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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정석교/겨울 수제비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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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정석교/겨울 수제비 외1편
겨울 수제비 외1편
정석교
계절이 추워지는 저녁이면 어머니는
꽃송이 따듯 밀가루 반죽을 치댄다
구절초 꽃잎 닮은 하얀 수제비
손끝에서 떼어낸 어머니 지문으로 돋아
절절 끓는 가마솥에서 꽃이 핀다
몽글몽글한 꽃송이 만개한 솥 안
가난한 살림 일어서라고 부글부글 끓는다
밥상머리 앉아 투정부릴 시간도 없이
입안에서 뚜걱거리는 수제비 살점
저녁이 익는 얼큰한 말 밥상 위에 모였다
하루 삼시세끼 숟가락을 든다는 것
배부름은 사치처럼 상상으로 스쳐갈 뿐
저녁을 헤치며 눈이 내리는 식탁에서
방치된 유년의 은둔을 사랑할 수 있을까
계절이 추워지면 잊혀지는 것 뒤에 숨어
가난의 길 따라 어머니 지문이 돋은 저녁
울컥, 목 메인 허기가 눈물로 쏟아지는
가슴까지 절절 끓는 수제비 한 그릇
어머니 마음으로 살아가는 길은 참 멀다
풀의 날
풀잎, 풀잎이라 부르면
입술에서 푸르게 말리는 소리가 난다
다시 풀잎이라 부르고 나면
푸른 날刀이 돋은 것을 입을 본다
태어날 때부터 품은 저 푸른 날,
헐벗은 날日을 위한 담금질이란 것을
봄바람 베는 숨결인 것을 안다
가장 낮은 바닥에 누워
허공만 가르는 저 순진무구의 날日
서로의 것 다치지 않는
저 초록의 날刀이 베고 싶은 건
지정거린 봄의 기별은 아닐까
풀잎, 풀잎이라 부르면 푸른빛이
입술에서 돋는 가벼운 휘파람처럼
풀잎을 읽는데 입술이 푸르다
마음껏 휘어져 바람을 낭독하며
화창한 맛이라고 귀띔하는 풀잎,
간절한 꽃물 들기를 발원하는
푸른 당신을 내내 읽는 중이다
*정석교 1997년 《문예사조》로 등단. 2016년 《시에티카》 수필 등단. 시집 『산속에 서니 나도 산이고 싶다』, 『꽃비 오시는 날 가슴에 꽃잎 띄우고』, 『딸 셋 애인 넷』,『바다의 길은 곡선이다』, 『빈 몸을 허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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