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72호/신작시/정기석/휴게소에서 외1편
페이지 정보

본문
72호/신작시/정기석/휴게소에서 외1편
휴게소에서 외1편
정기석
머리카락 한 올의 굵기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것을 돌리는 감촉에 대해
그때 휴게소에선 창백한 하늘과 삶은 감자 냄새
김이 올라오는 오뎅 국물과 믹스된 트로트 음악이
서로를 안고 있었습니다
차의 위치를 잠시 생각하고 다시 지갑을 확인했습니다만,
잠시 다시를 잃을 수 있는
그동안엔 그동안의 일이 있었을 겁니다
시금치를 버무린 비닐장갑은 싱크대에서 냄새를 풍기고
식탁에 놓인 콜라는 김이 빠져 가고
부풀어 오르다 타버린 빵들 앞에서
하염없이는 일방적이었을 겁니다.
거기엔 부둥켜안아 길 잃지도 못하는 등짝 같은 것들도 있었을 겁니다
등짝은 바깥이 차가울 때 끌어안은 안쪽을 위한 것
그때에도 바깥으로 가는, 네
창백이나 삶은 내음, 리믹스 테잎을 녹음하며 버튼을 누르던 손가락 같은 것들도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는데 잡히는 건 부딪힘뿐일 때
글쎄요, 그걸 실루엣이라 할지 체온이라 할지
화장실 쪽으로 바삐 걷는 너라고 할지
여하튼 그런 것이 맞물려 어떤 바깥을 키우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어제 당신은 자랄 시간이 모자라는
식물들의 이름을 적어 보았습니다
화장실에 놓인 화분은 풀이 죽어 있고
그럴 때 나는 당신의 은유를 이해합니다
왜 물은 주지 않고, 라고 묻지 않고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바깥으로 가는 것들은
서로의 온도뿐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이 세계의 공평함에 기여할 동안에도
휴게소 먼발치 강물에서는 송어가 다이빙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늘로, 수면으로, 반시계방향으로
해는 그때 송어의 등짝에 있고
그런 등짝들이 태양계를 홀로 건너가는
그런 모든 것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방으로 돌아갈 때
현관에서 떨어뜨리는 가방의 무게처럼
삶은 감자 위를 오르는 김에서 창백한 삶의 냄새가 납니다
이것이 거짓이라면
진실은 언제든 뭉개져 있던 것이겠지요
네, 그것이 스키드 마크가 그려지던 동안
방호벽을 넘는 동안 일어나던 일이라면
우리가 붙잡고 있는 단란함들
우리를 붙잡고 있는 단란함들
어렸을 때 뜀틀을 넘다 쓸린 허벅지 안쪽이
이제 슬슬 부어오르는 겁니다
대부분의 바람 소리는 마찰음입니다만
우리는 그 뒤에 있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려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쓸려버린 게 무엇인지는 모르는
세계는 무사하지 않습니다 한시도
탁 트인 하늘로부터 등 돌리면
또 트인 것들의 안으로
걸음의 속도를 서둘러 줄입니다
지반을 두드리는 걸음의 진동이 그러하듯
그런 등짝엔 식은 온기가 있고
그런 것이 아지랑이를 피우면
비非와 불不이 당신을 감쌉니다
머리카락 한 올이 지나온 통로를 생각합니다
등짝에 붙은 머리카락과 그것이 품은 해의 온도 같은 거요
통로를 지나가는 것들이요
이게, 나의 질문입니다
또 나ㅅ
그녀는 혼자 밥을 먹는다
카디건을 걸치고 우엉차로 입을 헹군다
그런지가 얼마나 됐는지는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다
낫또에 밥을 비빈다, 낫또, 또 not, 또
다 먹으면 시리거나 신 귤을 깔 것이다
그녀는 이런 말장난에 관심이 있다
그런 것에 매달려 있으면 외롭지 않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인간은 언제나 배달부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포스트(우)먼 같은,
그런 생각이 꽉 찬 날에는 택배 아저씨에게
생수 한 통 정도 남기고 싶다
그렇지만 또 꼭 그렇지도 않아서
그녀에겐 말장난이 남아 있다
바깥엔 쌀눈이 펑펑이고 차가 우엉 하고 지나간다
눈 내리는 마을이 워터볼 안에 있고
카디건에서 차와 총을 꺼내들고 눈을 겨눠본다
무릎 담요 위에 고양이가 누워 있다
그녀는 고양이의 눈을 찔러본다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을 것인 게
고양이 이름이 문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불러본다
그녀는 이런 말장난은 끊이지 않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이름은 무늬가 아니기 때문에
남겨둔 생수통에 물이 맺힌다
그녀는 포스트(우)먼을 만난 적이 없다
늘 기다렸지만 우엉 하고 차가 지나고
낫또 같은 것이 배달되고 나면
금세 잊기 때문이다, 또, 금세 not
아니다, 아니다, 생각한다 그녀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문은 펑펑 열리지 않을 것이고
생수통은 그를 전하지 않을 것이다
*정기석 2014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 이전글72호/신작시/최백규/꽃그늘에 복사뼈를 묻고서 외1편 19.06.28
- 다음글72호/신작시/이제아/빛의 환절기 외1편 19.06.2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