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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최백규/꽃그늘에 복사뼈를 묻고서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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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최백규/꽃그늘에 복사뼈를 묻고서 외1편
꽃그늘에 복사뼈를 묻고서 외1편
최백규
그리운 사람도 없이 열이 오른다
갈빗대 언저리에 든 멍이 묽어질수록 봄이 녹슬어 간다 오래 삭아가고 있다
향을 피우듯
비탈에 걸터앉아 묘목을 심는다 이 숲에서 철거되고 싶은 건 나밖에 없다 죽은 사람의 피는 다 어디로 갈까
빈 계절이 장례식이다
이따금 해진 볕이 소매에 쌓인 먼지처럼 우수수
쏟아지고
무사히 누그러지는 바람만이 묻어 놓은 슬픔을 상하지 않게 한다
흐려진 발목을 적시며 시들어 가던 길에서 심연으로부터 밀려나기 시작했다는 마음만 들었다
혀뿌리를 길게 뽑아놓은 개가 꽃나무 아래 쓰러져 있다
핏줄이 끝없이 펄떡거렸다
낙원
그해 봄은 성한 곳 없이 열을 앓았다
살을 맞대어 서로에게 병을 안겨주던 시절이었다 눈더미처럼 누워 화관을 엮었다
불 지르고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창을 열어두고 살았다 보낸 적도 없는데 돌아오지 않는 일이 있어서
문턱을 쓸듯이
늦은 저녁을 차리며 끓어 넘치지 않도록 들여다보는 사이 여름이 허물어졌다
꽃은 다 지고 이마가 식지 않았다
*최백규 2014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뿔’ 동인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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