봉틀』, 『그대도 내겐 바람이다』, 수필집 『천배의 바람을 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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