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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신작시/이선임/결혼이란 선물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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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332회 작성일 23-01-1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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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신작시/이선임/결혼이란 선물 외 1편 


이선임


결혼이란 선물 외 1편



결혼이란 

태어나 살던 곳과는 다른 곳으로 

합법적으로 모험을 떠나게 해 주는 것. 


신은 어쩌면 자신들의 영원한 삶과는 다른 

백 년 남짓한 매우 유한한 인간의 생에

결혼이란 제도를 은총으로 내렸음이 분명. 


친정에서 십 리 남짓 거리에 시집온 나조차도 

이 은총을 입지 않았담 ‘태어나 자란 틀을 깨었을까?’란 의구심. 

틀에 갇혀 사는 것이 편안함, 안정은 줄지언정 

답답함은?!

모험을 떠나는 신남은!?

온전히 내 것을 갖는 옹골찬 소유욕은?!

앞날에 무엇이 기다릴지 모르는 두려움이 주는 짜릿함은!?

사력으로 버티어내는 오뚜기 같은 오기의 맛은?!


결혼이란 출렁다리 건너야 맛볼 수 있는 생의 재미가 이것뿐이랴만

결혼 전의 나로 다시 돌아간다면 

일찌감치 합리에 대해 깨칠 것이고 

최대한의 모험을 즐기게 하는 상대를 택할 것이고

다가오는 무엇이든 수용할 것이고

좌절보다는 오기로 부딪혀 이겨내 볼 것이고 


이런 조건 저런 조건 따지지 않아도

잘했다는 결혼이든, 못했다는 결혼이든

생의 달고 쓰고 맵고 짜고 쓰게 우린 오미五味

옹골차게 보여주는 신이 은총으로 내리신 선물


돌아누운 그의 등덜미

화살 같은 시선 날리면서도

선물을 받긴 참 잘 받았다는 생각





꿀비 내리는 날



계절 탓인가 자꾸만 까무러지는 날, 전화벨이 울린다. 여느 때나 다름없는 받아도 그렇고 안 받아도 그런 그런 전화. 창밖엔 구름이 망설이듯 재촉하는 중이다. 이런 날은 떠나야 한단다.  밭에라도 가란다.


이틀 전이다. 바닥에 쓰러지며 다친 오른 손목은 어제보다 부기가 더해 보인다. 두어 젓가락 떠다 말고 대충 옷을 걸친다. 차를 몰아 골짜기 밭 어귀에 다다른다. 구불구불 구겨진 길이 처분이라도 기다리듯 널부러진 채다. 오른발로 짓이길 듯 액셀레더를 세게 밟는다. 덜컹거리는 흔들림 따라 오른 손목이 뼛국물 우리듯 우려온다.


유월 가뭄에도 산은 푸르고 새 소리에도 힘이 솟고 있다. 바람결에도 귀한 눅눅함이 스폰지에 스민 물기처럼 말랑하다. 한 발을 내리고 두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비가 내린다. 오랜 가뭄에 단련된 비는 쉽사리 후두둑 시원하게 오실 리 없다. 


꿀비다. 비를 맞으며 고춧대를 세운다. 사이사이 바래기며 개비름 참비름 강아지풀 바래기…… 손을 놀려가며 뽑고 뽑는다. 온몸이 증기라도 쐰 듯 땀이 솟는다. 내리기 연습을 끝낸 비가 드디어 흡족히 내려선다. 말렸던 허리를 펴, 하늘을 올려다 본다. 자잘한 빛 사이로 반짝반짝 별빛처럼 비가 내린다. 





*이선임 2001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봄이 오는 소리』. 한국문인협회 거창지부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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