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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신작시/양영길/나는 종이었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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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300회 작성일 23-01-1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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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신작시/양영길/나는 종이었다 외 1편 


양영길


나는 종이었다 외 1편



사람들이 나를 치고 때리면 

나는 맞아서 소리를 내었다 

내가 소리를 내면 사람들은 척척 움직여 주었다

그런 나의 소리를 사람들은 운다고 했다 

맞으면 맞을수록 맑아지는 혼의 울림같은 소리 

맞을수록 고운 소리를 내고

한 번쯤 크게 울어야 

세상도 아름다워지는 것을 

사람들은 운다고 했다 

눈물보다 더 영롱한 나의 소리를 


세상이 바뀌면서

손가락 하나로 콕 누르기만 하면 소리 내는 벨이 

나의 소리를 대신하더니

이제는 손가락 한 번 까딱 안 해도 

때가 되면 알아서 소리 내는 걸 만들어 버렸다

잘 난 사람들은 


나는 서러웠다 

정말 울고 싶다 

맞을 때의 나의 소리도 점점 잊혀지고 

맞아서 내던 소리 대신 

검버섯 같은 파란 녹이 쓸고 있는 

나의 몸과 얼굴 

사람들이 쳐다만 보고 

보물처럼 아껴줘도  

나는 서러웠다 

나는 오늘도 울고 싶어 

가슴에 푸른 녹을 품는다 

맞으면 맞을수록 꼿꼿이 일어서는 

팽이 같은 성깔 죽여 가며

나는 남의 집 종처럼 울음을 삼켰다 


나는 종이다

아니, 나는 종이었다 





씹는다는 것에 대하여



술자리에서 안주 씹듯

윗사람을 씹어대던 시절 

세상이 어수선할 때도 

씹는 맛에 술 한 잔 기울이던 

그 시절이 엊그제인데 


요즘 세상은 윗사람과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문자도 씹고 

전화도 껌 씹듯 씹어 버린다고 

투덜대면서 술 한 잔을 툭툭 털어넣는다  


전화를 씹다가 씹다가 

그래도 징징 울어대면 

밝은 전등 꺼버리고 어린 시절 향수에 젖듯 

콱 꺼 버리고 

잠시 깊은 바다 속으로 잠수를 탄다 


열 받으면

뚜껑도 열고 닫고 하다가 

밥 먹고 영화 볼 때는 

쏘고 때리는 세상


아무리 잠수를 타도 

가는 곳마다 찍히는 

아, 아름다운 세상 





*양영길 199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궁금 바이러스』 외 2권, 저서 『이론을 뛰어넘는 문학 이야기』 외 3권. 전 제주대학교 겸임교수, 전 중등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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