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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초점/김신숙/싱싱- 시옷서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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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12회 작성일 19-07-0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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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초점/김신숙/싱싱- 시옷서점 이야기


싱싱
- 시옷서점 이야기


김신숙



1. www.poetfoot.co.kr
그러니까 소외된 문학인들이 발표할 수 있는 문예지를 만들자고 시인 H가 말했다. 시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니 사진작가도 함께합시다. 사진작가 A도 거들었다. 대구 사는 친구 L이 사진을 찍는데 같이해도 될까요. 시인 T가 말했다. 좋아요. 제주 시인들의 글만 싣는 게 아니니까요. 우리는 말했다. 좋아, 좋아. 시인 S가 말했다. 원고료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시인 O는 말했다. 시를 투고하면 귤이나 가파도 보리쌀을 보내주자. 시인 K가 말했다. 간단하게 입금하면 되는데 왜 농작물까지 보내? 샐러리맨 시인 O가 말했다. 난 우리 엄마 문어를 훔쳐와 기증할 수 있어. 가장 어리석은 말은 시인 K가 한다. 파치를 보내면 되잖아, 파치는 저렴하게 사서 보낼 수 있으니까 부담도 없고, 농사짓는 사람도 비상품을 팔 수 있으니까 좋아하지 않을까. 시인 K가 말했다. 파치 팔아주라고 부탁하는 것이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더 귀찮은 일인지도 몰라. 모슬포 출생 시인 M이 말했다. 그래도 부지런하면 원고료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문예지 제작비는? 음, 뭐 돈이 부담이 되면 아주 호끌락하게 만들면 되잖아. 어느 정도로 작게? 성냥갑처럼 말이야. 그래, 뭐 일단 이름부터 지어 보도록 하자. 소외된 문학인들을 위한 문예지 말이야.


알파벳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다 제주에 살고 있는 시인들이다. 그들은 시인 H를 중심으로 합평 모임을 하고 있었다. 다들 소싯적부터 시를 사랑하였으나 서른이 넘었어도 미등단인 사람들이었다. 등단을 하지 못하거나 안 한 이유는 다양하니까 이만 줄이겠다. 제주에서 태어난 시인 H는 훗날 시옷서점을 운영하게 된다. 그는 대전에서 연애를 하다 서른 중반에 귀향했다. 제주도에서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너무 적어서, H 또래 중 시 쓰기를 바라던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순식간에 시의 동지가 되었다. 합평을 하는 서너 해 동안 누군가는 등단을 하고, 누군가도 등단을 하고, 누군가마저 등단을 하는 중에 시인 H가 제안한 소외된 문학인들을 위한 문예지는 더 간절해지고 있었다.


등단하기 전까지는 등단을 위한 합평을 했다. 등단을 하고 나자 우리는 딱히 시와 함께할 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누구라도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게 되면 ‘우와’ 하며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가뭄에 콩자반만큼도 없었다. 우리는 시를 쓰는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 일이 시창작 이론서를 읽거나 유명한 시인 특강을 따라다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쓰다가 망친 시는 파지라고 말하고, 팔지 못하는 농산물은 파치라고 하지. 파지든 파치든 뭐든 잡고서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메모로도 남기지 않은 우리들 말은 흩어지는 모기향 연기인 줄 알았으나 우리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변방 작가의 호미를 갈고 있었던 듯하다. ‘장풀’이 낭자한 문단 토양에서 모기에게 뜯기지 않으려고 모기향 같은 화톳불이나 함께 쬐며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슬슬 모기향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호미를 들어 잡풀을 정리하고 싶었다. 잡풀을 걷어내고 시와 함께하는 삶의 시야를 확장하고 싶었다.
물리치료사 Y의 사무실, 뼈를 고정시키는 병실에 앉아 시를 합평한 날이 가장 많았고, 도서관 구석에서, 막걸리 집에서 모여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시를 함께 읽고 합평을 하는 곳이야 해수욕장이든 곶자왈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다만 등단을 했으나 발표할 지면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쓴 시와 함께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제주도 서점들의 시집 코너가 너무 얇아서, 나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시집 사기가 애매하지 않은가. 다른 지역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신문에 실리는 시집 소개를 읽고 인터넷으로 시집을 주문하는 시집 구입 방법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인터넷 구매가 시집을 선택하는 최선의 방법일까. 어린 날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들어 읽은 책에서 오로라를 본 적도 있는데 말이야. 우연히 시집을 발견하는 신비감을 맛보고 싶었다. 등단을 하고서는 의심이 더 강해졌다. 나는 시와 무엇을 하려고 시를 썼는가. 시의 의식주를 상상했다. 시집을 막 꽂아 놓고, 그날 기분에 따라 옷을 입듯 시로 사치를 부리 듯 시를 읽고 시와 함께하고 싶었다.


