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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김옥경/끝까지 읽고 싶지 않은 시로부터 관측당하는 A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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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김옥경/끝까지 읽고 싶지 않은 시로부터 관측당하는 A 외1편
끝까지 읽고 싶지 않은 시로부터 관측당하는 A 외1편
김옥경
왼쪽으로 긴 의자 넷 A, 일어난다 바람은 없다 오른쪽으로 망가진 약속 셋 모든 것은 우연일 뿐, 언젠가 잃어버린 햄스터를 오늘 아침 냉동고에서 발견했던 일 16시 57분에 느닷없이 두통이 시작되는 일
긴 의자 옆 긴 의자에 예감을 펼쳐놓고 A, 우향우, 걷는다 천천히 낮게 날아가는 까마귀들 불현듯 부풀어 오르는 저녁·나무들·한 시간 후의 신음소리 걸음은 잠깐 기우뚱거리고 그러나 모든 것은 우연일 뿐, 세 번째 이국인이 다가와 길을 묻는다 아무리 저녁을 두드려도 깔 호 나 호 그러니까 냄새처럼 안녕히
저 오래된 육교를 오늘은 건너지 않을 수 있다면
두 개의 망가진 약속을 지나 망가진 약속의 모퉁이에서 갑자기 R를 만날 수 있다면
그러나 끝내 도착하고 싶지 않은 곳은 끝내 도착하게 된다는 법칙을 만들기 위해 A, 현관문을 연다 이제 보게 될 것; 어둠 속 한줄기 날카로운 은빛·서서히 붉은 빛으로 물드는 하얀 공책·긴 의자 건너 건너 긴 의자에서 흐느끼는 첫 번째 이국인 뽀 렐 몬떼 쁘로푸고 메 보이 그리고 왼밤·왼밤·왼밤들이 투명하게 두텁게 쌓이는 소리 그러므로 바람처럼 안녕히
과자 먹는 토끼
형이 죽지 않아요 죽지 않는 형이 우리들의 토끼를 키워요 토끼는 토끼가 아니지 토끼가 자랍니다 1906호는 잠겨 있어요 형은 텅 빈 놀이터 어딘가에 변칙처럼 (앉아 있죠) 형은 형일 수도 있어요 초인종이 망가진 십구 층에는 산 한 번 본 적 없는 산토끼가 있어요 컴컴한 베란다 귀퉁이 질근질근 질긴 풀을 씹는 몇 만 번째인지 모를 토끼가 있지요 철망 속에서 꼭 토끼일 필요는 없는 토끼가 수염 뽑힌 납작한 코로 철문을 밀어 올립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철문이 닫히네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토끼를 몰고 가요 토끼의 털같은 암흑이 천천히 일어섭니다 우리들의 형은 죽지 않지요 우리가 우리를 과자 봉투에 넣어요 토끼는 과자를 먹었을까요 죽었니 (살았니) 문이 열립니다 레몬과 과자와 토끼가 있어요 과자와 토끼와 분노가 있어요 커다랗고 검은 손 하나가 철망 속에 토끼를 던져 넣습니다 토끼는 그저 토끼일 뿐인 토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우리들의 형은 죽을 수 있을까요
*김옥경 201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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