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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김삼환/영주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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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김삼환/영주 외1편
영주 외1편
김삼환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셨다.
수출공단 공장 굴뚝에서
밤을 새워 퍼 올리는 연기는
국가 수출 실적을 올려주는
근거가 되고 있었다.
몇 순배의 술이 돌았고
다시 술잔을 주고받은 후에
아마 서로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아마 서로 각자 가야 할 길을 갔을 것이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나도 아마 서울행 전철을 탔을 것이다.
한밤중에 청량리역에서 중앙선을 탔던 것일까?
문득 잠이 깨서 내린 곳은
영주역이었다. 영주.
그날 새벽 그 이름만으로도 체온이 뜨거워지는
몽환의 도시 영주는 눈물 같은
이슬을 머금고 있었다.
나를 감싸고도는 새벽 공기에 취해
작은 역사를 거니는데 별안간 내 몸이
출렁하면서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초가을 새벽공기는 서늘했고
영주역은 내게 뜨거운 기운으로 충만했다.
희방사와 부석사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온 서울은 일상의 평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월요일 수출공단의 아침은 활기가 넘쳤는데
일터의 창구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당신, 영주.
그해 가을 그날 아침 그렇게 나는 영주를 만났고
그해 가을 그날 아침 그렇게 영주는 긴 여행을 떠났다.
효성동
제대를 하고 나서
빈주먹 휘두르며
하루를 벌고 하루를 먹기 위해
찾아간 곳, 효성동.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들의
뒤태에 얼룩이 어룽져서
상처의 흔적이 넓어지고 있었다.
그릇 만드는 소리, 악기 만드는 소리
어떤 소리들이
단전에서 목으로 올라오는 길목에서
긴 그늘이 드리워 질 때
여기저기 둔중하고 탁한 사건들이 돌아 나가는
공단 안의 모든 길은 미로였고
사람들은 모두 바빴지만,
감청색 근무복을 입고 오가던
여자들의 눈은 예뻤다.
어느 날 문득 흘러가는 물소리에 섞여 든
낯선 이물질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눈물 같은 질문 하나가
백마장 담벼락을 지키고 있었다.
미스터 쌤이 누구예요?
내 청춘, 내 사랑이
미스터 쌤을 향해 송두리째 빠져 든 그 시절.
내 기억 속에서 효성동은
아름다운 사랑의 다른 이름으로,
골절된 삶의 한 가닥
지나온 시간을 아로새기는
뼈의 가루가 되어
부평역에서 서울역을 오가던
삼화고속 차창 밖으로
천천히 흩어지고 있었다.
*김삼환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따뜻한 손』등. 역류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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