알파벳으로 소개된 젊었던 시인들은 잠정적으로 소외된 시인을 위한 문예지 이름을 정하였으니 바로 ‘시린발’이었다. 발 디딜 곳을 찾을 수 없는, 그러니까 발표 지면이 없는 시인들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하고, 세계를 살다가 시린 발을 가진 사람을 본다면 시인들이 가장 먼저 읊조리고 녹일 수 있어야 한다는 각오까지 들어간 이름이다. ‘시린발’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놓고, 우리는 목차까지 정했다. 시와 기타 등등. 우리가 문예지 ‘시린발’을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전국 곳곳에는 싱싱한 문예지들이 많이 생겼다. 싱싱한 문예지를 만든 그분들과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응원이 되었다. ‘시린발’을 꿈꾸던 우리는 어딘가에서 막 실현되고 있는 싱싱한 문예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와 기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누다 보니 시옷서점이 ‘시린발’보다 먼저 현실 속에 등장하게 되었다.


2. 시옷서점
시옷서점은 제주시 인다마을13길에 있다. 내비게이션을 가지고 있어도 주택가 깊은 곳에 있어 마법을 조금 익혀 두어야 찾을 수 있다. 경제학과 출신이자 샐러리맨 시인 O가 대출을 엄청 받아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새 건물 1층 상가를 시인 부부에게 빌려 주었다. 건물에 제비가 날아와 새집을 짓고 둥지를 만들고 똥을 싼다면 제비 똥을 치워주는 대가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임대료가 새똥만큼 작다. 만우절에 개업할까 식목일에 개업할까 엄청난 고민을 했다. 시가 식물보다 빛나는 거짓말 같아서 2017년 4월 1일에 거짓말처럼 개업을 했다. 시집이나 시인이 쓴 산문집을 팔고 있다. 문예지 ‘시린발’을 만들자고 제안한 시인 H가 운영을 한다. 그는 나의 남편이다.


