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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기행산문2/유시연/수녀원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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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19회 작성일 19-07-0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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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기행산문2/유시연/수녀원과의 인연


수녀원과의 인연


유시연



토스카나
아침을 거르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일방통행 길이라 택시 잡기가 어려워 빠른 걸음으로 20여 분, 산 지미그냐노에 가기 위해서는 포지본시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토스카나 지역의 마을과 주택 건물이 멀리 능선을 타고 형성되어 있다. 구릉지대에는 올리브, 밀, 유채, 포도 같은 농작물이 잘 가꾸어져 있는데 농민들이 직접 저 너른 농지를 가꾸는지 혹은 외국인 노동력을 쓰는지 궁금해진다. 한국의 농촌은 외국인 인력이 없으면 유지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변화가 있다.


고속도로변에는 한국에서 사라진 미루나무가 키를 키우고, 아카시아꽃, 조팝나무 흰꽃이 언덕에 가득 피어 흔들린다. 짙은 초록빛을 넓혀가는 대지에 햇볕이 쏟아지고 풍요가 나른하게 감싸고 돈다.


고대도시 산 지미그냐노 중심 광장에 자리한 각진 돌탑이 몸체에 잡초를 키워낸 채 침묵의 시간을 견디며 이방인을 맞아준다. 단체 여행자들에게 끼어 성곽 꼭대기에 올라갔더니 토스카나의 구릉지대가 첩첩이 포개어져 주름 잡히듯 펼쳐져 있다.


드라마 신사임당 배경으로 나오는 토스카나 지역은 기름진 토지와 상업, 은행업을 배경으로 이웃도시와의 경쟁으로부터 견고한 위치를 확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300여 년의 바람은 돌벽과 건물을 쓰다듬으며 부침의 흔적을 간직하고, 편안한 색채로 웅크린 마을의 지붕에는 비둘기가 터를 잡아 살고 있는 정경이 소박하게 시선을 잡아끈다.


광장 계단에서 로만칼라 신부에게 축복을 청한다. 주저없이 성호를 긋고 축복을 하는 젊은 사제는 제임스 신부로 멕시코에서 온 부모와 여행 중이라고 했다. 로마 홀리 하우스에 한국인 형제들이 있다며 귀국전 아침미사에 오라고 주소를 찍어준다. 어느 곳 어느 도시에나 오랜 세월을 지켜 온 성당이 있다. 지미그냐노에는 성 어거스틴 대성당 안 유리관에 아쑨따 성녀가 썩지않은 육신으로 누워 있다. 수도복을 곱게 입고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아쑨따 성녀의 얼굴위로 시간이 멈춰 있다. 한국에서 시신이 썩지않는 무덤은 길지가 아니라 흉지로 여겨 후손에게 해가 된다는 믿음이 있다. 그럴 경우 대부분 이장을 한다. 육신이 썩어 흙으로 돌아가야 명당이라는 믿음은 동서양의 문화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움브리아의 아시시와 토스카나 지역에서 가톨릭 성인이 많이 나왔는데 그런 배경 때문일까. 이번 여정에는 썩지 않은 성인들을 많이 본다. 성녀 키아라, 아순따, 말가리다… 그들을 모셔두는 것은 예수 재림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예수 재림 때 온전한 육신으로 부활하리라는 믿음이 있다고 본다.


따가운 지중해의 봄볕이 온 몸에 파고든다. 햇볕을 피해 그늘에 들어서면 금세 냉기가 스며들며 추위가 에워싼다. 햇빛을 좋아하는 유럽인의 문화를 이해할 것 같다. 추위에 떨다가 계단에서 햇빛을 쬐는데 애리조나에서 온 두 여자, 제인과 쥬디가 말을 건다. 나란히 앉아 따뜻한 볕을 쪼이다가 사진을 같이 찍는다.


시에나
시에나 광장 잔디밭에 앉아 엽서를 쓴다. 이십대에 여행지에서 많이 해 본 엽서쓰기다. 2.5 유로면 미국, 아시아, 프랑스 어디든 보낼 수 있다. 어느 도시이든지 가장 큰 성당을 바실리카 두오모 성당이라 부른다. 시에나 두오모 성당은 피렌체 두오모 만큼이나 규모가 크다. 연한 분홍, 녹색, 흰색, 검정색, 자주색 대리석으로 지어졌는데, 피렌체 두오모 성당보다 내부가 더 화려하다. 저녁 해가 기운다. 오래 걸어서 다리가 아프고 피곤해서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 비집고 들어가 새치기로 버스를 기다리는데 눈 밝은 청년이 뭐라고 하며 뒤에 가서 서란다. 할 수 없이 맨뒤로 돌아갔더니 줄이 더 길어졌다. 다행히 좌석이 있다. 직행이나 완행이나 버스 비용이 같다. 아씨시에서 페루자로 이동할 때 넓고 편하게 가고 싶어서 1인 4유로쯤인가 더 주고 퍼스트 클래스, 일등석을 끊었는데 일반석이나 일등석이나 똑 같다. 속았다, 싶어서 그 다음에는 무조건 세컨드 클래스, 일반석을 끊는다. 한국식 문화에 젖어 있다가 이들의 문화에 당황하기도 하면서 여정이 진행 중이다.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에 다시 선다. 오래 전 두오모 성당이 내려다보이는 이 언덕에 단체 여행팀에 끼어 정신없이 따라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같은 장소, 비슷한 시간대, 같은 자세로 사진 포즈를 취하는 내 주위로 한국인유학생 청년들이 있다. 아오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밀라노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소프라노 솔지 양이 사진을 찍어준다. 가죽, 요리, 음악, 디자인을 공부하러 온 한국 청년들을 만나 유쾌하다.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언덕에 올랐는데 젤라또 축제가 한창이다.


