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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임혜라/식탁의 그늘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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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임혜라/식탁의 그늘 외1편
식탁의 그늘 외1편
임혜라
밥은 솥 안에서 익는다
빛의 태깔이 여며지고
맛의 빛깔이 다듬어진다
하얀 안개 피워 올리면
열이 오르고 심하게 앓는다
드럼을 치는 사내들과
소프라노의 음색 높은 여자들이
밥통의 밥을 익힌다
들판에 상념이 모여들고
은근한 밥 향기가 집산되면
자상한 아버지와
마스크를 쓴 가족들은
따뜻한 밥통의 그늘 아래서
조용히 침묵한다
여음에 귀 기울인다
지그시 눈을 감고
밥통에 매달리는 눈길들
단맛의 깊이만큼 진실을 담는다
밥통은 남은 밥이 없어야 배가 부르다
좁혀지지 않는 거리
고요 속으로
내 상처 난 늑골을 집어넣었다
구부러진 갈비뼈를 머리 숙여 지나서
예약된 티켓을 받았다
뮤지컬은 이미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다
뼛속까지 구속된 살들이 흩어졌다
들숨과 날숨의 굴곡이
한 박자 늦게야 파도를 덮쳐왔다
일 년을 밀리며 들어 올렸다
슬픔을 발령했다가 순간
대설경보로 신호가 전환됐다
어둠 속의 불빛들이 몰려와
흐린 휘장을 거두고
구름이 몰려가는 명상의 밤을 끌어냈다
거짓 늑골을 누르면 가끔
아래로
나를 떨어 뜨렸다
*임헤라 2015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 『초경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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