“소설은 읽고 시는 입는다.”라는 문장은 시옷서점의 신조이다. 서점의 이름은 이 문장에서 나왔다. 시인 H가 처음 제안한 서점 이름은 ‘제비꽃’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여기는 詩야.”라고 드러나는 이름을 짓고 싶었다. 그 여자는 자주 센 척하는 사람이라, 처음에는 “소설은 읽지만 시는 입는다.”라고 밀어붙였다. 하지만 시인 H는 ‘만’이 걸린다고, 시가 잘난 척하는 것 같아 보인다고, 겸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시가 잘난 척하는 걸 쓴 문장이라고, 시가 최고라 말하고 싶은 거라고, 시는 어떤 장르도 따라 올 수 없다고 말하려는 거라고 했다. 시가 실컷 센 척하는 신조를 만들고 그런 이름도 짓고 싶었다. 빈말이 아니었다. 사실 아내는 자신의 남편도 시인이고, 건물주도 시인이고, 평소 존경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시인이라 시가 가장 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인 K인 나는 어린 시절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다. 윤동주를 읽은 다음이라고 해야 하나 한하운을 읽은 다음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어떤 시인도 동기가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내가 대여섯 살 때부터 노래를 지었다고 말했다. 유행가인가 싶어 귀담아 들으면 아버지가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따라서 부르는 노래였다고 한다. 가령 아버지가 나무를 전정하고 있으면 “잎을 자르네, 잎이 떨어지네, 잎이 내려앉네.”라고 노래를 부르고, 할머니가 앉아서 풀을 매고 있으면 그 옆에 앉아 할머니를 따라가며 할머니 행동을 노래로 불렀다고 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훗날 작가가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아버지도 오랫동안 시를 습작하고 있었던 것은 내 유방이 조금 크고 나서야 알았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밭에서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던 시절에는 아이가 노래를 흥얼거리듯 시를 지으며 놀기도 했다. 시를 통해서 우리는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뒹굴다 자연스레 시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후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처음으로 글짓기 상을 받은 다음부터인가, 암튼 학창시절 내내 꿈이 시인이었다. 스무 살이 되자 시인 어른을 만나면 시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물어 보았다. 등단을 하면 된다고 했다. 훌륭한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든 더 유명한 시인 밑에서 시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시인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피해 다녔다. 서른 살이 한참 지나 등단을 했다. 등단을 한 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등단하는 것이 시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3. 가장 보통의 서점
시옷서점은 가장 보통의 존재인 작은 동네서점이 여느 동네에서 그러하듯, 시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공간을 빌려 준다. 시창작 동인 ‘라음’, 동화창작 모임 ‘소리냇가’가 정기적으로 공간을 빌려 쓰고 있다. 바느질하는 사람들, 캘리그라피를 하는 사람들 등 낮잠을 불편하게 자고 싶은 사람들이나, 부부싸움 중이라 갈 곳 없는 다양하고 소소한 사람들에게 공간을 빌려주고 있다. 에어컨을 사준 ‘시옷서점 에어컨 이사님’이 있는데, 그분은 아무나에게 시옷서점 공간을 빌려주는 것을 반대하지만 시옷서점은 아무에게나 빌려준다. 에어컨 이사님이 바느질 모임에게 에어컨을 틀지 말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한 적 있다. 그러나 에어컨 이사님도 글 쓰는 사람들은 전기를 빵빵 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시옷서점은 서점이지만 책을 팔기보다 쓰는 사람, 앞으로 쓸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는 걸 에어컨 이사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서점 문을 열 때 한 달에 한 명 정도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하루에 0.7명 정도 찾아와 우리는 너무 불안했다. 특히 손님이라고는 받아 본 적 없는 시인 H는 바람이 불어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도 누가 오는가 싶어 마음을 졸였다. 시인 H는 낮에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밤에 서점 문을 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자 중에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주민 중에도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고등학생들 중에도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어서 빨리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그렁그렁한 금속을 얼굴 곳곳에 단 젊은 여자가 왔다. 멘탈이 강할 것 같은 젊은 여자를 보며 같이 시 쓰자는 말이 거스름돈보다 먼저 나올 뻔했다. 피어싱이 그렁그렁하여 김영랑 시 같았다. 몇 달 전에는 시각장애인 가수 홍관수 아저씨가 왔다. 시옷서점 기사를 읽고 찾아와 손끝으로 시옷서점을 더듬어 구경하고 갔다. 하루에 0.7명은 아주 작은 수 같아 보이지만 1년이면 시옷서점에서 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0.7×365명 만날 수 있는 것이다. 365일 문을 열지는 않지만 행사 때는 하루에 50명도 오고 그러니 일단 이렇게 헤아릴 수 있다.


시옷서점이 가장 먼저 진행한 프로젝트는 ‘시옷’ 전시였다. 제주 시인들의 시를 티셔츠에 프린팅해 근처 공원에서 전시를 했다. 100장의 시옷이 펄럭이는 모습은 낯설고 아름다웠다. 시옷이 펄럭이는 사진은 SNS를 타고 널리 멀리 퍼졌다. 그래서 시옷서점이 조금 유명해졌다. 뭉클했던 건 공원에서 시옷을 들고 시옷서점으로 걸어오는 독자를 바라보는 제주 시인들의 표정이었다. 시옷에 적힌 시 전문을 보고 싶다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시집을 펼쳐주는 얼굴들이 빨개졌다. 땡볕 아래서 혼자 빨랫줄을 만들고 시옷 100장을 널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시인들과는 다른 이유로 가장 빨개졌지만, 시옷의 어깨를 반듯하게 펼치고 빨래집게를 꽂으며 다짐했다. ‘제주 시인들의 어깨를 활짝 펴 주는 일을 할 거야.’라고 말이다. 각오가 너무 깊었는지 시를 쓰는 일이 아닌 시와 함께하는 기쁨을 맛보고 말았다. 그 후로 흡혈귀가 되었다. 일이 바빠도 시로 시작하는 일이라면 그 기쁨의 피 한 방울을 맛보고 싶어서, 깊은 밤 내내 기획안을 쓰는 날이 많아졌다. 밤의 귀족이 되었다.


