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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미니서사/김혜정/물고기 문신을 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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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미니서사/김혜정/물고기 문신을 한 여자
물고기 문신을 한 여자
김혜정
이 모텔에 투숙한 지 열흘 째였다. 며칠 집을 떠나 쉬고 싶다고 하는 어머니의 뜻을 따랐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도 있었다. 기왕에 어머니와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이라면 조금 더 좋은 곳에 묵고 싶었다. 굳이 이 모텔로 오자고 한 건 어머니였다. 그 강이 보이는 곳에서 쉬고 싶구나. 이 모텔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아주 길게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여기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회환을 내려놓을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단 하룻밤도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나는 잠든 척하고 누워서 어머니를 엿보았다. 어머니는 누운 채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이따금 몸부림쳤으며, 때로는 벌떡 일어나 울었다. 울음은 아주 길게 이어지다가 한순간에 끊어졌다. 아마도 울음을 그치는 그 순간에 어머니는 뭔가에 절박하게 쫒기거나 뭔가를 감지한 눈치였다. 그럴 때면 으레 당신 몸의 화상 자국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럴 때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다른 존재처럼 보였다. 그런 어머니를 대면하면서 나는 어머니가 오래 내 곁에 머무르지는 않을 거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섬뜩하면서도 알 수 없는 편안함을 안겨주었는데 그것은 오로지 어머니의 행복을 전제했을 때였다.
아침이 오려면 멀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잠을 청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쓸데없는 짓임을 이내 깨달았다.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났는데, 아직 바깥은 지독하게 깜깜했다. 나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시야를 완전히 가릴 정도의 짙은 안개가 강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과 백 미터 정도의 거리에 작은 다리가 있다는 걸 나는 이 모텔 주변의 안내도를 보고 알았다. 그 다리 건너편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쇠를 두드리는 망치 소리 같기도 하고 누군가 기침을 내뱉는 소리 같기도 했다. 어쩌면 누군가가 끔찍한 행동을 하면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틀어놓은 음악 같을 것일 수도 있었다. 그 소리들이 어울려 기괴한 소리를 자아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순간에 찾아오는 어떤 것처럼 불길한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강에서 아침을 맞는 황조롱이 외에는 그 어떤 새도 보이지 않았다.
제방이 무너지던 날 아버지는 물속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아버지만이 돌아오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걸 알기에 나는 너무 어렸고 어머니는 음모에 대해 알 만큼 분별력이 있지 않았다. 그날 많은 새들이 떼 지어 강으로 모여들었다가 새벽이 되자 모두 떠났다. 어쩌면 그것은 새 떼가 아니라 어떤 환영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어머니는 그날 밤 인두로 손수 당신의 몸을 지졌다. 그 상처는 오랫동안 아물지 않았는데, 그 상처가 아문 자리에 물고기가 태어났다. 처음부터 어머니가 물고기 모양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모양은 어머니와 퍽 잘 어울렸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강의 수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뭔가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나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다리 건너편에서 물고기 문신을 한 여자가 강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모텔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직감으로 알았다. 하지만 나는 웬일인지 돌아가는 것을 미룬 채 오래 안개 속에 서 있었다.
* 허연 시인의 시 「물고기 문신」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밝힙니다.
*김혜정 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비디오가게 남자」 당선.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 『바람의 집』, 『수상한 이웃』, 『영혼 박물관』. 장편소설 『달의 문門』, 『독립명랑소녀』. 간행물윤리위원회(우수청소년 저작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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