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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신희교/쪽지시험과 행성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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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07회 작성일 19-06-28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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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신희교/쪽지시험과 행성 외1편


쪽지시험과 행성 외1편


신희교



강의 시작 전 문제를 불러주고 쪽지시험을 보게 한다
지구로부터 63광년 떨어진 지구처럼 푸른 행성
HD 189733b에서
성급하게 책을 뒤적이는 학생이 있다
시속 칠천 킬로로 유리 입자 비가 내리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지 적은 문제를 기냥 가만히
내려다보는 학생이 있다 또
대기의 온도는 섭씨 삼천 도까지 오르는데
옆 짝 것을 슬쩍 커닝하려는 학생이 있다 또
규산염 구름에서 푸른 불꽃 같은 그 유리 비가
지금 뜨겁게 옆으로, 쏟아져 내리는데
답을 욕심껏 쓰려는 학생이 있다
발딛는 순간 발바닥부터 녹으며 온몸이 갈갈이 찢어져 버릴 거야
그런 행성은 왜 있는 걸까
답답한지 아예 스마트 폰에서 답을 찾으려는 학생도 있다

쪽지시험이 끝나고 HD 189733b로의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검은 제비



그날 오전 지는 아부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마누라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알았심더
아부지는 돌아가시기 달포 전부터
식사를 잘 몬하셨고 보름 전부터는 하루에
요구르트 한 개만을 드시는 둥 마시는 둥 하셨심더
핑계 좋은 원지遠地에 있어 편찮으신 아부지를
한 두어 번 찾아뵙기는 했심더 그런데 정작
임종 자리를 못 지켜드렸심더 참 이상한 날이기도 했지예
그날 새벽 네 시경 오줌이 마려버서
자다 깬 마누라가 현관 쪽에 있었던
화장실로 가기 위해 안방 문을 열었는데 세상에 딱
얼어붙고 말았다 아임니꺼 새벽인데 누가
문을 열어줄 리도 없고 문을 열고 들어올 리도 없는데
현관 침침한 어두움 속에 뭔가가 직립해 있었던 기라예
겁도 마이 났지만 오줌을 노야 된다는 것도 이자뿌고
그 와중에도 가마이 쳐다보이께네
흰 두루매기를 입고 서 있는기 마 머리는
사람이 아이고 주디가 있는 제비 형상 같은 기 또
고개를 밑으로 쪼매 숙이고 있더랍니다
제비라면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준 제비요 길조일 텐데
무슨 까닭인지 취업난이 심각한 요새만큼이나
십여 년 전에도 일자리가 많지 않았던지
제비가, 안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던 기라예
하이튼 우리 아부지가 돌아가시게 된 그날
새벽 잠도 깊이 못 잤을 텐데 눈꼽도 덜 떨어진
제비는 일찌감치 부음을 전하러 왔던 거지예
하긴 머 지 딴에는 예의를 갖춘다꼬 흰 두루매기도 갖차 입고
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카이께네 아마 제비동네서도
예절 잘 아는 제비가 있어 부음 전하러 갈 때에는
말은 이래야 되고 옷맵시는 저래야 되고 
날개 모양은 이래야 된다는 등의 교육을 평소 때도 마이했지 십심더
새 중에 청조는 고지새로
반가운 사자使者를 뜻하기도 한다는데
아부지 부음 전하러 온 흰 옷 입은
검은 머리 제비는 청조는 분명 아인기 그렇다꼬 꼭
흉조라 부르기는 뭣하고 머라꼬 불러야 되겠는지 모르겠심더
사정이야 자세히 모르겠지만 잠결에 흰 두루매기 입고
날아와 우리 집에 부음 전해 준 (아부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 마누라 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그 제비가 아주 고맙지 않은 것도 아임니더
마 우예 됐든지 간에 지는 평소의 불효에 더하여 새보다도 못한 놈
다시 말해 진짜 불효자식이 되고 말았다 아임니꺼




*신희교 2009년 《문예연구》로 등단. 저서 『한국현대성장소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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