시옷서점에서 진행했던 기쁜 사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대한민국 최초 독자고료 콘서트 ‘시시비비시시콜콜’이다. 전국 문학인 제주포럼에서 100만 원의 사업지원금을 받았다. 작가 초청 특강 같은 걸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독자 초청 특강을 해 보았다. 특히 나처럼 시가 연약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을 만나고 싶었다. 나는 도덕책보다는 시집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시로 도덕심을 길렀다. 시를 읽으며 세상의 옳고 그릇된 기운을 찾아내는 세밀한 관찰력과 판단하는 힘을 얻었다. 나만 시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시만 읽어도 세계의 시시비비를 가려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시인들 중에는 사회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며 우물 비슷한 걸 파는 시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를 쓰면서 함께 사용할 우물 같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시인들 말이다. 시옷서점은 그런 시인 세 분을 모셨다. 그리고 15명의 독자를 모셨다. 시옷서점 내외까지 20명이고, 관객까지 찾아오니 시옷서점이 꽉 차버렸다. 4·3의 잃어버린 현장과 기억들을 발굴하러 다니는 시인 강덕환, 강정 문제와 함께 행동하는 시인 김재훈, 아티스트 웨이 과정을 통해 치유하는 글쓰기를 하는 시인 강은미를 초청해 이야기를 들었다. 행사에 참여한 독자들도 작가들처럼 거마비를 받았다. 그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해준 시들이나 자신이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준 시들을 낭독하며 사연들을 이야기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PC방 사장님, 의사, 붕어빵 사장님, 보험회사 직원, 경제부 기자, 대학 조교, 학교 밖 청소년, 간호사, 서점 주인, 대학 시간강사, 서점 주인의 아내, 목수, 백수, 노처녀(스스로 이렇게 적어주라고 하셨다.), 언어치료사 등 다양했다. 김수영의 시 ‘김일성 만세’부터 윤동주의 시 ‘서시’까지 다양한 시들이 낭독되었고, 우리들은 시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걸 서로 공감하게 되었다.


‘시시비비시시콜콜’ 프로젝트를 진행한 뒤 더 적극적으로 독자들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제주여성시인굿즈’는 그렇게 탄생했다. 일요일 오전 시합평회 겸 시옷서점을 자주 찾는 제주여성시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여러 가지 굿즈를 생각해 보았다. 결국 돈이 없어 여러 가지를 만들어 보지는 못하고 수건에 시 한 줄을 적어 플리마켓에서 팔아보았다. 얼마 팔지 못하고 각자 나눠 가졌다. 초보라 물건을 팔 줄도, 잘 팔리는 물건을 만들 줄도 몰랐다. 수건은 몸에 닿는 것이라 자수로 시 문장을 넣었어야 했는데, 자수가 비싸서 잉크로 시를 프린팅했더니 건강상의 이유로 사람들은 시수건을 사지 않았다. 그래도 여성시인굿즈 시인들은 시를 적어 시를 팔았다는 생각으로 뿌듯했다. 시옷서점은 오랫동안 수건을 프린트한 잉크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시가 휘발성이라 그런지 누군가 성냥 하나 던지면 활활 불타오를 것 같았다.


