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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박종영/너를 삭제하다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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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신작시/박종영/너를 삭제하다 외1편
너를 삭제하다 외1편
박종영
꼬리를 흔들며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너를 순간 속에 저장한다.
정지화면 속에 갇힌 네가 속울음으로 짖고 있고
꺼지지 않는 촛불의 꼬리가 긴 벽화를 그리고 있다
반달웃음이 긴 손톱을 깎는 아침
창문 너머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던 노모
꼬리를 잘라먹고 네 발로 기어다닌다
네 안의 기후는 감정 선을 따라 북상하였고
이동하는 내내 흐렸다
손금을 타고 불어닥친 비바람
네 몸은 태풍으로 처절하게 무너졌다
정지된 순간
기억을 더듬어 편린들을 모을 때
너를 삭제시키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너의 한결같은 공식
한때의 방황
삭제되지 못한 명령어들이 구름옷을 입고 빗속으로 들어간다.
식탁엔 상한 우유와 흩어진 빵 몇 조각
깎다가 만 손톱이 마우스를 움직이기 개운하질 않다
감정선이 손톱으로 집중 되어 있다
미심적은 반전들이 돌변해서 움직였고
지극히 부정적인 자태가 방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져 날아다녔다
미세먼지처럼 날아다니는 노모의 지문들
각진 울음이 표방되어 허공에 흩어졌고
몸속에서 배롱나무 냄새가 난다
햇살 한입 베어 물기 좋은 날씨
삭제되지 않은 네가 목줄을 매단 채 길거리를 쏘다니고 있다
며느리 밑씻개
수염 달린 시어머니가 물레를 돌린다.
기억을 더듬다가 귀 싸대기를 한 대 얻어맞았다
현기증이 튕겨나가 버린 텃밭
멍청한 머리를 뜯어 뒷물을 가렸다
손가락으로 밑을 가릴 게 없다
바들바들 떨리며 가리키던 손가락질
쥐구멍을 찾는다.
바람이 손가락을 뜯어먹었다
비계덩어리의 반란
씰룩거리는 엉덩이가 스치며 연기가 폴폴 났고
홀씨가 터져 환하게 날렸다
빈 하늘에 별꽃들이 환하게 날아다녔다
일회용 시어머니를 파는 가게
한 번 쓰고 휴지통에 버려지는 시어머니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쓰레기통에서 울고 있는 시어머니
한 번 더 쓰고 버릴까
시어머니가 구겨져 버려졌다
며느리의 손가락에 농락당한 흔적
매니큐어 냄새가 났다
입 주위에 마크된 립스틱
시어머니를 사고 주머니 깊숙이 들어간 가격표
봄바람이 스며들었다
음악이 흐르고 낮은 몸속에서 곰팡이가 쑥쑥 자랐다
휘휘저어 희석되는 중독성
쏟아지는 소나기를 분질러 버리던 날
격하게 울분을 토하는 시어머니
*박종영 2017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시집 『서해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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