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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권두칼럼/장종권/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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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35회 작성일 19-07-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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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권두칼럼/장종권/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흔들린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흔들린다


장종권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는 말이 있다. 참 넉넉한 말 같기도 하고, 참 따듯한 말 같기도 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는 것이 있으니 무어든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뜻 같기도 하고, 그 돌아가는 이치라는 것이 딱이 정의롭거나 진실이거나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말 같기도 하고, 어쩌면 사회도 기계구조와 같은 것이어서 톱니처럼 서로 맞물려 잘 돌아가기 마련이라는 말 같기도 하다. 역사를 돌아보면 세상의 흐름은 꼭 옳은 방향으로만 진행되어온 것은 아니다. 세상 흐름도 민심의 흐름이라기보다는 힘의 흐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세상 이치를 거슬러가도 세상은 잘 굴러왔다. 민중은 무지몽매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참으로 현명한 존재인 것처럼도 보이고, 민중이 착각이나 오해 속에 빠져 있을 때에는 그 오해가 마치 진실인 것처럼 세상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진실이라는 것도 팔딱팔딱 살아 있어서 세월이 흐르는 대로 얼마든지 변하기도 하고 뒤바뀌기도 해왔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진실이라는 것은 당대 필요해서 주장하는 것일 뿐이지 사실은 맹랑한 알맹이를 가벼운 껍질 속에 숨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뿌리 채 뽑혀서 인사불성인 시절도 적지는 않다. 요즘 우리 세상은 어떤지 모르겠다. 세상의 변화가 너무 급속도로 진행되어서일 수도 있고, 과학문명이 새롭고 혁명적인 기술로 인간의 편의생활을 하루가 멀다 하고 바꾸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제 나이가 들면 컴퓨터도 사용하기 어렵고, 핸드폰도 복잡하고 다양한 사용은 어렵다. 자동차 운전마저도 시동 걸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에는 그 비싼 현대 편의장치를 사용하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생활의 편의와 인간 존중이 바탕이 되어 발전하는 과학문명이 오히려 인간성을 훼손하거나 경멸하게 되는 일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에너지를 사용하여 손발로 작동하는 것들이 줄어들고 오로지 기술과 두뇌로만 작동해야 하는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니까 미래는 말할 것도 없이 그에 적응하며 살게 되는 후손들의 것이라고 볼 수밖에는 없겠다. 극렬하게 발전하는 미래는 당연히 미래 그들의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아리송해졌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분명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면 당연히 거기에는 경험과 경륜과 선배선조들의 정신도 한 몫을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무용지물이 되어가는 듯하다. 어머니의 김장법과 된장찌개 솜씨를 배우는 것보다 인터넷 레시피를 사용하는 것이 이모저모 편리하고 간단한 세상이다. 어른들의 경험을 듣는 것도 지겨운 시대여서 이것도 인터넷만 열면 즉각즉각 모조리 알려준다. 수십 년 수백 년 경험의 축적도 인터넷이 순식간에 대신해 준다. 복잡하고 다양한 생활의 지식도 인터넷이 모조리 대신해 준다. 이제 인터넷 세상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되었다.


예전의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는 말 속에는 여유가 가라앉아 있었고, 용서와 배려가 숨겨져 었었고, 끈질긴 기다림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이 녹아 있었다. 내 욕심이 솟아나도 세상 사는 이치가 있어 절제했고, 주변에 상처 받은 사람이 있어도 세상 사는 이치가 있어 서로 챙겼다. 그래야 세상이 평화롭고 나 역시도 언젠가는 복을 받는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 이치대로 평화를 추구하고자 하면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세상 이치대로 산다고 해도 누구도 내게 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예전의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요즘의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달라지고 있다. 어디에서, 언제부터, 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바뀌고 있을까.


혹시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전혀 바뀌지 않은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과 불안에서 기인한 것이겠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혼돈이 온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가는 사람은 가고, 오는 사람은 오고, 그 와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 그렁저렁 살아가는 세상이다. 수천 수만 년을 살아온 인간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사는 방식을 바꾸고, 경험칙을 바꾸고, 가치의 기준을 바꾸는 일은 가능한 일이 아닐 성 싶기도 하다.


시는 세상 이치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얼굴을 자랑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인간의 모습과 세상의 모습을 나름대로 솔직하고 의미 있게 표현하고는 있는 것일까. 시는 무엇일까. 시의 본래 얼굴은 무엇일까. 시의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무엇일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건넌방에 잠재워 두고 새로운 변화를 찾아 다급하게 길 떠나는 시들은 혹시 없을까. 그 숱한 시들의 목적지는 과연 어디일까. 시의 본래 얼굴이 무엇인지에는 관심도 없이 무작정 익혀온 시쓰기로 탄생하는 시들은 어떤 얼굴일까. 어떤 아들일까. 아니면 돌연변이일까.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바뀌고 있다면 시의 얼굴도 당연히 달라질 수 있겠다. 시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가고는 있는 것일까.





*장종권 198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전설은 주문이다』외.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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