혹시나 했는데 엄청난 행운이 찾아온 적도 있다. 시옷서점 대표인 시인 H 몰래 사회적경제창업지원설명회에 다녀왔다. 설명회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IT나 관광 관련분야 창업자들이었다. 그러나 기획안을 작성했다. IT가 주요한 시대에도 시는 필요하니까. 제주여성시인굿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금의 필요성을 느꼈다. 떨어져도 상관없었지만 우승을 하면 천오백만 원의 지원금을 받는 것이라 혹시나 하며 기획안을 썼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좋아요’ 순위가 2등이라 예선을 통과하고 결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시옷서점 대표인 시인 H는 난데없이 1박 2일로 진행되는 결선 캠프에 가야 했다. 그는 창피한 게 아주 많은 사람이라 기획안을 발표해야 하는 캠프로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떠나는 시인 H 주위로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시인 H의 발표순서는 영광스럽게도 크라우드 펀딩 같은 곳에서 억 단위로 지원을 받은 경험이 있는 D사 다음이었다. 하루 숙박비가 60만 원으로 고가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회사의 기획안은 휙휙 날아다니는 PPT였다. 다음으로 시인 H가 준비한 시옷서점 PPT는 두부 같은 바탕에 띄엄띄엄 사진 몇 개 고명으로 올려놓은 중학생 수준의 PPT였다.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으레 필사를 하게 됩니다. 작가지망생이 필사한 시를 뽑기 통에 담고 500원으로 시 뽑기를 해 돈을 모아 절판된 시집 복간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우승을 했다. 진출한 팀들의 상호평가가 있었는데 시옷서점은 경쟁할 만한 비슷한 분야가 없어 대부분 후한 점수를 주었고 평균점수가 높아 우승한 것이라고 우리는 추측했다.


암튼 시옷서점은 천오백만 원이라는 지원금을 받았다. 사실 그 돈으로 우리는 시옷서점의 기자재를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가 중심이 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기회에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다 제주 시인들 작품을 노래로 만들어 보았다. ‘시활짝’ 프로젝트 시노래음반 1집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리고 시 뽑기를 엄청 팔아야 가능한 복간 사업도 진행할 수 있었다. 강덕환 시인의 절판된 시집 ‘생말타기’를 26년 만에 복간할 수 있었다. 또 19금 시선도 만들었다. 스무 살이 되면 낼 수 없는, 시 쓰는 청소년들을 위한 시집이다. 물론 엄청 젊은이들만 애정하는 것 같아 다른 시선집도 준비 중이다. 아흔 살이 넘어야만 낼 수 있는 아흔 살 시선.


시옷서점이 알려지자 가장 반가운 것은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이 시옷서점에 온다는 점이다. 그들은 내가 스무 살 근처에 했던 질문처럼 “시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 나는 오래전 내가 들었던 것처럼 등단을 하면 시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너 스스로 시인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있으면 시인인 거야.” 그래서 우리는 의지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다 시집을 내기로 했다. 여고생 김나림다와 학교가 부당해 진즉부터 학교를 그만둔 윤주도는 시옷서점 고객으로 만나 함께 시집을 냈다. 윤주도는 ‘십팔시선’이라는 시집을 직접 유통한다. ‘십팔시선’, 즉 18세의 시선이라는 이야기지만 선정적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제목을 가진 시집을 가방에 꽉 담고 전국 독립서점으로 유통하러 다닌다. 그래서 시옷서점은 생각도 못한 독립 출판사까지 등록하게 되었다.