두 번 다시 오기 쉽지 않은 곳에 다시 오게 된 것도 인연일까. 우리 동네 할머니 덕천댁은 고희 연세에 이르기까지 한 동네에서 나고 자라 결혼하고 자식을 키우고 얼마 전 칠순잔치를 하기까지 마을 밖을 한 번도 나가서 살아본 적이 없다. 할머니의 인생은 마을과 마을 밖을 흐르는 강과 멀리 능선이 겹겹이 포개진 산골짜기 안에서 평생 갇혀 지낸 셈이다. 할머니의 세상은 마을과 강과 마을을 휘두른 산이 전부인 인생이다.


루벤스 그림에는 꼬레아 남자가 있다. 작가 오세영은 그 그림을 토대로 임란 때 일본을 거쳐 이태리에 정착한 남자 이야기, 무역상사 이야기를 그렸는데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흥미롭게 읽고 나서 국내 대기업의 중국 소주지사에 근무하는 원희에게 책을 빌려줬는데 바빠서 못 읽었다는 말을 들은지도 몇 년이 흘렀다.


미켈란젤로 언덕에 서서 멀리 두오모 성당을 바라본다.
아침에 그곳에서 9시 30분 미사를 마치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우피치미술관은 예약이 꽉 차서 인터넷 예매는 더 이상 받지 않았다. 광장에 나와 어슬렁거리다가 로렌조 성당으로 향한다. 입장료를 사서 로렌조성당 지하 유물을 둘러보는데 자연석 크리스탈 돌을 깎아 한 면을 만든 작은 은상자와, 은으로 만든 관을 살펴본다. 중세의 조각이 정교하다. 은관은 뚜껑이 옆으로 나 있다. 어두운 지하 방 구석구석을 둘러보다가 한기를 느꼈다. 썰렁한 지하 방에 덩그러니 놓인 석관 두어 개, 관 속의 영혼은 매일 바쳐지는 미사전례에 동참하며 영혼의 안식을 누렸을까.


레스토랑에서 점심으로 피자 한 판과 스프를 시켰는데 화덕에 구운 피자와 스프가 뜨겁게 손끝에 감긴다. 스프는 콩과 갖가지 채소를 넣어 끓였는데 국물이 전혀 없어서 남겼다. 결재를 받으러 온 남자가 일본 말로 인사를 한다. 아오가 남자를 부른다. 프롬 꼬레아라고 말하자 남자가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한다. 기다란 대리석 의자에 앉아 햇볕을 쪼인다. 그늘을 벗어나 햇볕을 찾아다니는 내 모습이 낯설다.


삶의 조건
불꽃이 넘실대는 화덕 앞에서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피자빵을 굽는다. 두 개의 화덕에서 구워내는 피자빵은 담백하고 고소하다. 골목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좁은 도로에는 안전모를 쓴 남자들이 도로를 보수하거나 땅을 파고 작업을 한다. 거의 매일 도시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좌판을 펼쳐놓고 열쇠고리나 장신구, 선글라스를 파는 흑인 청년들과 두세 평 가게 안에 스카프나 의복을 걸어놓고 앉아 있는 늘씬한 금발 아가씨, 건물 경비원, 관리인, 버스 기사… 각자 자기 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가는 시민의 모습에서 선진국이라고는 하나 먹고사는 문제는 어떤 환경이건 인간의 치열한 삶의 조건이다. 이방인이 낯 선 도시 골목이나 광장을 배회하며 나돌아다니는 동안에도 그들은 각자 자기자리에서 일을 한다. 성당 문앞에는 항상 거지가 있다. 기도하러 오는 사람의 자비를 구하는 거지와 신의 자비를 구하러 오는 사람이 교차하는 그 경계에서 나는 되도록이면 동전이라도 주려고 가방을 뒤적거린다. 거리의 악사를 만나도 꼭 동전을 준다. 동전 한 닢은 내가 자선을 베푸는 게 아니라 나눈다는 마음으로 준다. 오래 전 힘든 일을 겪으면서 나는 푸쉬킨의 시를 자주 읊조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이 시의 깊은 뜻을 젊어서는 몰랐다. 어려움을 겪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얼마나 좋은 시인지 알 것 같다. 시련 앞에 그 시는 많은 위안을 준다. 이곳 여성들은 화장을 잘 안한다. 팔찌나 귀고리 같은 장신구는 하는 편이다. 앞가리개도 잘 안한다. 공장에서는 여성들의 상의 티셔츠 가슴 부위에는 두 겹으로 두껍게 천을 대어 만든다. 자연스러움은 큰 자산이다.





*유시연 2003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소설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오후 4시의 기억』, 『달의 호수』. 장편소설 『부용꽃 여름』, 『바우덕이전』, 『공녀 난아』. 에세이 공저 『꽃 진 자리에 어버이 사랑』 등. 정선아리랑문학상, 현진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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