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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이채민/아, 옛날이여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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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이채민/아, 옛날이여 외1편
아, 옛날이여 외1편
이채민
동네 커다란 상가 건물에 유명 프렌차이즈 커피숍이 오픈을 했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붐빈다
며칠째 유혹하는 빨간 문을 밀고 들어갔다
한 쪽 벽면에 개인 스탠드까지 설치하고
독서실처럼 꾸며놓은 자리마다
책을 쌓아놓고 노트북을 펼쳐놓고
각자의 공부와 업무에 빠져있는 사람들
넓은 중앙엔 유모차부대가 브런치로 식사를 대신하며
정보교환에 눈빛들이 반쩍인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그대오기를 기다리는
아, 옛날은 어느 구석에도 없다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내가 옛날이 되었다
노트북이 유모차들이
옛날을 힐끔힐끔 스캔한다
개님살롱
집으로 오가는 길목
고급 주상복합 1층에 ‘개님살롱’ 간판이 걸렸다
분명 한글로 쓴 간판인데
멈춰 선 나는 한참을 갸우뚱했다
*호텔식 침실,
*마이크로버블 탄산 스파,
*최첨단 검진 장비,
*차별화 된 사료,
이개, 이런 개, 개 세상
육교 아래 자칭 소크라테스는
땡볕이 땡감처럼 구르는 7월 한낮 한겨울 코트를 걸친 채
깊은 사유에 잠겨 있고
폐지 가득 실어 나르던 리어카 할머니는
육교 기둥을 쪽방 삼아 쪽잠에 빠졌는데
탄산스파에 몸 담근 개님 팔자는
어디서 어떻게 무엇으로 살 수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여
나는 육교 위를 천천히 걸었다
*이채민 2004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빛의 뿌리』 외 2권. 미네르바문학상, 서정주문학상 외 수상. 현 계간 《미네르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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