4. 제주비행+시, 제주비행접시
며칠 전 시옷서점 대표 시인 H는 비영리단체 등록을 했다. 우리는 행운을 잡아 시활짝 음반 1집을 냈지만 시활짝 음반 2집을 어떻게 제작해야 할지 걱정하고 있었다. 1집을 팔아 2집을 제작하려고 했으나, 은빛 시디는 은단처럼 소멸되어 가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공모전을 유심히 지켜보다 지원하고 시활짝 음반 2집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시노래음반을 만들어 보니 홍보가 문제였다. 홍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다 페이스북에 시채널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싱싱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붙였다. “당신의 눈동자로 굴러가는 시 - 싱싱”이다. 시활짝 음반 1집 노래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SNS로 유통할 생각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여친과 연애를 하고 있는 스물한 살 일본 유학생이 발리와 도쿄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제주와 서울에서도 촬영하고 있다. 알바가 끝나면 영상제작을 시작할 학생부터 여러 아티스트들이 협업하여 재미로 촬영을 하는 팀도 있다. 세계 각지에서 시옷서점을 응원하는 영상인들이, 아니 영상을 조금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각자 골몰하며 시노래 음반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시옷서점은 앞으로 ‘싱싱 채널’에 시 영상을 정기적으로 올릴 예정이다. 특히 제주도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을 우선적으로 제작하려고 한다. 싱싱 채널은 11월에 개국할 예정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단체등록을 해야 했다. ‘제주비행접시’라고 이름을 지었다. 비행은 하늘을 나는 것, 비행은 남다른 행동을 말한다. 시와 남다른 행동을 접붙여 시가 날아다니게 할 예정이다.


제주비행접시는 시옷서점의 미래다. 사실 우리는 생계를 위해 낮에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밤에만 문을 열 수밖에 없다. 낮에 시옷서점을 여는 것이 소원이다. 그리고 우리는 문학 특히 시로 시작하는 기쁜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 기쁜 시와 함께하는 일들이 어색하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옷서점을 하는 동안 나는 지역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현실 속 쓸거리들을 눈여겨보지 못했다. 앞으로 나는 나와 나의 근처들을 쓸 것이다. 나 혼자 쓰는 게 아니라 여러 시인들과 함께 쓸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하반기에는 지역 시인과 지역 농산물을 재배하는 사람들과 함께 문학대담을 준비 중이다. 가령 시집 『레몬옐로』를 낸 장이지 시인과 레몬농사를 짓는 사람과의 콜라보다. 레몬을 시작으로 브로콜리, 감자, 양배추, 호박과의 문학대담이 준비되어 있다. ‘시를 심어볼까 서점’ 프로젝트가 끝나면 시옷서점은 지역 농산물이 소재가 된 싱싱한 시들을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수확한 문장을 가지고 새로운 제주비행접시를 상상한다. 어떤 방법일지 아직 고민 중이지만 제주 시인들이 쓴 시의 문장과 제주의 농수산물들이 뭍에 있는 독자들 식탁 위 접시 위로 날아가는 상상을 한다. 시와 농수산물들이 싱싱하게 올려질 그런 접시를 상상한다.


시옷서점은 ‘시린발’부터 출발했다. 아직 태어나지 못한 문예지가 연못 위 둥둥 뜬 개구리알이라면, 시옷서점은 올챙이처럼 미끄러지듯 탄생했다. 곧 시옷서점은 이 글의 제목과 같은 ‘싱싱’ 채널을 개국한다. 시에 바퀴를 달아 주고 싶다. 시를 따라다니는 두 눈동자들과 함께 항상 싱싱하고 싶다. 당신의 눈동자와 함께하는 시 채널이 11월에 개국할 것이다. 비가 오면 슬피 우는 개구리도 무관심할 시 전문 채널 싱싱 채널이 시작된다. 그러나 ‘흠뻑’ 슬퍼할 줄 아는 사람들은 싱싱 채널과 함께 시를 감상할 것이다.


지역문학이 지역농수산물이다. 이 문장은 특수성과 고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태계 존중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문학 토양은 얼마나 생태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가 궁금하지만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어렵게 이야기할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고 시를 쓰고 여행 온 사람들과 함께 쓰레기 문제를 고민하고 노르웨이 고등어나 알래스카 연어, 칠레의 포도 같은 것들과 마트에서 만날 것이다. 싱싱하든 안 싱싱하든 우리가 시를 쓰고 시를 함께 읽고 시를 믿을 때 우리는 싱싱하다. 그리고 각 지역의 비행접시들이 서로 교신을 주고받으며 서로 반짝거리며 ‘장풀’ 속에서도 건강하게 눈빛을 반짝거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늦은 밤에만 문을 열 수밖에 없는 시옷서점 작은 간판불도 싱싱하고 있겠다.





*김신숙 2012년 《제주작가》 로 등단.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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